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떠한 선택을 하든 자신에겐 최선의 선택일 거라는 사람

N잡러를 꿈꾸는 예비 엄마, 사촌동생과의 인터뷰

by 이확위

동생이 없는 우리 집에서 막내로 마음대로 자라난 내게 세상에서 가장 동생 같은 존재라면 아마도 S일 것이다. S와는 어릴적부터 멀지 않은 곳에 살면서 자주 왕래하곤 했지만, 그녀에 대해 그다지 잘 알지는 못했다. 그런 그녀에게는 아래로 남동생 둘이 있으니 그녀는 말 그대로 K-장녀다. 난 그녀가 어떤 어려움을 갖고 어린 시절을 보내왔는지 잘 몰랐다. 우리가 조금 더 가까워진 것은 그녀가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취직을 준비하며 내 친언니의 집에서 머물면서이다. 그 시절 언니는 둘째를 낳고 육아로 힘들어하는데 그 언니 곁에서 둘째 갓난아기를 돌봐주는 그녀에게 난 고마움을 느꼈다. 언니네 집에 주말마다 찾아가며 그녀와도 자연스레 많은 대화를 할 수 있었고, 내가 몰랐던 아픔을 많이 가지고 살아왔음을 알았다. 정신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그녀에게 나도 나의 어려웠던 과거에 대해 얘기하며 우리는 그렇게 조금씩 더 가까워졌다.

그녀는 내가 도전하는 많은 것들을 항상 옆에서 응원해 준다. 나는 그녀를 위해 도와준 게 너무 없는 것 같아 미안함에도 끝없이 나를 응원해 주는 S가 고맙다. 미처 듣지 못했던 그녀의 어린 시절의 아픔이나,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하며 이제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될 그녀의 삶에 대해 얘기해 보고자 인터뷰를 진행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해

안녕 나는 언니의 사촌 동생이자 현재 30대 중반을 이어가고 있는 S야. 외국계 회사에서 퍼포먼스 마케터로 약 10년 동안 일을 했고, 임신과 동시에 일을 쉬게 되었어. 결혼과 출산이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 없다가 이 일들이 내 삶에 일어나게 되면서 현재는 제2의 삶을 준비하고 있어.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이고, 어떤 일에 관심이 있고, 어떤 것들에 도전해보고 싶은지를 생각하면서 출산을 기다리고 있어. 늘 끊임없이 시도해 보는 중에 있는데 딱히 끈기가 있진 않아서 결과가 시원찮을 때가 더 많지만 뭐든지 경험해 보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여전히 이번엔 또 뭘 배워볼까 두리번두리번거리고 있어.


-미국에서 대학을 다녔잖아. 어떻게 가게 됐고, 생활은 어땠어?

어려서부터 영어를 매우 좋아했어. 생각해 보면 외국어 자체를 흥미로워했던 것 같아.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처음 ‘사과’라는 단어를 영어(Apple)와 일본어(りんご)로 배웠을 때, 심장이 터질 것 같이 두근댔던 기억이 나. 이때부터 영어와 일본어를 좋아하고 열심히 했던 것 같아. 주변 어른들이 나만 보면 ‘나중에 미국에 가라. 하버드에 가야겠네.’ 하셨고, 그걸 진짜로 받아들여서 언젠간 난 미국에 갈 거라고 생각했어.

그러다 수능을 후 재수나 편입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남아선호사상이 강했던 엄마는 딸인 나의 교육에 투자하는 걸 아까워하며 반대했지. 그대로 진학하고 내가 그 곳에 가서 후회한다면 그 때 유학을 보내주겠다는 말에 진학을 했지만 적응하지 못했어. 내가 생각한 대학 생활이 아니었어. 바로 유학준비를 하고 최종 합격 후, 가족들을 설득해서 미국으로 떠났어. 너무 준비없이 혼자 떠나다보니 고생을 많이 했어. 돈도 너무 많이 들어 돈을 보내달라 소리도 잘 못해서 굶는 경우도 있었어. 차별이나 자국민만 위한 것들도 많고, 또 예상대로 일이 다 풀리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고생을 많이 했어. 너무 힘들 땐 뉴욕 브루클린 브리지를 걸으면서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나. 브루클린 브리지 야경이 이쁜데, 그 한가운데서 높게 흔들리는 미국 국기가 어찌나 야속하던지.


-한국으로 돌아온 이유는 뭐야? 기회가 있다면 다시 가고 싶어?

원래 목표는 미국에서 취업하고 자리 잡는 것이었는데, 수시로 변하는 이민 정책이나 내 건강 때문에 무사히 졸업 후 한국에 돌아오는 걸 목표로 최선을 다했어. 한국에서 외국계 회사를 다니며 방법을 모색했지만 쉽지 않더라고. 싱가포르로 갈 생각으로 중국어도 공부했지.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에 영어까지 하면 가능성이 보였거든. 싱가포르 회사들에 면접을 봤었는데 코로나가 터지고 싱가포르가 봉쇄되면서 그 기회들이 사라졌어. 하지만 기회가 언제 올지 모르니 항상 준비하고 있었고, 얼마전에는 미국계 스타트업 회사에서 비자 지원까지 해준다해서 계약서까지 썼는데 임신을 하면서 입사를 포기했어.

어리고 혼자였을 때 보다는 외국으로 다시 나가는 길이 덜 보이게 되었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 지 모르니 준비는 늘 하고 있어. Where there is a will, there is a way! 다른 방법이 올 거라 믿고 그 때는 놓치지 말아야지.


-요즘 N잡러의 삶을 살겠다고 했는데, 그렇게 마음먹게 된 계기가 있을까? 하나가 아닌 N잡인 이유는 뭐야?

나는 퍼포먼스 마케터로 10년 가까이 일했어. 생소한 분야지? 마케팅에 크게 디지털 마케팅과 오프라인 마케팅이 있는데 나는 그중 디지털 마케팅, 그리고 머신러닝을 활용하여 광고 효율을 극대화하는 퍼포먼스 마케팅을 했었어. 근데 이 분야는 가속화된 머신러닝, AI로 인해서 점차 내가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게 해가 갈수록 느껴지더라고. 무에서 유를 만드는 분야가 아니라, 효율을 극대화하는 분야다 보니, 빅데이터랑 인공지능을 어떻게 이겨? 그래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분야인 창작이 포함된 분야를 해야 한다는 니즈가 있었어. (물론 요즘 ChatGPT를 보면 창작이 인간만의 분야가 아닌 것도 같아)

그리고 앞에 말했던 것처럼, 100세 시대고, 한 가지 일만 할 수 없는 시대가 도래했다 보니 제2, 제3의 직업을 가질 준비를 해야겠더라고. 그리고 나는 IT, 앱 쪽에서 일하다 보니, 한 플랫폼에만 집중하는 것보다는 여러 플랫폼에 콘텐츠를 엮어 엮어 크게 굴리는 편이 더 좋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었어. 그래서 N잡러가 되어보고자 결심했지. 내가 생각하는 모습은 브런치에서 임신일기와 에세이를 올리고, 인스타그램에서 유아 영어 교육 관련 콘텐츠 요약을 올리고, 상세 내용은 유튜브와 블로그로 풀어내는 식으로 운영하는 게 나의 큰 그림이야.


-우선 결혼 축하해. 어떻게 결혼을 결심하게 됐어?

사실 난 집에서 차별받고 자라서 그런지 어려서부터 깊숙하게 애정결핍이 있었어. 그래서 누가 조금 좋다하면 바로 푹 빠져버리며 중요한 것들을 제대로 보질 못했어. 그러다 보니 경제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1+1이 3 이상이 되는 경우가 아니면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게 나의 오랜 모토가 되어버렸지. 그러다가 지금의 남자친구를 달리기 모임에서 만나게 됐어. 매우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는 사람이라 덕분에 나도 점차 안정화 되더라고. (언니도 나한테 그랬듯이 다른 사람들도 나에게서 평안한게 보인대)

내가 결혼을 결심한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같이 떠난 제주도 여행이었어. 여행 마지막 날은 유달리 햇빛이 좋았고, 계획에 없던 우도에 갔는데 햇빛과 바람 한 점 없이 맑은 날씨에 내리쬐던 햇빛과 흔들림이 심했던 이륜차에 우리 둘 다 너무 지쳤었지. 저녁에 도착한 제주 공항에서 둘 다 너무 피곤해서 잠 조차 오지 않는 상태에서 비행기에 탔고 터질 듯 아픈 눈을 감고 있다가 문득 남자친구를 봤거든? 그런데 계속 날 바라보고 있던 남자친구는 눈감고 쉬라며 내 마스크를 눈으로 올려 안대처럼 해주는 거야. 거기서 나는 웃음이 빵 터졌고, 이 때 결혼을 다짐 했어. 서로 최악의 컨디션이었지만 서로를 배려했고, 남자친구는 이런 순간에도 날 웃게 만들었지. 이 무한한 배려와 다정함에 내 안의 벽이 와르르 무너져버린 것 같았어. 나한테는 이날이 결정적이었어.


-어떤 요인이 이런 결정을 하는데 가장 주요하게 작용했는지가 궁금해

음, 사실 난 결혼에 별 큰 뜻이 없었고, 환상 또한 없었어. 워낙 사이가 좋지 않은 부모님 탓이 크지..그리고 우울증이랑 불안증이 어렸을 때부터 있었으니까, 미래 없이 사는 편이었거든. 사실 난 내 삶의 마지막은 늘 자살일 거라고 생각했고, 이런 나에게 30대 이후는 없을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거든. 30대가 되어서도 여전히 나는 목표 없이 하루살이처럼 하루를 감내하며 살아내고 있었어. 근데 내가 남자친구 옆에서 미래를 보더라고. 너무 신기했어. 처음에는 남자친구가 낮잠을 자는데 그 옆에 작은 아기가 있는 모습이 자꾸 꿈에 나왔어. 그러다가 얼마 전엔 남자친구가 날 놀리는데, ‘어이구 이 사람은 80살이 돼서도 날 이렇게 놀리겠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여기에 내가 너무 놀란 거야. 내가? 80살을? 그 먼 미래를 본다고? 정말 소름이 오소소 돋더라고. 내 생에 이렇게도 선명한 미래가 보인 날은 없었어. 이런 이유로 나는 남자친구와의 결혼을 굳게 다짐했어. 나는 남자친구랑 같이 나이 들겠지. 영원한 사랑은 없고, 힘든 순간은 반드시 생길 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를 배려할 거고, 결국엔 같이 웃는 모습을 내가 봤어!


-출산을 앞두고 있는데 기분이 어때?

출산.. 사실 나는 아직까지도 뱃속의 아이에 대해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있어, 너무 모성애 없는 발언인가? 그렇지만 임신을 하고 나니 뭐 이렇게 하지 말라는 것들이랑, 먹지 말라고 하는 것들이 많은지! 온갖 제약 투성이야. 게다가 입덧은 어떻고? (나는 임신을 하면 생리통이랑 생리 전 증후군이 없어져서 편할 줄 알았다? 웬걸 생리통이랑 생리 전 증후군이 몇 개월 내내 있더구먼!) 물론 병원에 가서 심장소리 듣고 초음파소리 듣고 하면 한 며칠은 찡하고 애틋한데, 며칠 안 가고 까먹더라고.(웃음) 그냥 아직까진 나는 아기랑 나랑 나 한 몸을 공유하며 잘 지내는 방법을 찾고 있는 거 같아. 이제 5개월을 다 채우고 있는데 며칠 전부터 태동이 느껴지기 시작해서 무척 신기해. 요가 수업을 듣고 누워서 숨을 고르는데 장 쪽이 꿀렁꿀렁 거리더라고. 그래서 손을 올렸더니 내 손을 ‘톡’ 쳤어. 첫 하이파이브를 한 거지! 신기하더라.(웃음) 사촌 언니가 조카들 임신했을 때 생각도 많이 나고 그냥 신기해하는 나날들인 거 같아.


-어떤 엄마가 되어주고 싶어?

‘어떤 엄마가 되어주고 싶다’ 보다는 자연스럽게 ’ 어떤 아이로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더 많이 떠오르는 거 같아. 특히 주변에서 영어유치원이니 사교육이니 뭐니 너무 들리는 말이 많아서, 어떠한 교육 가치관을 가지고 아이를 키워야 할까 가 요즘은 나의 큰 고민이야. 몇 주 전부터 고민하다 결론 내린 나의 교육관에 대해서 말해도 될까? 내가 내린 결론은 이거야: ’ 공부는 스스로 하는 것이다 ‘. 가까운 주변만 보더라도 주입식 교육을 시킨 내 두 남동생들은 크게 발전이 없더라. 누가 알려주지 않은면 무언가를 나서서 도전하지도 않아. 반면에 나나 언니들만 보더라도 스스로 공부하고, 지금까지도 여러 가지 도전을 이어오고 있잖아? 이런 주체적인 태도를 가진 아이로 키우고 싶다는 것이 나의 목표야. 그렇기 때문에 공부를 푸시하는 대신, 스스로 하고 싶고, 때가 왔을 때 할 수 있도록 기초를 단단하게 세워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요즘 가장 즐겁게 하는 건 뭐야? 취미라던가. 널 웃게 만드는 것

퇴사를 하고 쉬고 있다 보니 요즘 딱히 큰 스트레스가 없어서 매일매일 즐거운 거 같아.(웃음) 회사는 역시 만병의 근원! (더 큰 웃음) 며칠 전에 먹은 꽃게 파스타가 너무 맛있어서 행복했고, 요즘 밤에 시원해져서 산책하기 좋아 기분 좋고, 또 요즘 언니 글 읽으면서 너무 멋있어서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단 생각에 마음이 부풀어서 좋아! 아 맞아 지난주 영어회화 모임에서 언니 이야기를 했거든? 프랑스에 가고, 한식 요리 수업을 하고, 한국 문화 수업을 하고, 브런치에 글을 쓰고 편찬 준비를 하고. 이 모든 것들이 언니가 무언가를 끊임없이 도전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뭐든지 아무리 도움이 안 될 것 같은 것이라도 해봐야 한다고. Connect the dots라고 했던 스티브 잡스 말처럼 무엇이든 도전하면 결국 그걸 따라 새로운 일이 펼쳐진다고. 그 얘길 했는데 같은 그룹에 있던 어떤 분이 "very inspiring story"라고 하시면서 언니 글을 보고 싶다고 하셔서 내가 소개해줬어! 그때도 막 자랑스럽고 뿌듯했어.

방금 조카 M한테 카톡이 왔는데, 생각해 보니 요즘 나를 가장 웃게 만드는 건 조카 M인 거 같아. 언니가 말했듯 M과 나와의 관계는 특별하다면 특별할 수 있는 것 같아. 나한테 M은 내 생명의 은인이자, 나를 용서하는 법을 알려주고, 또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려준 아이거든. 가장 우울증과 불안증이 심해서 죽고 싶었을 때, M이 제일 떠오르더라고. 얘는 나라는 존재를 알아차려버렸잖아. 근데 내가 없어지면 혹여나 M이 슬퍼할까 봐 그게 제일 걱정돼서 안 되겠더라고. 그것도 그렇고 나는 남아선호사상 심한 엄마 밑에서 차별과 정서적 학대를 받으면서 자란 딸이라, 딸에 대한 혐오가 있었어, 내가 딸임에도. 웃기지. 근데 그걸 산산조각 내준 게 M이었어. 그리고 나를 쓸모 있는 사람으로 여길 수 있도록 도와준 것도 M이었지. 아마 내가 성인이 되고 쓴 첫 글이 M에 대한 글이었던 거 같아 (https://brunch.co.kr/@chestnutrhee/2). 이런 소중한 M이 내 임신을 기뻐하고, 앞으로 어떻게 놀아줄지, 뭘 해줄 건지 조잘조잘 이야기하는 모습이 벅차게 행복해. 아마 난 늘 살아가면서 M에게 감사하고 고마워하며 살 거 같아.


-인생에 꿈이 있다면, 단순히 직업적인 것을 떠나 인간으로서 이루고 싶은 궁극적인 꿈 말이야.

오 이 질문 매우 어렵다. 인간으로서 이루고 싶은 궁극적인 꿈. 음, 생각해 봤는데 나는 또렷한 목표가 있지는 않은데, 그저 ‘후회 없이 살다 간 사람’이 되고 싶어.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도전해 보는 사람. 주저하고 고민만 하기엔 너무 시간이 짧은 거 같아. 사실 난 겁도 많고 생각도 많은 사람이라 도전이 마냥 반갑지는 않아. 그런데 생각이 길 수록 용기는 반감된다고 생각해서 무언가 떠오르면 고민을 좀 줄이고 일단 해보는 방식을 선택하는 편이야. 그 편이 후회도 더 짧더라고. 이러다 보니 무작정 부딪혀보고 깨닫는 편이라 남들보다 속도가 많이 느린 편이야. 근데 어쩌겠어 이게 나란 사람이 배우는 방식인 것을. (웃음) 나는 나 자신이 선하고 올바른 사람이기 때문에 어떠한 선택을 하든 나에게 도움 되는 최선의 선택일 거라고 굳게 믿어. 그래서 선택과 선택의 연속인 삶에서 다양한 것들을 도전하며 후회 없이 삶을 살아볼래.


-그렇다면 지금은 너는 그 꿈에 얼마나 가까운 것 같아?

나는 아직도 내 꿈을 이루어가는 중이야. 아마 내 꿈이 이루어졌는지는 내 삶의 마지막 순간에야 알 수 있겠지?(웃음) 아직 인생의 1/3 밖에 안 살아왔지만, 지금까지로 미루어보아, 나는 순조롭게 잘 꿈을 이루어갈 수 있을 거 같아. 음, 언니들은 모르겠지만 어렸을 때부터 난 언니들을 엄청나게 따라한 따라쟁이거든. 언니들은 늘 나의 아주 근접한 미래를 보여주는 거울이라고 생각했어. 외고도, 브이로그도, 브런치도 다 언니들 따라한 거지롱(웃음) 고민이 되는 순간마다 이렇게 멋진 거울인 언니들을 잘 따라 하며 선택을 하다 보면 그 꿈에 반드시 이룰 것이라고 믿어! 앞으로도 잘 부탁해 언니!


-인터뷰 고마워.

나야말로 내 이야기 들어줘서, 내게 질문해 줘서 너무 고마워. 늘 응원해! 언니 파이팅!



S와의 인터뷰는 기분이 좋았다. 그녀가 아픔이 많이 있었고 정신적으로 힘들어했던 순간들을 알고 있기에, 그녀를 이렇게 안정적으로 바뀌도록 좋은 영향을 주고 그녀가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해주는 존재가 이제 그녀의 옆에 있다는 사실에 고마움과 안도감이 든다. 나와 그녀는 모두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약을 받아먹곤 했었는데, 그녀가 내게 "대체 언제까지 약을 먹어야 할까"라며 계속되는 그런 아픔들에 힘들어했던 때가 있었다. 그런 그녀가 이제 전보다 마음의 평화를 얻어가며 삶을 긍정적으로 보기 시작한 모습이 대견하고 아름답다. 스스로를 선하고 올바른 사람이라고 믿기에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자신에게 최선을 선택일 거라며 후회 없이 도전하는 삶을 살아간다는 그녀의 강인함이 보기 좋다. 난 언제나 그녀의 도전을 응원할 것이다. 그녀가 말한 것처럼 그녀가 결정한 자신을 위한 최선을 선택일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