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엽서: 양로원을 탈출하여 락페에 가자
예전에 DM으로 네게 양로원에서 탈출해서 락페에 간 영국 할아버지들 뉴스를 보낸게 기억나. 그걸 보는 순간, 우리가 저렇게 늙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
혼자 살고 있는 나니까, 종종 늙어서 주변에 아무도 없으면 어쩌지…하는 걱정이 들기도 하거든, 그럴 때 내 두려움을 없애주는 게 너의 존재야. 네가 옆에 있다면 함께 양로원을 탈출해서 페스티벌에 갈 수 있을 것 같아. 물론 가면서 “우리 미쳤나봐”라고 킥킥거리지 않을까?
우리가 고딩때부터 얘기한 글라스톤베리 페스티벌을 아직 못 간게 아쉬워. 하지만 앞으로도 기회는 있겠지.
즐겁게 놀 그 날을 위해 건강하자 친구야!
2025.02.15. 엽서 그림이 맘에 안든 “호수”
강과 호수, 우리가 만나서 한 가장 많은 것은 페스티벌이나 콘서트 관람이었다. 우리 둘의 음악적 취향이 매우 잘 맞아서, 누군가가 처음 듣고 노래가 좋으면 그 곡의 링크를 상대에게 보내곤 한다. 상대도 좋아할 것을 거의 확신하면서- (거의 95%는 맞는다.) 워낙 좋아하는 스타일의 음악과 아티스트들이 비슷하다 보니, 해외가수들의 내한 공연(특히 락밴드), 또는 여러 음악 페스티벌들은 우리의 한 해를 가득 채우곤 했다. 강과 나는 언제나 스탠딩을 고수한다. 누군가는 좌석을 선호하기도 하겠지만, 우리는 공연까지 좀 기다려야 한다더라도, 스탠딩에 서서 온몸 자유로이 무대를 즐기기를 선호한다.
우리가 조금 더 지금보다 어리던 시절에는 무대의 앞줄을 위해 애썼다. 가능하면 앞에서 가수들을 보며 공연을 보기 위해 공연 시작보다 일찌감치 공연장을 찾아 스탠딩을 위해 한참을 대기했다. 그때는 그럴 수 있았다. 조금씩 나이가 들면서 (운동 부족의 영향이 클 것도 같지만) 체력이 떨어진 건지, 그 기다림이 힘들었다. 기다림에 지쳐 본 공연 관람자체에도 영향을 받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현실을 받아들였다. 이제 스탠딩 앞쪽이 아닌, 조금은 중간으로 왔다. 그런 중간자리에서 공연을 기대리며 강과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우리 언제까지 스탠딩 할 수 있을까?”
“글쎄, 아직 스탠딩 뒤쪽이 남아있긴 한데…”
“결국 나중엔 힘들어서 좌석에 앉겠지?”
“그렇겠지. 그래도 앉아서라도 보러 와야지.”
“그렇네. “
“조금이라도 오래 스탠딩 하려면 운동해야지.”
“그렇긴 해.”
SNS에서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한 뉴스 기사를 보았다. 제목부터 유쾌했다. 영국의 한 양로원에서 두 명의 할아버지가 근처에서 열린 페스티벌이 열린다고 양로원을 탈출했다는 거였다. 그분들의 젊은 시절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아마도 강이나 나처럼, 어쩌면 우리보다 훨씬 더 열정적으로 무대를 즐기러 다니시던 분들이었을 것만 같았다. 조금씩 나이가 들어가면서, 공연장을 찾은 사람들의 나이가 점점 나보다 어린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을 보면서 나는 언제까지 이곳을 찾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한국에서는 거의 보지 못했는데, 해외 생활을 하며 갔던 페스티벌에서 백발의 한 할머니, 또는 할아버지들이 친구들과 공연장에 찾아온 모습을 보았는데 그들의 모습이 내게 위안과 희망이 되었다. 강과 나의 미래일 것 같았다.
강에게 할아버지들의 양로원 탈출기 기사의 링크를 DM으로 보낸다. 이걸 보는 순간 저 두 할아버지의 모습에서 내 머릿속에서는 미래의 나와 강이 떠올랐으니까. 강도 비슷한 마음이 들거라 생각하면서 말이다.
최대한 오랫동안 건강하게 우리가 원하는 대로 스탠딩에서 자유롭게 공연들을 즐기고 싶다. 그게 하지만 좌석에 가게 되더라도, 어쩌면 양로원에서 탈출에 실패해 저 멀리서 양로원 창밖으로 비치는 페스티벌을 지켜보게 되더라도 그 옆에 강이 함께라면 재미없진 않을 거다. 일단은 오랫동안 건강해야지. 건강하자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