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 부자였던 직장인 선배와의 인터뷰
선배는 내가 대학원 연구실에 들어갔을 때 졸업을 일 년쯤 남겨둔 박사과정생이었다. 사실 우린 나이가 같은데, 말을 놓으라 했음에도 내가 선배라고 존대를 하면서 그게 시간이 길어져 이제 와서 말을 놓자니 서로가 어색해질 것 같다. 연구실에는 가장 선임이었던 이 선배는 할 땐 하는 것 같은데 어떨 땐 ‘저 사람은 연구 안 하고 뭐 하는 거지?’ 싶을 정도로 대학원 안에서도 즐길 걸 즐기면서 살아가더라. 그렇지만 그룹 미팅 때는 또 실험 결과물을 가지고 오던 사람이었다. 다른 선배나 교수님이 종종 “걔 머리 좋지”라고 얘길 하는 걸 들어서, 아 저런 게 바로 머리 좋은 이의 삶인가-라고 생각을 했었다.
선배는 졸업과 동시에 기업에 취직을 해서 연구원으로 일해나가고 있다. SNS를 통해 보이는 선배는 여전히 다양한 취미생활을 통해 인생을 즐기고 있었다. 내가 아는 직장인 중에 이 선배만큼 다양한 활동을 즐기는 사람을 보지 못해서, 한국에서 일상을 즐기며 살아가는 직장인 선배가 궁금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해요
화학과 박사 졸업 후 지금은 서울 소재 기업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는, 우리 주변에 널려있는 8년 차 평범한 회사원입니다.
-같은 연구실에서 지냈잖아요 선후배로. 그때부터 주변에서 들었던 게 선배는 머리가 좋대요. 실제로 대화해 보면 똑똑한 건 맞는 것 같아요. 이해도 빠르고. 그래서 그냥 궁금했던 게, 뭐 천재까지는 아니더라도 내가 그래도 머리는 평균 이상인 걸 느껴요? 뭔가 나는 쉽게 이해하는 걸 남이 못 하거나 그런 경험이 좀 있었어요? 그냥 궁금했던 거예요.
겸손이고 나발이고가 아니라 그런 소리는 아무리 생각해도 진짜 하나도 공감하지 못하겠어.(웃음) 이해나 추론 이런 거 나도 못 할 때도 많고 그냥 평균일 거 같아. (사실 남에게 관심이 별로 없어서 내가 남보다 빠른지 등의 생각이 아예 없어.) 암기나 언어 쪽에선 평균보다 못하다고 생각해. (웃음)
그리고 그런 소리를 듣는다는 건 결국 주변의 기대치는 높고 내가 잘하면 본전- 못하면 완전 손해인 아주 억울하고 저주 같은 상황이야. (울고 싶어)
-선배가 대학원생이고 우리가 같이 지내던 때는 아직 수제맥주가 지금처럼 보편화되지도 않았었고 직접 맥주를 만드는 사람은 없었어요. 선배는 내가 처음으로 본 맥주를 직접 만드는 사람이었어요. 선배를 보면 좋아하는 게 있으면 그걸 실천하는 행동력을 보이는 것 가더라고요. 그때부터 꽤나 삶을 즐기며 사는 사람 같다 생각했어요. 취직하고도 다양한 취미를 즐기고 있는 걸 SNS로 봤어요. 회사 다니면서 이런저런 다양한 취미생활을 하는 게 힘들진 않았어요? 그런 사람들도 많잖아요. 퇴근하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주말에는 집에만 있고 싶어-하는 사람들.
난 직장 생활 처음 2년을 지방에서 했는데, 거기서는 정말 퇴근하면 아무것도 할 게 없었어. 그때 했던 취미라고 해봐야 여행/스쿠버 다이빙 (많아야 1년에 3~4번), 영화/공연보기 (한 달 1~2번), 맥주 만들기 (한 달에 며칠 정도), 기타 연주와 밴드활동. 기타가 그나마 시간 좀 들었겠다. 서울에 올라와서는 기타 들고 홍대 등지를 다니기까지는 너무 힘들어서 점차 안 하게 되고, 맥주 양조도 서울 오면서 접었고, 그나마 여름에 다이빙하고 겨울에 스키 타기 정도 했어. 이 정도 하면서도 쉴 시간은 충분해. 물론 돈은 많이 써.(웃음)
-얼마 전 연락하며 결혼 후에는 이런 취미 부자의 삶은 없다고 하셨는데, 그런 결혼 전 후에 뭐가 어떻게 달라진 거예요? 제가 결혼을 안 해서 잘 모릅니다.
결혼 후엔 일상을 혼자가 아니라 같이 하게 되니까, 여행을 가더라도 행선지와 일정과 할 거리를 협의해야 하고 다이빙이나 스키 등 사람에 따라 익스트림하다고 할만한 것들은 할 수 없게 될 수도 있고, 명절이나 처가 등 챙길 것들이 많아지니 돈 들어갈 곳이 많아지지. 운명 공동체가 생기고 나니 나 혼자 아무렇게나 결정하던 것들이 많이 줄고, 전보다 나이도 들면서 나도 이제는 주말 내내 안 나가는 게 좋기도 해.
-그래도 결혼해서 좋으시죠? 결혼해서 좋은 점 좀 알려주세요.
그래도 결혼이 좋냐고 하면 좋지! 내가 해오던 게 제약받는다는 상황이 짜증 나거나 기분 나쁜 게 아니라, 내가 결혼 생활을 선택함으로써 당연히 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나를 대상으로 나와 같은 선택을 해준 사람에게 고마운 게 가장 큰 것 같아. (물론 지금 난 육아를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힘든 것 없이 좋은 것만 찍먹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네?)
-제가 제대로 직장 생활을 안 해봐서, 연구원으로 일하는 회사가 궁금해요. 연구 주제들은 좀 만족하시나요? 재밌게 하고 있나요? 재미없는 연구는 힘들지 않아요?
지금 내가 있는 곳은 고객사가 명확하고 고객이 바라는 것도 명확한 오래된 사업부라서 고객의 압박도 있고, 내가 하고 싶은 어떤 걸 마냥 맘대로 시도해 보기도 힘든 여건이긴 해. 그래도 크게 흘러가는 사업 안에서 해볼 역할들은 있고 성과를 내기도 하고 그래.
그런데 또 성과와 인정은 다른 거긴 하지. 연구 분야의 재미도 원래 있다 없다 하는 거고, 늘 행복할 수만은 없지. 모든 회사원이 각자의 자리에서 나와 같지 않을까?
-일상을 더 즐기기 위한 나만의 비법 같은 것 있어요? 선배는 있을 거 같은데...
일상을 즐기는 비법이라 하면... 일상생활에서 하고 싶은 것 내지 즐길 거리를 미루지 않기라고 할까? 해야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이 충돌할 때면 '해야 할 것을 안 했어 때의 뒷감당+하고 싶은 걸 할 때의 행복감 >0' 인지 빨리 판단하고 나중에 후회하지 않는 것. (물론 법과 도덕과 현재의 여건이 허용하는 한에서 그렇지. 그래서 학생 때는 수업도 빼먹고 술 먹으러 다녔지. 웃음)
-마지막으로, 내 삶에서 꿈이나 어떤 목표가 있다면 그게 무엇이고, 현재의 선배는 거기에 어느 정도 도달해 있다고 생각해요?
삶의 꿈이나 목표는 "늘 중간은 하기". 재미없을 수도 있는데, 이런저런 방면에서 모두 중간을 한다는 건 사실 굉장히 도전적인 목표야. 학교에서부터 늘 '나는 특출 나지 않다/ 내가 생각한 건 남들도 다 했다/ 아무도 안 해본 것 같은 건 했는데 안되는 거다'를 느꼈기 때문에 지금 저게 어려우면서도 내겐 현실적인 목표라고 생각해. 이렇게만 된다면 스스로도 행복할 것 같아.
지금까지 방면에 따라 중간보다 잘한 것도 있겠고 못한 것도 있겠으나 그 두 가지가 더해지면 중간은 도리 것 같아서 아직은 잘 가고 있구나 싶어. 진짜 달성했는지는 나중에 내가 죽을 때쯤 돌아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으니 일단 평균만큼은 살아보려고.
-인터뷰 감사해요!
이런 걸 처음 해봐서 열심히는 해봤는데 제대로 했는지 모르겠네. 내가 한 얘기들이 책에 실제로 들어갈지 궁금하니까 나중에 책 나오면 꼭 알려줘. (웃음)
처음에 선배에게 인터뷰 요청을 하자 본인은 그냥 직장인이라며 거절의사를 밝히기에 내가 선배 같은 취미부자 직장인은 보질 못 했다고 말했었다. 그러자 결혼 후 취미부자는 없다고 말해서 나는 순간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었다. 하지만 인터뷰를 통해서 선배는 여전히 선배다운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결혼으로 전과는 달라진 일상을 자신의 선택에 의한 당연한 일상으로 받아들이며 그 생활 속에서도 고마움을 느끼며 살아간다는 것에 성숙한 어른의 자세 같아 동갑의 선배지만 '오 어른이네'하는 생각이 들었다.
늘 중간은 하기라는 게 굉장히 공감 가는 목표이면서도 선배 말처럼 그게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선배가 삶에서 이 목표를 이뤄가며 스스로 행복을 느끼면 좋겠다. (하지만 난 안다. 이 사람은 중간이라 하지만, 거의 대부분 중간 이상을 해낼 거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