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의 역사 6부 – 병사 로렌초의 이야기

만약의 역사 6부

by kim

1

밤이 여름 치고는 꽤 춥다. 지중해의 바람은 언제나 꽤 기분이 좋다고 느꼈는데, 오늘따라 바닷바람이 옷과 살을 끈적하게 적시는 느낌이다. 기분 나쁜 습기와 함께 온몸을 감싸 안는다. 최근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연합군 놈들의 진격소식이 가장 큰 화제다. 독일의 전선이 맥없이 무너졌다는데 독일 놈들 항상 이탈리아를 무시하더니 꼴좋다. 고향에서 어머니의 편지를 보았는데 나를 꽤 걱정하시는 거 같았다. 하나뿐인 아들이니 그러시겠지만.

아 마을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루치아는 잘 있을까? 마을에서 내가 군대를 자원할 때 글썽이던 그녀의 눈이 아직 잊히지가 않는단 말이지. 그건 나를 사랑하는 눈빛 이였어. 마을에 응큼한 노인이나 총각들이 그녀를 보던 눈을 생각하면 당장이라고 지중해를 건너가 그녀에게 내 마음을 전하고 같이 알프스로 여행을 가고 싶은 마음이 든단 말이지.


“어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젠장 마르코 녀석이 꽤 매섭게 노려보면서 말하잖아. 어차피 우리의 철통 같은 기뢰와 군함들이 잘 지키고 있는데 뭐가 그렇게 불만인 거야


“죄송합니다! 오늘따라 바닷바람이 끈적거려서 잠시 다른 생각을 했습니다!”


“짜식 싱겁기는 언제나 부는 바람인데 오늘은 어떻고, 어제는 어떻고, 참 낭만주의 같은 녀석이야”


예술도 모르는 녀석이 무슨 낭만주의니 뭐니 하는 건지. 녀석은 아마 무솔리니 각하의 파시즘도 제대로 이해 못 한 멍청이겠지. 그러니 이렇게 나의 우수 깊은 감상을 이해 못 하는 걸 거야. 당연하지 마르코 같은 시골 촌놈이 그 위대한 신념을 어찌 알겠어.


신념의 뜻도 모를 거야. 독일 놈들도 똑같지. 그 콧수염 자식도 결국 각하의 위대한 파시즘을 보고 베낀 가짜일 뿐이니까. 그저 유대인만 보면 정신 못 차리는 피해 망상병 자식! 자기네 군대가 운 좋게 이긴걸 자기 능력인 것처럼 떠벌리는 독일 놈들이 더 박살이 나면 좋을 건데! 그놈들이 나의 지중해보다 넓은 신념과 지식 그리고 충성심을 알면 놀라 자빠질걸?


“이봐 한 대 필래?”


“괜찮습니다. 저는 담배는 안 펴서”


이 자식 내 소중한 군복에 너의 냄새나는 담배냄새를 배기게 하지 말라고! 너 때문에 루치아를 상상하기..


“이봐! 누가 여기서 담배를 피우라고 했나?!”


이런 늙은 엔조 상사잖아 젠장 오늘따라 운이 왜 이리 없지. 진작에 땅에 묻혔어야 할 겁 많은 늙은이야. 연합군이 그리 무서울까.


“이봐 자네들은 어디 소속이지? 한밤중에 담배를 피워서 적들에게 우리 여기 있습니다 하고 광고할 셈인가?!”

마르코 녀석 쩔쩔매는군. 그러기에 그런 걸 왜 피는 건지 모르겠어. 시골 녀석들은 다 그런 거지 언제나 농가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낮잠만 자는 게으른 놈들.


“죄송합니다!”


“자네 이름과 소속을 말해! 자네 상관에게 내가 보고를!”


탕!


엔초 녀석 갑자기 말은 왜 안 하고... 어라? 왜 누워있지?


“적이다!!!”


마르코 녀석이 귀가 떨어질 정도로 소리치고 있다. 온 부대에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한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우리의 군함들은 그리고


씨이이익


귓가 옆으로 총알이 비켜 지난 간 거 같다. 다리에 힘이 풀린다. 젠장! 젠장! 젠장! 신이시여 왜 하필이면 오늘! 오늘!


2

꿈이었다면 좋을 건데. 어째서 오늘 밤이냐고! 다리.. 다리가 움직이지 않아. 엔초 상사의 싸늘한 시신에서 피가 흐르고 있다. 미간에 붉은 점아래로 피가 점점..!


“하느님! 어째서 오늘인가요 네?! 제발 저를 살려주세요!”


“이봐! 지금 울고 있을 때야! 일어서!”


마르코가 내 멱살을 잡고 소리쳤다.


“하,,. 하지만 다리에 힘이..”


“한심한 녀석! 너는 여기서 허무하게 죽을 건가?! 각하의 적들이 지금 바로 앞에 와있잖아!”


나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겨우 부여잡고 겨우 겨우 난간을 붙잡아 바다를 바라보았다. 바다 너머엔 프랑스 다를랑 제독 휘하의 해군도, 우리 기뢰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연합군의 무리들이 시칠리아의 해변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이미 놈들의 군함들은 불을 뿜고 있었고, 여기저기서 살려주라는 익숙한 동기들의 비명이 들렸다.


파시즘으로 중무장한 우리 군대는 어디 간 거야? 응? 제발 우리를 구해줘.. 그래 본국에서 분명히 이를 알고 우리를 구해줄 거야!


“마르코 상병님 어서 도망갑시다. 조금만 더 버티면.. 본국에서 올 거예요!”


“뭐야? 너 제정신이야?! 이건 기습이라고 본국은 지금 우리가 공격당하는 것도 모를 거라고. 빨리 손 치워! 같이 죽고 싶어?! 이 빌어먹을 자식”


마르코 상병의 주먹이 내 얼굴을 가격하였다. 잠시 모든 것이 정말로 찰나의 순간이 하얗게 변하였다. 주위에서 터지는 포소리에 다시 정신이 들자 마르코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때 정신이 좀 드나?”


“네.. 감사합니다”


그래 위대한 파시즘을 위해서 우리는 싸워야 해.


“이런 연합군 놈들이 올라온다! 해안포는 뭘 하고 있는 거야? 이봐! 내가 여기를 맡고 있는 동안 해안포로 가! 연합군 돼지들에게 포탄을 박아주라고!”


“네! 알겠습니다. 부디 조심하십시오!”


“그래 너도 조심해라 놈들의 포격이 점점 매서워지기 전에 있는 힘껏 달리라고!”


마르코 상병은 바깥을 노려보며 브레다 M30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저 총이 저렇게 소리가 큰 총이었나. 브레다가 불을 뿜기 시작했고 픽픽 쓰러져가는 연합군들이 보였다.


나는 그를 뒤로 하고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숨이 턱밑까지 차는 거 같았지만 쉴 수 없었다. 마르코 상병을 저기에 혼자 두고 왔기에 해안포로 얼른 반격하지 않으면..!


갑자기 뒤에서 포성이 들렸다. 쾅하고 가까운 곳에 놈들의 포탄이 떨어진 거 같았다.


‘뭐... 뭐지? 서... 설마... 아냐 그럴 리 없어...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야..!’

눈물이 시야를 방해했다. 입에서는 침인지 눈물인지 무언가 흐르고 있었고 나는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젠장, 젠장, 젠장!!!”


비명인지 뭔지도 모를 말을 하며 달렸다. 조금만 더 내가 빨랐다면! 조금만 더 훈련을 받았더라면!

해안포가 이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역시 주위 병사들은 초반 포격에 당한 거 같았다. 연합군 놈들 어떻게 이 위치를 정확히 알았지?


나는 태어난 이후로 가장 빠르게 참호로 뛰어 들어갔다. 이미 장전되어 있는 이 웅장한 포를 보니 다시 한번 각하의 파시즘이 얼마나 강력한지 느껴졌다. 그리고 결국 오늘 이 포가 우리의 승전을 축하하는 축포를 울려줄 것만 같았다.


“연합군 돼지 놈들 받아라!”


발사끈을 당겼다. 이제 곧 우리 이탈리아의 사자 같은 포성과 함께 군함들을 침몰시키겠지!


그러나


아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어째서?


“어라..? 왜 이러지...”


다시 한번 있는 힘껏 당겼다. 그러나 그렇게 승전보를 울려줄 것만 같은 포는 발사되지 않았다.


“설마...”


달빛이 까맣게 하늘을 물들이 포연을 걷어내고 해안포를 비추고 있었다. 나는 이미 초록색으로 녹이 슬어버린 점화장치를 보고 있었다.


눈물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다시 한번 나는 줄을 당겼다. 아니 한번, 두 번, 세 번, 네 번... 발사될 때까지 당기고 있었다.


“제발 제발 제발!!!”


‘제발’


퍼엉!


포성이라기엔 조금 민망하지만 포가 발사 되었다! 그래! 된 거야! 된 거라고!


“바... 발사되었어! 됐다고! 하하하.. 된 거야! 바로 다음 포로..!”


그 순간, 내 옆 참호에서 귀가 떨어질 듯한 포성이 울려 퍼졌고, 나는 정신을 잃었다.


3

“이봐 이 꼬맹이 정신을 차렸다고”


더러운 미국 놈들의 말이 주위에서 들렸다. 뭐지 나는 죽은 것이 아니었나? 눈을 뜨자 나는 나와 동기들이 묶여있는 건물 안에 있었다. 꽤 햇살이 따뜻하고 주위는 시끌벅적했다. 연합군 놈들은 이렇게 태평하게 전쟁을 하는 거냐! 역시 각하의 파시즘만이 정신을 무장시키고 더러운 민주주의로 물들이지 않는 거지!


“이봐 안토니오! 너 부모님이 이탈리아 분이시지? 이 자식 영어를 할 줄 모르나 봐. 네가 뭐라고 말 좀 해봐!”

“그래, 그래. 알았다고 소리 좀 지르지 마라”


뭐야 영어로 뭐라 떠드는지 모르겠지만 저기 우리나라 사람이잖아! 이민 간 자들의 후손인가.


“Ehi, senti con le tue orecchie?”

(이봐 너 귀는 들리지?)


“Sì...”

(예...)


젠장... 왜 이렇게 무섭지... 나는 파시즘을, 각하를 믿는 헤라클레스 같은 남자인데...


“Come ti chiami?”

(이름은?)


“Lorenzo...”

(로렌초....)


“Eh, pensavo fossi uno di quelli della buona famiglia, invece anche tu vieni dalla campagna, eh? Però sei stato fortunato. Sei stato vicino a un cannone che non ha sparato e stava per esplodere. Se non ti avessimo visto, saresti finito sepolto insieme ai cadaveri vicino a te.”

(뭐야 생긴 건 좀 있는 집 녀석인 줄 알았는데 너도 시골에서 올라온 사람인가. 그래도 너는 운이 좋군. 너 불발돼서 터지기 직전 포 옆에 있었다고. 우리가 안 봤으면 옆에 있는 시신들과 사이좋게 묻혔을 거야)


뭐야? 불발이었다고?


“La maggior parte di quei ragazzi italiani non sapevano neanche come tenere le armi in ordine. Alcuni si sono persino vantati, pensando di aver colpito il nostro nascondiglio, mentre in realtà le loro armi non funzionavano nemmeno bene.”

(이탈리아 녀석들 대부분 무기 관리가 엉망이더군. 총도 제대로 발사가 안되는데 우리가 엄폐한 것을 맞춘 줄 알고 좋아하는 녀석도 있던데 말이야)


‘거짓말... 거짓말하지 마’


“Ah, questi sono alcuni giornali con le ultime notizie. Leggili. ‘L’ammiraglio Darlan si è suicidato’ e...”

(아 이건 최근 소식들이 있는 신문들이야. 읽어주지. ‘다를랑 제독 자침’ 그리고...)


‘뭐야.. 무슨 소리야... 북아프리카 우리 병사들이 다 져버렸다고? 그리고 자침이라니 무슨...’


갑자기 미군 병사가 내 앞에서 신문을 읽어주던 병사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봐 안토니오, 이 녀석들 완전히 처음 듣는 이야기인가 본데?”


“그렇겠지. 자기네 나라가 이 정도로 엉망이라는 걸 알 리가 없잖아”


‘뭐라고 하는 거야 이 자식들 영어로 이야기하니 뭐라 하는지 모르겠잖아’


“우선 뭐라도 먹이자고. 나도 배가 고프고 말이야. 곧 배식이잖아.”


“그래 알겠어.”


“Ehi, tra poco arriva la distribuzione del cibo! Dovete sentirvi fortunati. Il cuoco della nostra unità è italiano, quindi la pasta è davvero deliziosa!"

(이봐 너희들 이제 곧 배식이다! 운 좋은 줄 알라고. 우리 부대 취사병은 이탈리아 출신이라 파스타는 기가 막히다고)


‘이 녀석들... 어째서 이렇게 여유로운 거지.. 곧 각하의 부대가..’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이곳 생활도 익숙해져 간다. 안토니오는 이탈리아계 미국인이다. 꽤 입이 거칠지만 그래도 같은 동향 출신이라 그런지 나름 잘 챙겨준다. 일과는 간단하게 노역을 하는 거지만 고향에서 하던 농사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굴욕적인 나날들을 얼른 각하의 군대가 그래 콧수염 자식의 독일군이라도 좋으니 제발 벗어나게 해 줘! 마르코의 복수를 하게 해 줘!


“어이 로렌초!”


안토니오 자식이다


“네 무슨 일이신가요..?”


“고향에서 편지가 와있더군. 이름이.. 루치아 인가. 애인인가?”


루치아라니! 햇살과도 같은 나의 여신이자 나의 달콤한 꿈과 같은 루치아가!


안토니오는 나의 표정을 보더니 편지를 혼자 읽을 시간을 주겠다 하였다. 나는 얼른 편지를 가지고 막사로 들어가 편지를 뜯어보았다.



친애하는 로렌초에게


안녕 로렌초

잘 지내?

네가 미군의 포로가 되었단 소식을 네 부모님께 들었어. 소련군이 아닌 게 얼마나 다행이야? 그들은 포로를 눈 덮인 평야에 그냥 방치하고 죽게 내버려 둔단 소문이 있더라고. 네가 그래도 어느 정도 안전한 거 같아서 다행이야. 이렇게 편지를 보낼 수 있잖아.


‘역시 나의 루치아야.. 글마저 사랑스럽구나’


맞아. 정말 멋진 뉴스가 있어! 당 대회에서 더러운 무솔리니가 해임이 되었어! 더러운 돼지 녀석이 해임이 되다니! 이보다 기쁠 순 없을 거야. 혹시 네가 소식이 늦었을까 봐 말해주는 거지만 그의 군대들은 모두 형편없다 그러더라고.


‘뭐..? 뭐라고 하는 거야..?’


무솔리니는 체포되었지만 더러운 콧수염자식이 구출했다는 거 같아. 하지만 이제 우리 마을은 더러운 무솔리니 녀석의 지배를 받지 않으니까 다행이야. 사실 전쟁이 많은걸 바꿔버렸잖아. 우리 오빠들도 전쟁으로 죽어버렸고. 하지만 이제 우리 정부에서는 미국과 휴전 협정을 맺은 모양이야! 저번주에 발표를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아직도 그 바보를 따르는 녀석들도 있어. 하지만 대부분은 다행이라 생각해. 곧 전쟁이 끝날 거 같아. 본토에도 연합군이 왔었거든. 최근에 마을에 미군들도 보이기 시작했어. 혹시 축하해 줄래?


나 이제 곧 결혼하거든!


마을에 온 미군 병사인 샘이라는 사람과 결혼할 거 같아. 한눈에 반했어. 운명의 사랑인게 분명해! 내 슬픔을 잘 보듬어주는 그가 있다면 나는 맨몸으로 대서양이라도 건널거야! 너도 이제 무솔리니가 거짓말쟁이였단 걸 알았겠지? 네가 그를 찬양하면서 갈 때 사실 나는 걱정이 되었거든. 소꿉친구인 네가 그렇게 그냥 허무하게 죽지 않을까 말이야. 그래도 다행히 무사하다는 소식을 듣고 안심했어.

멀리서도 기도할게. 항상 건강하길 바랄게.


너의 친구 루치아가


‘무슨... 말이지....’


“나는 왜 여기... 있는 거지..?”


나는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땅에 떨어뜨렸다. 하늘이 뱅뱅 도는 거 같았다. 내가 알던 무적의 군대는 환상이었다고? 무솔리니 각하가 해임이 되었다고? 그리고 나의 루치아가 미군 놈과 결혼한다고? 나를 사랑하는 줄 알았는데? 어째서? 나의 인생은? 나는 어디로 가는거지? 여긴 어디지? 나는 누구지? 나는 어디 나라 사람이지?


나는 정신을 잃었다. 모든 것이 부서지는 거 같았다. 하늘이 회색이다. 이대로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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