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아이의 엄마, 우리 언니와의 인터뷰
언니는 나와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 중 하나이다. 한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연년생으로 우리는 언제나 많은 것을 공유했다. 우리의 성격은 정 반대이다. 하지만 취향만큼은 많은 부분이 닮아 있어서, 서로 좋은 것들을 공유할 수 있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언니에게 배우는 점들이 참 많다. 난 그저 언니에게 받은 것만 있다고 생각하고 항상 고마워하는데 언니는 종종 내가 있어서 언니도 성장할 수 있었다는 말을 해주곤 한다. 나를 이렇게 믿어주고 지지해 주는 존재가 내 옆에 있음에 항상 감사하고, 조카들에게 엄마라는 존재로, 나에게 자매로, 친구들에게 다정한 친구로 모든 인관관계를 훌륭히 해나가는 언니의 삶에 대해 물어보고자 인터뷰를 진행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해
안녕하세요 세 아이들 키우며 아이들 가르치는 일 하고 있어요. 아이들 키우기 전까지는 제가 아이들을 좋아하는지 몰랐어요. 어려서는 꽤 비관적이었는데, 지금까지 살아보니 싫어하는 것보다 좋아하는 게 훨씬 많아요. 남들에게 맞춰 좋은 사람으로 살려고 했던 20대 때보다, 싫은 건 싫다고 얘기하는 지금의 제가 훨씬 좋아요.
-언니에게는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아. 내가 어릴 때 학교를 안 간다고 버티면 오빠는 혼자 학교 가고 언니는 날 기다려주고는 항상 같이 지각했잖아. 그때 기억나? 그럴 땐 무슨 생각이었어?
내가 가버리면 너랑 엄마가 더 힘들 것 같다 정도... 자세하게는 생각 안 나. 인형놀이하거나 그림 그리며 같이 놀았던 게 오히려 기억에 남아있고.. 나 스스로 힘든 기억은 굳이 남기려고 안 했던 것 같아.
-항상 고맙게 생각하는 거 알지?
아마 비슷한 빈도일 텐데 나도 고맙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어.
-미술을 준비하다가 인문계로 바꾸고 대학 전공 선택 과정에서 아버지와 마찰이 있었잖아. 잘 모르는 사람들을 선택하자면, 한 곳은 언니가 하고 싶던 일본어학과였고, 다른 한 곳은 흔히 어른들이나 더 좋게 보는 소위 더 이름 있는 대학교의 언니가 원치 않는 불문학과였지. 그때의 결정을 후회한다고 종종 말했는데 아직 후회해?
망설임 없이, 후회한다고 대답하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표면적인 걸 보고 아버지와 같은 의견일지 몰라도, 나는 그 학교에서 학교생활이나 공부의 즐거움을 느끼기까지 많이 힘들었어. 설명하기 복잡하지만 학교 특성상 동기들 사귀기도 어려웠어. 다만 나는 지금을 사는 데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해석은 되도록 안 하려고 해서, 그 안에서 성장한 걸 많이 생각해보려고 했어. 나를 위해서 그렇게 조언하신 아버지의 마음도 부모가 되어보니 어느 정도 이해는 돼. 다만 아버지는 아버지이고, 나는 나라는 거지. 내 인생은 내가 살아야 하잖아. 그때로 돌아가면 현명하게 아버지를 설득해서 내가 가고 싶던 학교에 가고 싶어.
-그때 일본어를 했다면, 어학연수로 프랑스에는 안 왔을 거잖아. 그러면 지금도 친하게 연락하며 지내는 친구들도 못 만났을 거고. 뭐 물론 다른 삶이 또 있었겠지만 말이지.
그렇지. 아마 일본어만 전공하진 않았을 거야. 당시 꿈이 외국어 여러 개 공부해서 여러 나라 그림책들 번역하는 일을 하고 싶었거든.
-친구들 중에 제법 이른 나이에 결혼을 했잖아. 아직도 언니 결혼식이 인상 깊은 게 엄마는 아무렇지 않은데 언니 친구들이 훌쩍훌쩍 울던 거야. 친구들과 참 잘 지냈구나 싶더라고. 그래서 언니의 인간관계에 대해 물어볼게. 사람들은 어떠 마음을 갖고 만나고 친구 관계를 어떻게 유지해?
상대가 나를 만나서 아주 조금이라도 날 만나기 전보다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만나. 그건 남녀노소 관계없고 가게직원이든 택시기사님이든 다. 그게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낫게 만든다고 믿고 살아서..
-가벼운 질문으로 요즘 가게 크게 웃었던 순간은?
많았는데... 바로 생각 안 나네. 애들이 날 매일 웃겨. 내 애들도 가르치는 애들도 다.
-아이를 세명이나 낳았는데, 형부와 언니 둘 다 셋 정도를 원했다고 했잖아. 당연히 힘들었겠지만 하나 일 때, 둘 일 때, 셋 일 때 뭐가 얼마나 달라? 힘든 것 외에 어떤 면이 좋아?
얘기하자면 밤 새야 하는데. 비교하기 어려워. 하나였을 때, 둘이었을 때가 너무 짧아서. 그리고 둘째 낳은 직후부터 남편이 거의 없었으니까 비교하기 어려운데.. (나는 하나였을 때는 엄청 수월했어 아이가 순둥이여서 아기 데리고 미술학원도 다닐 정도였고 테솔도 그때 땄으니까) 그리고 난 둘째 낳고서 더는 못 낳겠다고 했었어. 남편은 그걸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셋이어서 좋은 점은 인간에 대한 이해 범위가 넓어지는 점이 좋지. 다양한 면을 보게 돼. OX가 아니라 다양한 답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매일 배우게 돼. 셋 키우다 보니 웬만한 일은 놀랍지도 않아서 예상치 못한 일들에 담대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된 것도 장점이야. 그리고 한 명이 고민거리를 줘도 다른 둘이 웃게 만들어서, 여러 명 키우면 육아가 아무리 힘들어도 매일 웃을 일이 생기는 게 가장 큰 장점 같아.
- 아이들이 커 가는 동안 한동안 일을 하지 않고 전업주부로 살아왔는데, 어땠어? 일을 그만둔 걸 후회하거나 하진 않아? 왜냐하면 다시 일을 시작하고 너무 즐겁게 잘해나가는 게 보여서 말이지.
10년 꽤 길었지. 아이가 하나일 때, 남편과 관계가 그저 좋기만 했을 때, 20대였을 때는 '전업이 된 걸 후회한다'는 걸 잘 몰랐어. 이렇게 연달아 셋 낳을 줄도, 경단이 그렇게 길어질 줄도 몰랐고, 내가 사회복귀를 원하면 바로 일 시작할 수 있을 줄 알았고, 애들이 6살쯤 되면 손이 안 가고 초등 입학하면 난 시간이 남아 돌 줄 알았거든. 다 아니었다는 걸 하나씩 깨달으며 좌절했지. 그리고 무엇보다 남편이 내가 사회복귀하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강력하게 얘기해서 적극적으로 추진하기가 어려웠어.
근데 후회는 없어. 아이들과의 소소한 추억들이 지금도 자주 생각나거든. 아이들이 정말 천천히 컸어. 다시 돌아가도 그 이상으로 열과 성을 다하진 못 할 것 같아. 애들 키우며 힘들 때 그랬어, 이제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 삶에 가장 큰 꿈이자 목표가 있다면 뭐야? 그리고 지금 본인은 거기에 얼마나 도달한 것 같아?
아주 옛날에도 너에게 그 질문받은 적 있는 것 같은데...
-내가 좋아하는 질문이야.
그때부터 난 원대한 목표나 꿈은 없어. 하루하루 열심히 살다 보면 그에 걸맞은 성과가 나겠고, 그게 누군가에게 목표나 꿈이 될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 미래의 내가 그 무얼 이룬다 해도 자식들에게 부끄러운 엄마면 그게 의미가 없을 것 같아. 아이들에게 내 부족하고 모자란 모습을 가장 많이 보여주다 보니 혹시 내가 애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준 건 없을지 걱정될 때가 많거든. 그러니 어쩌면 가장 큰 꿈은 내 아이들이 '엄마 같은 어른이 되고 싶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거겠지. 그게 가장 어려운 목표 같아.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나만의 무언가가 있다면?
틈틈이 보고 듣고 느끼는 시간을 자주 가져서 나만의 오아시스를 찾기를. 음악, 미술, 독서, 운동 무엇이든. 현실이 고단할 때 시공간을 초월해 그저 살아있음에 감사하게 만드는 힐링모먼트는 내가 찾지 않으면 누가 대신 찾아주지 않으니까.
-오늘 인터뷰 고마워!
언니와의 인터뷰를 통해 아이에 대한 부모의 사랑에 대해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나도 조카들을 예뻐하지만 저렇게 내 온 인생을 다해 누군가를 위할 수 있음은 아직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다. '엄마 같은 어른이 되고 싶다'라는 아이들의 생각이 꿈이라고 말하는 언니를 보면서 언니는 이미 그런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언니는 내게도 언니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며 내 삶에 방향과 길을 보여주고 있기에 분명 언니의 아이들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살아갈 것을 난 의심치 않는다. 나는 내 언니가 나의 언니라는 점에서 내가 써야 할 운을 많이 썼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항상 언니의 존재에 감사하고, 나뿐만이 아닌 언니의 많은 친구들도 언니의 존재에서 큰 힘을 얻는다는 것을 안다. 그런 언니가 오늘 하루도, 내일도, 앞으로 그녀의 모든 삶이 웃음이 가득하길 나는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