태국에서 만난 풍경의 아름다움

오랜만에 살아있음을 느꼈던 순간

by 혜빈

이전까지 태국이라는 나라와 그다지 큰 인연은 없었다. 기껏해야 연남동에서 태국 쌀국수를 먹은 정도가 다일 것이다. 그 쌀국수 진짜 맛있었는데. 아무튼 재작년 2월 교회에서 태국선교를 떠나게 되었고, 그곳에서 보낸 일주일은 태국과의 인연을 이어준 소중한 시기였다.


태국에 가려면 비행기로는 5시간 정도를 꼬박 가야 한다. 일요일 저녁 비행기를 타고 방콕 공항에 도착했더니, 태국 시간으로 자정이 가까웠다. 숙소에 가려면 여기서 차를 타고 15분 정도를 더 가야 한다. 한밤중이라 차가 없어서 숙소에는 금방 도착할 수 있었지만, 숙소에 도착한다고 해서 바로 쉴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음날 태국 사람들에게 나누어줄 아이스티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태국 사람들은 차를 좋아한다고 한다. 그래서 태국 선교를 다니며 커피와 아이스티를 나눠주기로 했다. 더군다나 개인적으로 아이스티를 사랑하기 때문에, 만약 아이스티가 남으면 내가 먹고 말겠다는 의지도 있었다. 하지만 막상 만들어보니, 대용량의 아이스티 원액은 가루에다가 물만 적당히 타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원액을 만들기 위해서는 농도가 맞는 적당한 가루의 양과 물의 양을 계산하고, 물을 끓여서 가루를 모두 녹여내는 고생을 밤새 해야 했다. 결론적으로 아이스티가 태국 사람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내가 먹을 아이스티가 조금도 남지 않았다는 것이 약간 아쉬웠지만 말이다.


밤새 아이스티를 만드느라 1시간 정도 자고 새벽에 부리람으로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부리람은 방콕과는 거리가 멀어 꼬박 반나절 넘게 가야 도착할 수 있는 곳이다. 버스에서 할 것이 그다지 많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잠이 부족했으니 버스에서는 무조건 숙면이었다.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눈을 떴지만 버스는 아직 움직이고 있었다. 아직 도착을 안 했나보다 생각하며 시선을 자연스럽게 창가로 돌렸다.


도시 사람인 나는 이런 풍경이 아주 새롭다. 시골에서 나고 자랐다면 생각이 또 달랐을까.


나무들이 드문드문 자라있는 넓은 벌판과 새파란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동시에 사계절 내내 따뜻한 나라다운 따스함도 있었다. 그리고 그 공간 가운데에 가만히 놓여있는 도로 위에서 버스가 달리고 있었다. 만약 그 모습을 위에서 보았다면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지 않았을까.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낯섦과 잠시 시간이 멈춘 것 같은 평온함이 느껴졌다.


회색빛 하늘, 드높은 빌딩숲, 빽빽히 가득찬 지하철 안 사람들. 그 틈에서 매일 쉴 새 없이 과제를 하고, 과제가 끝나면 또 다음 과제를 해왔다. 과제를 다 끝내면 다음은 팀프로젝트였고, 시간이 없어 밥도 잠도 포기했던 내 모습. 그 삶이 계속 반복된다는 것이 싫었고, 도망치다시피 휴학을 결정했었다. 그리고 지금은 태국 어딘가의 도로를 달리는 버스 안에서 쉬고 있다. 일단 다른 나라에 있다는 것이 한국에서의 일을 생각나지 않게 했고 눈앞에 보이는 잔잔한 풍경은 마치 나에게 그렇게 힘들게 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잠시 눈앞에 보이는 풍경을 응시하며, 다시 눈을 감았다.


한참을 이동해 오후 늦게 목적지에 도착했다. 생애 첫 선교의 첫 전도와 첫 공연이라는 떨림을 안고,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은 채 첫째 날이 지나갔다. 오늘의 숙소는 공연을 했던 교회 옆방 당첨. 예배실에서 내일 사용할 아이스티를 만든 후 모두가 잠든 시각에 밖으로 돌아나와 밤하늘을 바라보니, 수많은 별들이 하늘을 반짝이고 있었다. 이것 역시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밤하늘이라는 생각에, 휴대폰을 꺼내 밤하늘 사진을 몇 장 찍었다.


햇빛과 파란 하늘이 있는 낮과 달리 밤의 하늘은 어두워 어딘가 심심하다. 그 때 별들이 어두운 쪽빛 하늘을 수놓아주면 낮의 하늘과 또 다른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도시는 밤늦게까지 불빛이 빛나기 때문에 별빛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서 태어날 때부터 도시 사람인 나는 별이 빛나는 밤을 거의 만날 수 없었다. 태국에서 만난 별이 거의 1년만의 별이었기 때문에 그 반가움과 설렘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밤.jpg 얼핏 보면 나무밖에 안 보이지만 오른쪽 위를 잘 보면 별이 보인다.


스마트폰 카메라의 프로 모드를 사용해 셔터 속도를 최대로 늘려주면 별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웠던 적이 있다. 그 기술을 이용해서 카메라 셔터를 연달아 눌러봤지만, 아쉽게도 보이는 별을 모두 담아낼 수는 없었다. 사진이 있다면 두고두고 꺼내보고 자랑하며 그 날의 아름다운 밤하늘을 추억했겠지만, 그날의 풍경은 나의 머릿속에만 고이 간직하는 걸로 하며 정말로 첫번째 날의 일정을 마쳤다.


지금도 그날의 아름다운 풍경을 떠올리면, 내가 아직은 살아있구나 생각이 든다. 그리고 아직 못본 풍경들이 많겠구나 생각한다. 밀림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오로라도 실물로 보고 싶다. 별들이 빼곡한 밤하늘을 천문대에서 망원경으로 더 자세히 보고 싶기도 하다. 태국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한 그날은 살아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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