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족하냐 묻는다면, 지금의 소소한 삶에 만족해요

44세, 프랑스 12년 차 아이 셋 어머님과 인터뷰

by 이확위

S 씨는 스트라스부르에서 한인 커뮤니티에서 알게 된 분이다. 큰 대화를 나눠보진 못 했었지만, 함께 하는 식사자리에서 내가 나의 “보통 사람 인터뷰”에 대해서 언급하며 혹시 관심 있는 분은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했더니, “나는 그러면 아이돌 얘기밖에 할 게 없는데~”라고 하시는 거다. 나는 오히려 그게 좋다고 했다. 나이에 상관없이 아이돌을 좋아할 수도 있고, 그런 사람도 있는 거니 다양한 삶을 보여주고자 하는 나의 이 시리즈에 적합한 분이라고 얘길 했다.


S 씨는 아이가 셋이다. 프랑스에서 살아가면서 이곳 사람들은 아이가 많아서 (한국이 워낙 저출산 국가니까) 프랑스에서의 육아에 대해서도 궁금한 것들이 많았다. 아이돌을 좋아하는 프랑스에서 살아가는 학부모에게 묻고 싶은 것들이 하나 둘 떠올라서, 인터뷰를 요청했고 흔쾌히 해주겠다고 하셔서 함께 평일 주말 저녁, 맥주와 간단한 식사 겸 안주를 곁들이며 인터뷰를 진행했다.


1.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저는 44살이고, 서울에서 쭉 자라다가 남편을 만나고 유학생 남편과 함께 프랑스에 와서 스트라스부르에서 12년째 살고 있어요. 1년은 어학을 하고 지금은 쌍둥이와 막내까지 세 명의 아이를 키우는 주부로 지내면서 이곳 식당에서 일하고 있어요.


2. 아이들은 프랑스에서 쭉 자란 거네요. 그런데 아이들이 한국말을 굉장히 잘하더라고요.

그렇죠. 쌍둥이는 태어난 지 6개월쯤 이곳에 왔고, 막내는 여기서 태어나서 쭉 자랐죠. 아이들은 한국에서 살았던 기억은 전혀 없어요. 아이들이 한국말을 잘하는 건 아마도 우리가 한국말만 쓰는 가정이었기 때문일 거예요. 우리 부부가 불어를 잘 못했던 것도 있지만, 주변 선배 부부들로부터 많이 얘길 들었어요. 불어는 어차피 밖에서 시간이 많고 잘하게 된다며 한국적인 것을 더 강조하더라고요. 그래서 우리는 아이들에게 불어를 푸시하거나 하지 않고, 문 닫으면 그냥 한국 집으로 살아왔어요.


3. 아이들이 셋이면 키우시는데 힘드셨겠어요.

정신없이 지나갔던 것 같아요. 아이를 키우는 것도 처음이었지만, 외국 생활도 처음이었어요. 초보 부모로 해외에서 아이들을 키워 나가는데 어려움도 많이 있었죠. 주변에 도와줄 가족이 없다는 것도 힘들었어요. 한국에서는 부모님이 아이 키우는 것을 도와주기도 하고, 여기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도와주고 그러거든요. 그런 게 없이 오롯이 제가 해야 하는 게 어려웠죠.


하지만 이곳에 있으면서 가족 같은 그런 한국인 구성원들이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과 가까워지면서 함께 모여서, 애들 풀어 두고 부모들끼리 함께 얘기도 나누고 어울려 지내고 그런 게 좋아요. 그런 곳에서 위안과 에너지를 받았어요.


4. 아이들이 이곳에서 거의 자라서, 한국에서의 육아와 비교할 수는 없겠네요. 그래도 한국과 프랑스에서 아이들 교육에 있어서 차이점에 조금 얘기해보신다면 어떤 게 있을 까요?

그래도 직접 아이들을 그곳에서 키운 건 아니지만, 제가 한국에서는 두 돌 정도부터의 아이들부터 중, 고등학생까지 가르쳐본 경험이 있어서 한국 교육을 간접적으로 경험을 해본 긴 했어요. 확실한 건 어릴 때만큼은 이곳이 한국보다 공부, 공부하지는 않는다는 거예요. 여기도 고등학교부터 대학교 가면서 학업량이 많이 늘어나고 어려워지긴 하는데, 그전까지는 아이들이 밖에서 뛰놀 시간들이 많아요. 확실히 어렸을 때의 학업량이 적어요. 제가 어릴 때는 친구들과 밖에서 뛰어놀면서, 엄마가 “밥 먹어~”하고 외치면 집에 들어가고 그런 생활을 했었는데, 제 아이들이 이곳에서 그런 생활을 하고 있어요.


5. 한국이 요즘 낮은 출산율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어요. 프랑스는 살아보니 아이들이 참 많아요.

환경이 중요한 것 같아요. 여기서는 주변 사람들도 아이가 많아서 제가 많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저희 옆집이 두 번이나 바뀌었는데, 두 번 다 아이가 넷이었어요. 그런 집들을 보다 보면 제가 결코 많다고 느끼질 않는데 한국에 가면, 제가 국위선양을 했구나 싶어요. 내가 애가 많은 거구나 싶은 거죠. 저도 한국이었다면 셋까지는 낳지 못했을 거예요. 처음에 한국에 있을 때만 해도 하나만 낳자 했었고, 그게 쌍둥이여서 둘이니 여기까지만 하자했었죠. 그런데 프랑스에 오면서 막내까지 가지게 되었는데, 애가 셋이라서 한국으로 돌아가기 어렵게 느끼기도 해요. 애들을 한국에서 키우려면 얼마나 많은 돈이 들까 싶어서 불편한 진실을 마주해야 하는 거죠.


6. 아이 셋을 키우시면서 식당에서도 일하고 계시다고 들었어요.

일한 지는 한 3년 정도 되었어요. 누가 제안을 했는데, 애들도 이제 어느 정도 컸으니 내가 할 수 있겠다 싶어 시작하게 되었죠. 애들이 컸다는 건 결국 저의 주관적인 판단이긴 해요. 시작할 때만 해도 두 명은 중학생이지만 막내가 초등학생으로 어려서 고민했어요. 주변 가족들이 애들 케어하는데 일하기는 어렵지 않겠냐 했었어요. 남편은 한국에 있기도 하고 어렵지 않겠냐고들 했지만, 지금 아니면 언제 하냐 하는 생각에 시작했어요. 내가 괜찮겠다 싶어 시작한 거예요. 우리 부모님은 엄마 손이 더 필요하지 않겠냐 걱정하셨었어요. 그런데 그건 지금도 그래요. 아이들은 여전히 엄마 손이 필요해요. 애들이 혼자 씻고, 먹고 한다고 해도 말이죠. 아마 어른이 되어도 그럴 거예요. 엄마에게 아이들은 언제나 아이들이니까요.


제가 하는 일이 주로 점심시간이어서 시간적으로 괜찮았어요. 다행히도 우리 애들은 학교에서 주는 식사를 잘 먹는 아이들이었어요. 아이가 학교에서 주는 식사를 싫어하는 애들이었다면 제가 점심에 집에서 챙겨줘야 해서 이런 일을 하지 못했을 수도 있죠. 뿐만 아니라, 이곳 일이 늦게까지 하는 게 아니라 아이를 키우며 일할 수 있었어요.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기 전에 일이 끝나거든요. 프랑스에서 직장인들이 아이가 있는 경우, 출퇴근 시간도 좀 더 유동적인 것 같아요. 그런 것도 아이를 키우기 더 좋은 환경이겠죠.


*실제로 우리 연구소에도 아이 픽업을 위해 일찍 퇴근하는 정규직 직원들이 제법 있다. 뿐만 아니라, 한 남자 연구원은 아이가 태어나서 일 년간 출산 휴가를 떠났다. 연구실에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가끔 나와 체크하는 정도만 하고 있다.


7. 혼자만의 자유시간에는 뭘 하시나요? 취미생활 같은 게 따로 있으신가요?

애들 재우고 할 수 있는 일을 취미생활이라 할 수 있을 텐데요. 저는 케이팝을 좋아해요. 좋아하는 아이돌이 있어서 덕질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풀죠. 한국 드라마나 영화도 좋아해요.


그런데 그것 외에도 화분 키우기를 좋아해요. 애들이 많이 어릴 때는 못 하다가, 누가 주면서 하나 둘 키우면서 그 수가 점점 많아졌어요. 전부터 항상 키우는 것을 좋아했어요. 엄청나게 신경 써주고 공부하면서 키우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이 학교에서 씨앗을 받아오면 함께 심기도 하고, 사과를 먹다가 나온 사과씨를 심어서 싹을 틔우기도 하고 이런저런 시도를 많이 해요. 많이 죽기도 하는데, 오랫동안 하나 보니 하나 둘 남은 것들이 많아졌어요.


키우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물고기도 키웠었는데, 한 때 그 수가 확 많아졌다가 무슨 일이 생겨 모두 죽어서 한동안 너무 힘들어 키우질 못했어요. 그러다 선물로 받아 새를 한 마리 키우게 되면서 다시 키우는 즐거움을 느끼고 있죠.


8. 아이돌은 어릴 때부터 좋아하셨어요?

저는 어릴 때는 팝송만 들었어요. 제가 어릴 때 뉴키즈온 더블록이라고 유명한 그룹이 있는데 친구가 그 그룹 노래를 들려줘서 그때부터 팝송을 들었죠. 고등학교 때 아이돌 그룹들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친구들이 좋아했고 저는 그런 친구들을 응원했죠. (웃음)


케이팝은 대학교 때쯤부터 듣기 시작했어요. 케이팝이 많이 발전하고 변하기도 했었고요. 이곳에 와서 육아를 하면서 음악은 원래 좋아했었기에 케이팝을 틀어놓고 집안일을 하고 그랬어요. 아이들이 어릴 때는 동요를 듣다가 동요가 너무 듣기 싫어서 내가 듣고 싶은 노래를 틀었죠. 애들이 커가면서 점점 케이팝을 함께 좋아하기도 했고요. 지금은 각자 좋아하는 케이팝 아이돌들이 있어서 핸드폰으로 직접 찾아서 보기도 해요.


좋아하는 아이돌이 뒤늦게 생긴 거죠. 친구들은 고등학교 때도 안 하던 애가 무슨 뒤늦게 덕질이냐고 들 해요. 그런데 저에게는 덕질을 하면서 얘들에게 큰 고마움을 느끼는 게 육아로 힘들 때 굉장히 큰 위안이 됐어요. 이걸로 스트레스도 풀렸고요. 한참 좋아하던 때는, 얘들 스케줄도 다 꾀고 있었고 파리에서 콘서트를 할 때 가족여행을 빙자하여 콘서트도 갔었어요. 그때가 하이점이었다면 지금은 그때보다는 조금 마음이 식었다고는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여전히 응원하고 있어요.


케이팝을 좋아하면서 아이들과 공통사가 있어 대화할 수 있는 점이 좋아요. 크게 힘들이지 않은 노력으로 함께 할 수 있어 좋은 점이죠. 아이들의 관심사가 케이팝, 축구, 게임정도인데 게임은 제가 하기는 어렵고, 축구는 이제 하도 들어서 어느 정도는 알긴 하지만요. 케이팝을 통해서 식탁 위에서도 아이들과 대화를 많이 나눌 수 있어요.


아이들에게 더 다양한 음악을 들려줬어야 하는 후회 같은 것을 할 때도 있긴 해요. 옆집에는 성악과 피아니스트가 살아서 아이에게 클래식을 많이 들려주는 것을 봤거든요. 저도 클래식 같은 것을 들려줘야 하나 싶기도 했어요. 조금 더 다양하게 해줘야 하는 것을 내가 좋아하는 것을 강요했나 싶기도 해요. 물론 부모가 아무리 얘길 해도, 결국 아이들도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게 되긴 하죠. 그래도 부모의 영향을 받는 건 사실이잖아요. 그래서 조금 더 다양한 길을 알려주지 못했었단 생각에 조금 후회되는 때도 있어요.


9. 공통질문인데요, 삶에서 꿈이나 목표 같은 것이 있으신가요? 있다면 지금의 자신은 거기에 어느 정도 도달한 것 같으세요?

저는 목표라고 정해두고 살진 않는 편이에요. 버킷리스트도 없어요. 지금 재밌게 살아야지라는 생각이 더 강한 것 같아요.


내가 여기서 살 줄도 몰랐었고, 남편 공부가 끝나면 한국으로 돌아갈 거라 생각했었죠. 많은 것들 것 생각했던 대로 가질 않았어요. 그래서 그런지 꿈이나 목표 같은 건 잘 모르겠어요. 버킷리스트나 큰 목표가 없고, 내 집 마련 이런 생각도 없어요. 남편과 함께 월세를 내고 사는 것에 그냥 감사하는 정도에요. 내 집을 마련해서 살고 그런건 욕심같아요. 물론 하면 좋겠지만요.


물론 단기 목표 같은 거나, 아이들이 잘 크면 좋겠다. 여기서 대학을 가고,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며 사회의 구성원으로 잘 자라면 좋겠다와 같은 생각들은 있죠. 하지만 이건 제가 아닌 아이들에 대한 거고요. 나에 대한 건 불분명한게 많아요. 그저 한치 앞도 모르니까, 지금 재밌게 살아야지가 강해진 것 같아요.


저는 그저 뭐든 하면 좋겠다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여기서 살기 위해, 앞으로 뭘 할지 모르지만 기회가 되면 이것저것들을 하고 그게 나중에 보탬이 되면 좋겠다 정도로 생각해요.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것도 내가 생각했던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이 곳에서 외국인으로 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제안을 받았을 때 이것부터 해보자-싶었죠.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했죠. 삶은 변화무쌍한 것이고 절대적인 것은 없는 것 같아요. 지금은 아니라는 것도 나중에는 또 다를 수 있고, 그래서 그런지 나중에 대한 꿈이나 목표는 모르겠어요.


10. 그런 생각들이 프랑스에서 지내면서 영향을 받은 것도 있을 까요? 제가 인터뷰한 다른 프랑스에 사는 외국인과 생각이 비슷하거든요.

그럴지도 몰라요. 한국에 있는 남편은 현실주의자예요. 제게도 계속해서 자기계발을 하라는 얘기를 하기도 하죠. 주변에서도 그런 얘기를 많이 들으면 지낼 거예요. 반면에 저는 남편에게 돈을 받아 생활하면서 월세를 내고 남는 용돈으로 아이들과 먹으며 지내요. 재테크 같은 걸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죠. 저는 이 정도면 된다고 생각하고 살아가지만 한국에 있는 남편의 생각은 다를 수도 있어요. 아마 재테크도 할 거예요.


한국인들에게 프랑스라는 나라가 주는 어떤 이미지가 있어요. 프랑스라고 하면 “낭만”을 떠올려요. 그래서 많은 이들이 제게, 남편이 주는 돈으로 프랑스에서 편하게 산다고들 얘기를 해요. 한 달 먹고살고 집세 내고 끝인데 아무래도 남편이 지원해 주는 것이 있으니까 큰 고충은 없어요. 누군가는 제가 제일 속편 하다 생각할 수도 있어요. 그런 생각도 이해는 해요. 저는 저 나름대로 이곳에서 아이들을 키워가며 살아가는 데 어려움이 있지만요. 그런 사람들의 생각도 이해는 해요.


저는 큰 목표나 꿈을 가지고 살아가는 게 아니라 소소게 살아가는 이곳에서 생활에 만족해요. 남편을 따라서 처음 왔던 거라 제 계획이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변화무쌍한 날씨도 저는 좋고, 음식도 크게 한국이 그립거나 하지 않았어요. 물론 어려움도 있었지만, 저는 이곳에서의 생활이 이 정도면 좋다고 생각해요.


누군가는 생각하는 대로 이뤄진다고 하는데, 크게 계획을 잡고 그렇게 되면 물론 좋겠죠. 나중에는 그렇게 된 사람을 부러워할 수도 있을 것 같긴 해요. 하지만 그러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하고 그런 중간과정들이 힘들 것 같아요. 저는 소소하게 잘 사는 게 좋아요. 애 셋을 낳아서 키우고 살아가고 있는데 지금 재밌게 살 고 있는 것 같아요. 힘든 것도 있지만 만족하냐고 묻는다면 전 만족한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내 침대에 누워서 덕질을 할 때면 행복해요. 따뜻하게 잘 자고, 소소하게 내 집을 꾸미며 사는 것 들요.


11. 인터뷰 감사합니다!


S 씨와의 인터뷰를 하면서 굉장히 미래에 대해 두려움이 없는 분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장기 계획은 세우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불안감을 크게 느끼는 나에 비해, 지금 이 순간에 만족을 하면서 지금 하는 일들이 미래를 위한 발판이 되면 좋겠다는 그녀의 생각에 나도 그런 생각으로 살아가면 좋겠다고 느꼈다.


육아와 일을 병행하면서 지금이 아니면 언제 할까라는 생각에서 일을 시작하는 것도, 애 셋으로 육아를 하며 일을 최근에 시작한 친언니와도 닮아있었다. 우리는 서로 다른 곳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지만 서로 닮은 점들이 많은 인간 들이는구나를 다시금 느끼기도 했다.


꿈이나 목표에 대한 질문에 지금 느끼는 소소한 행복에 더 중점을 두고 살아가고 있다는 그녀가, 인터뷰했던 외국인친구의 그 답변과 너무 닮아 있었다. 한국에 있는 사람들에게 질문했을 때 많은 경우 나중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나중에 행복을 느끼고 싶다. 안정된 삶을 살고 싶다. 되돌아보니 한국에서 우리가 보다 치열한 삶을 살면서 삶의 여유를 많이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했다. 사람들이 여유가 없는 게 아니라 우리의 한국 사회가 그렇게 사람들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 같아, 그런 모든 게 사회적 문제인 저출산율까지 가게 된 건 아닌지,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까지 생각하게 된 뜻깊은 인터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