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봉진 Feb 12. 2016

엉킨 실

어쩌자고 실을 엉켜놓았는지 모르겠다.

겨울 동안 만들려고 생각해 놓은 패브릭이 있어서 신나게 경사대에 실을 걸었다.

부드럽고 새하얀 실을 걸면서 얼른 다른 색 실로 이리저리 직조를 했으면 좋겠다는 설렘으로 부풀었다. 마음은 이미 저 멀리 가버려 놓고  이런저런 핑계로  그다음 과정을 시작하지 못하고 시간만 흘렀다. 

그렇게 경사대에 걸어 놓은 실에 먼지만 쌓였다. 베틀에 걸어야 했던 실은 그렇게 경사대에 걸려 일주 이주 삼주를 보냈다.  그 사이  마음이 바뀌어 실을 꺼내어 다시 감아 놓기로 했다.


생각을 했어야 했다.  생각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 실만 무턱대고 빼고 말았다. 아-  어디서부터 감아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이 실을 살릴 수 있는지.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실을 몇 번 만지작 거리니 실이 엉켜버렸다.


엉킬 줄 알면서 그렇게 해버렸다. 


가슴이 답답하고 뜨거웠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날카로운 신경질이 올라왔고 가슴 안쪽 편안하던 장기들이 용광로처럼 뜨거워졌다가 순식간에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엉켜 버린 실을 그냥 버릴까 했지만, 여태 한 번도 그렇게 해 본 적이 없었다. 어떻게든 풀어서 다시 감아 놓고 언젠가 그 실을 꺼내어 다시 쓰고 아니면 오래 보관해두었다. 


이번에 꼬인 실은 그 양이 어마어마해서 풀어낼 엄두가 안 나고 버리기엔 아까웠다. 밖에 지나가는 누군가를 불러  나와 같이 이 엉킨 실을 풀어 줄 수 있겠냐고 부탁하고 싶었다. 복도에 누군가 서성이는 소리에 문을 열어 말을 걸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거절당할 것이 두려웠다.


혼자 그렇게 실만 계속 만지작 거리다 결국 가위를 들어 실 아무 데나 잡고 일단 잘랐다.  자른 한쪽을 왼쪽 손에 훌훌 감다가 엉킨 부분이 다달아 오면 또 잘라버렸다. 그렇게 조금이나마 실을 살려냈다. 어마어마하게 길었던 실들이 잘게 쪼개 저버렸다. 쪼개진 실들은 만족스럽진 못했지만, 버리지 않았다는 게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실을 전부 살려내진 못했다. 엉킬 대로 엉킨 실들을 가만히 앉아 인내심을 갖고 풀 수 없었다. 내가 가진 인내심이 한계치에 다다른 것 같았다.  그동안 잘 버틴 인내심이란 것이 미련하기만 했으면 어떡하지란 의심에 더  쪼그라들었다.




겁 없이 마주 하던 것들 앞에서 이제는 머뭇거리게 된다. 마음이 움직이는 길을 다정하게 바라봐주던 시선의 힘이 이제는 걱정의 시선들로 변하여 밟는 길이 더 질퍽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곧기만 해서(미련하여) 질퍽한 길도 나쁘지 않다고 자기 발이 더러워져도 괜찮다고 꾸준히 걷는다. 

어쩌자고 이러는지 여전히 모르겠다. 

작가의 이전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