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ise in Music (6) DANCE! DANCE! DANCE!
아무 노래 챌린지가 한창인 가운데, 돌이켜보면 '춤'을 주제로 한 노래들이 참 많다. 어떤 노래들은 '춤'을 이야기하지만 춤출 수 없는 노래도 있다. 아무 생각 없고 싶은데 자꾸, 생각난다. 외로움이, 슬픔이, 나라는 존재가. 오늘은 그런 음악들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니체는 적극적인 몸의 표현인 춤이 곧 힘에의 의지 극대화, 곧 창조적 예술행위로써의 핵심이자 자기 고양 행위라 보았다. 그런 면에서 뒤이어 설명할 세 곡은 곧 '춤'이 얼마나 철학적 소재이며 개인의 가치관을 드러내 주는지를 보여준다.
김심야와 손대현의 노래 〈Dance〉는 'Love the way you dance my baby wavy 하지 않아도'로 시작하는 냉소적인 사랑 노래다. 'Love the way you plan the future 공감할 수 없어도' 물질주의 시대를 벗어날 수 없으니 숫자로 텅 빈 우리를 채우기 위해서는 마음에 드는 게 없더라도 사랑하는 게 유일한 탈출구라는 것이다. 거기엔 어떤 특별함은 없다. '다 괜찮아 너 말고 딴 애들 다 그래'그러니까 김심야가 노래하는 춤은 자기 도피로서의 춤이다. 연인과 함께 하는 순간이지만 그 순간은 지극히 개인적인 시공간이다.
이센스가 작년 《이방인》앨범에서 발표한 동명의 노래, 〈Dance〉는 보다 발전된 형태를 보인다. 이센스는 누군가와 대화하고 있지만, 함께 춤추고 있지 않다. 그저 속마음을 숨긴 채로, 춤출 뿐이다. 이센스의 시대를 보는 시선은 김심야의 냉소와 크게 다르지 않다. '패배와 승리, 아래위, 다 무의미' 그러나 동시에 겸손한 태도를 유지하며 남에 대해서는 판단을 노골적으로 유보한다. '난 어떤 그 누구와도 다르다며 깝치는 게 아냐. 나를 다루는 방법이 다른 것뿐'
언니네 이발관의 노래 〈혼자 추는 춤〉은 세 곡 중 가장 외로우며 동시에 가장 발산하는 형태를 지닌다. '왜 이따위니 인생이 그지? 그래서 뭐 난 행복해 난 아무것도 아냐 원래 의미 없이 숨 쉴 뿐이야.' 그러나 김심야식 냉소는 곧 이센스를 지나 모두 함께 혼자 추는 장면으로 클로즈 아웃된다. '다들 여기 아닌 곳에 있고 싶어', 사람들은 외로움에 지쳐 있다. 부디 워우워우 언젠가 다 함께 몸을 흔들며. 노래하고 춤추며' 이석원이 바라보는 춤은 김심야의 냉소, 이센스의 개인주의적 태도에서 더 나아가 우리가 모두 외롭고 살아가는 존재라는 따스함으로 이어진다.
마치 김심야의 철학이 이센스와 언니네 이발관을 거쳐 확장되는 것처럼 설명했지만 누가 옳다 그르다를 말하긴 어렵다. 단지 설명의 편의와 사례의 재미를 위해 든 장치일 뿐이다. 다만 세 명 모두 염세주의적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쇼펜하우어나 니체의 철학에 얼마나 접근했는 가를 두고 살펴본다면 각 인물의 커리어나 나이에 따라 그 성숙도 차이가 나는 게 흥미롭다는 생각이다. (가장 좋아하는 곡은 이센스의 'Dance'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