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엄마가 오셨다. (4): 오페라극장과 재즈클럽

엄마와의 일주일

by 이확위

엄마가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아는 게 별로 없다. 엄마는 자기주장이 그렇게 강한 분이 아니셔서, 엄마의 생각을 알기는 쉽지 않다. 내가 아는 몇 가지는, 꽃, 식물, 야구, 종교 정도이다. 그래서 여행 계획을 세울 때 엄마가 좋아하실지 확신이 가지 않아서 조금 어려웠던 것은 사실이다. 마지막 날은 아침 일찍 공항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이틀이 하루는 루브르 투어를 신청해뒀기에 남은 게 하루를 뭐 해야 할지 애매했다.


우선, 가려다가 못 갔던 오페라 극장을 구경하러 갔다. 오페라 극장을 간다 하니 엄마는 오페라를 본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 극장을 구경하는 거다. 샤갈의 천장화도 있고 화려한 오페라 가르니에를 보여드리러 갔다. 10시에 오픈하는데 열 시 전에 가서 기다리다 입장하니 사람이 별로 없어서, 사람 없이 화려한 오페라 극장에서 사진들을 찍을 수 있었다. 엄마가 좋아하시며 여기저기 사진을 찍으셨다. 하지만 이날 일정은 오페라 극장이 전부였다. 극장을 보더니 여기서 오페라도 보면 좋겠다고 하셨다. 미처 생각을 못했다. 급하게 오페라를 알아보니, 볼 수 있는 당일 작품은 연석이 없었다. 서로 떨어져 앉아서 봐야 한다 했더니 엄마가 그러면 됐다고 하셨다. 좀 더 미리 알아보고 계획했더라면, 보실 수 있었을 텐데... 더 알아보지 않았던 나의 잘못이다.

다른 계획이 딱히 없었다. 엄마가 신발을 사고 싶다고 하셔서, 오후에 백화점을 갈 계획을 세워뒀지만 아무리 오래 해도 엄마도 쇼핑을 그리 오래 할 것 같지 않았다. 다음 날도 루브르 3시간 투어가 전부라 뭔가 더 해야 할 것만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재즈를 생각했다. 나라면 밤에 재즈바를 갈 텐데 엄마가 재즈를 좋아하는지 어떤지 아는 바가 없었다. 엄마에게 여쭤보았다. 엄마가 가본 적이 없다며 가보고 싶다고 하셨다. 공연을 예매한다.


근처에 100년도 넘은 식당을 찾아간다. 이 날 몸이 안 좋은 건지 피곤하고 입맛이 없었다. 엄마를 위해 랍스터 파스타를 시켜드리고, 나는 제일 저렴한 리조또를 시킨다. 입맛이 없었다. 엄마가 파스타는 잘 안 드셨지만 랍스터는 살을 열심히 발라내며 잘 드셨다. 입맛에 맞는 건 잘 드셨다. 좋은 것만 드리면 좋을 텐데, 멀리 떨어져 있어서 잘 챙겨드리지 못함에 죄송한 맘이 들었다. 엄마가 혼자 지내시면서 간단하게만 끼니를 때우고 계시다고 알고 있다. 혼자라서 요리가 귀찮다고 하셨다. 더 맛있고 더 좋은 걸 많이 드셨으면 좋을 텐데, 그러지 못함이 안타까웠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잠시고, 백화점을 가서는 또 짜증을 낸다. 백화점을 가서 둘러보다가 엄마가 세일도 안 하는데 안 산다고 하신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러는 생각에 짜증이 밀려왔다. 생각해보면, 그냥 내가 컨디션이 안 좋았기에 그랬던 것 같다. 하나 사드리지 못할 망정, 내 태도가 문제다. 그다음 엄마가 화장품을 사신다고 해서 매장으로 갔는데, 친절한 점원이 옆에 달라붙었다. 친절하게 묻는데, 엄마가 대답을 제대로 안 하시기에 내가 엄마를 다그치듯 말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엄마가 제대로 못 들으셔서 그랬던 거일 지도 모른다. 난 그저 내 기분에 따라 엄마에게 짜증을 부렸다. 모두 내 잘못이다.


화장품까지 사고는 호텔로 돌아와서 휴식을 취한다. 재즈 공연이 8시라, 그보다 이른 시간에 미리 저녁을 먹고는 티켓을 받으러 일찍 가야겠다 싶었다. 그래서 생각한 식당이 쌀국수였다. 베트남이 프랑스의 식민지였기에 많은 베트남 사람들이 프랑스로 넘어와서 파리의 쌀국수가 맛있다고 유명했다. 조금 유명한 가게의 다른 분점으로 엄마를 모시고 갔다. 여러 메뉴가 있었지만 엄마는 안 먹어본 분짜를 드셔 보고 싶다고 했다. 엄마는 분짜를 시켜드리고, 나는 국물 있는 쌀국수 포를 하나 시켰다. 그리고 넴까지 하나 시켰더니 양이 많았다. 엄마는 너무 많지 않냐고 했지만, 나는 엄마에게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드리고 싶었을 뿐이다. 게다가 쌀 국숫집은 다른 곳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다. (한국으로 치면 결코 저렴하진 않다. 파리 기준일 뿐이다.) 엄마가 분짜를 매우 잘 드셨다. 맛있다고 했다. 이건 한국에 가서도 생각날 것 같다며 그 많던 분짜를 다 드셨다. 나는 여전히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았다. 입맛이 없어서 좋아하는 쌀국수임에도 많이 먹지 못하고 남겼다.


저녁을 먹고는 재즈클럽에 갔다. 두 시간이나 일찍 왔는데, 나는 그때쯤 티켓을 나눠주고 자리 선착순이 시작될 줄 알았는데, 한 시간 전에야 티켓을 나눠준다고 했다. 지나치게 일찍 와버렸던 거다. 천막을 친 테라스 석에서 기다리겠냐고 해서, 자리를 잡았는데 반 야외라서 인지 젊은 애들이 담배를 많이 피우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자리 잡고는 엄마에게 무알콜 음료를 나는 맥주를 시키고는 계속 기다렸다. 엄마와 대화를 나눴다면 좋았겠지만 나는 피곤하고 컨디션이 안 좋아서, 엄마에게 핸드폰으로 스토브리그 드라마를 켜드렸다. 엄마가 드라마를 정말 좋아하셨는지는 알 수 없다. 그저 좋아하셨기를 바랄 뿐이다. 몸이 안 좋아서인지 기다리는 시간이 힘들었다. 한 시간쯤 기다리다가 티켓을 받고는 30분 더 기다려 공연장에 입장할 수 있었다. 이렇게 오래 기다리다가 갔지만, 공연 시작까지 공연장이 많이 채워지지도 않았다. 21시에 시작하는 다른 공연이 더 비싸더니, 주로 그 공연을 티켓을 샀나 보다.


공연이 시작되기 직전쯤 뒷자리에 한국인 남녀가 와서 앉았다. 앉고서는 서로 대화를 하기 시작했는데, 조용한 곳에 그 둘의 목소리만 들렸다. 엿들은 게 아니라 들려서 들을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대화상으로 처음 만나는 사이 같았다. 아무래도 인터넷 동행 같은 것을 통해 같이 재즈클럽에 올 사람을 구했던 게 아닌가 싶다. 여행 중 오래간만에 한국인을 만나서 신난 건지 그 둘은 엄청나게 떠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조용조용히 말하는데, 그들만 보통 소리를 내서인지 그 둘의 목소리만 들렸다. 피곤하던 나에게는 소음이고 짜증이 났다. 심지어 그들은 공연이 시작되고도 떠들어댔다. 나중에 이 얘길 언니에게 하니 언니가 개념이 없으면 눈치라도 있어야지 않냐고 했다. 맞는 말이다. 그들은 개념도 눈치도 없었다.


공연이 한 시간인 줄 알았는데, 두 시간이었다. 공연 중간에 쉬는 시간에 엄마에게 괜찮은가 물었다. 공연 노래들이 대중적인 게 아니라 본격적인 재즈 음악이라 리듬들도 어렵고 쉽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는 처음 와보셔서 모든 걸 새로운 경험이라 생각하며 좋게 받아들이시는 것 같았다. 자주 내가 언제 이런 곳에 와보겠냐라고 말씀하셨다. 그런 말씀이 안타까웠다. 언제고 원하시면 모시고 와야지 싶었다. 그런 기회를 드리지 못했음에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두 시간 공연을 엄마는 모두 끝까지 보셨다. 그런 후, 호텔로 걸어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도 나는 피로감이 몰려들고 컨디션이 무척 좋지 못했다. 내 컨디션이 좋지 못해 엄마의 마음을 제대로 살피지 못해서, 어찌 보내셨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새, 관광할 수 있는 날은 하루를 남기고 여행은 막바지를 향하고 있었다. 아쉬움과 후회로 가득 차 있지만 이미 만회할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