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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교토(1) 첫날,비와 피로와 두통 사이에서

by 이확위

여행 기록을 매번 나중으로 미루다 보니, 모두 써 내려간 기록이 남지를 않더라. 여행을 많이 다닌 것도 아님에도 써야 할 것만 남아있고 모두 완성한 여행기가 없더라. 이번 교토 여행길에서 혼자 다짐한 것 중 하나가 아침 일찍 일어나서, 원래의 루틴과 같은 생활 습관을 다시 찾자였기에- 아침 시간에 시간이 충분할 것이었다. 교토에서 교토의 하루하루를 기록하기로 했다. 그러니, 이 글은 교토에서 쓰는 나의 교토 여행 일기이다.



교토에 가게 되다

그룹 미팅을 하고 모두 함께 식사를 하던 날이었다. 내 옆자리에는 내 연구비까지 관리해주고 계신 선생님이 앉아계셨는데, 스몰톡으로 얘기를 좀 나누던 중이었다. 내게 갑자기 물으셨다.

"박사님은 해외 학회 안 가세요?"

"해외 학회요? 비싸서..."

"연구비 충분하니까 가셔도 되는데"

그 말에 오피스에 돌아온 후, 연구비를 살펴본 후, 학회를 가야지-라 생각했다. 프랑스에 있던 2년간 학회를 잘 보내지 않는 보스 밑에 있으면서, 국제 학회들을 갈 일이 없었다. 바로 가고 싶던 학회가 생각나 일정을 검색해 보았다. 발표를 위한 초록 등록 기간까지 아직 시간이 남아있기에 등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교토에서 있는 학회에 등록했다. 5월, 봄의 교토였다. 마지막 일본 방문이 이제는 거의 10년 가까이 되어가기에, 학회를 위한 일종의 출장이지만, 금요일에 끝나는 학회 이후 주말까지 머물며 관광까지 하기 좋을 것 같았다. 베프에게 교토에 간다고 말하니, 조금 지나 친구가 내게 메시지를 보냈다.

-"나도 갈까? 너 학회 끝나고 같이 만나서 여행하고."

-"그럼 나야 좋지."

그렇게 우리 둘의 첫 해외여행이 결정되었었다. 그렇게 함께할 뻔했다. 항공편까지 모두 예약했었건만, 갑작스러운 파견일정이 잡히면서 친구는 수수료를 물며 모두 취소해야 했고, 나는 홀로 교토에 오게 되었다.


나는 비행이 너무 싫다

나는 비행이 싫다. 누군들 좋아하겠냐-싶기도 하지만. 이전에 수술 후에 탔던 비행기에서 출혈로 죽을 뻔한 경험 이후로는, 무엇하나 바로 조치를 취할 수 없는 비행기 안이 무섭게만 느껴지더라. 예전에는 6시간 정도까지는 그래도 제법 버텼던 것 같은데, 요즘은 어찌 된 게 제주도 가는 그 짧은 비행조차 싫은 기분으로 가득하다. 교토로 가기 위해서는 오사카, 간사이 공항으로 가야 했다. 김포 공항에서 출발하는 비행 편으로 예약했기에, 토요일 오전 집을 나섰다. 공항까지는 버스로 1시간은 가야 했다. 공항에 도착해서 짐을 부치고 입국 수속을 한다. 짧은 여행이면 보통 기내수하물로 해치우지만, 일주일이 넘는 길이기에 위탁수하물로 보낼 정도의 짐이 되었다. 짐이 많아지니 여행길이 더욱 귀찮은 기분이었다. 인천이 아닌 김포라서 인지 아주 빠르게 출국 수속을 마쳤다.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출국장에 들어가니 1시간 40분 정도의 시간이 남아있었다. 배가 고팠다. 시계를 보니 12시가 조금 지난 시간이었다. 둘러보다 한식당이 보여 들어섰다. 해외를 나가기 전에는 공항에서 한식을 먹는 편이다. 보통 메뉴는 조금은 얼큰하게 김치찌개 아니면 순두부찌개이다. 딱히 이유는 없다. 그저, 떠나기 전 항상 끌리는 게 이 두 메뉴일 뿐이다. 이 날의 선택은 순두부찌개였다. 요즘은 어디나 비싸기에 공항이라고 딱히 비싸게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딘가로 떠나는 여행이 싫은 이유 중 하나가 공항에서 소모하는 시간들이 너무 아깝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촉박하게 가는 것은 성격상 맞지 않으니 늘 여유롭게 공항에 도착하고, 그러면 공항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나도 길다. 얼마 걸리지 않는 곳으로의 여행길도 공항에서 소모하는 시간들을 모두 합치고 나면 하루 종일 이동을 위한 시간이기에, 그 과정들이 너무 아깝게만 느껴진다. 그래서 공항에서 무언가 할 것을 꼭 가방에 챙기곤 한다. 밀린 저널링을 마친다거나, 책을 읽거나- 이번에는 바쁘기도 했고, 귀찮아서 미뤘던 교토에서의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어차피 일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학회로 낮동안의 시간은 꽉 차 있기에 그 외의 사간으로 저녁식사나, 학회 이후의 금요일과 토요일 일정정도만 짜면 되었다. (일요일에 어차피 한국으로 돌아오기 위한 시간으로 다 가버릴 테니까) 교토에서 무엇을 볼지보 다는 먹보인 나는 무엇을 먹을지가 더 중요했다. 그렇기에 교토는 간단하게 일일투어를 신청해 두고, 그 외에는 식당을 예약하는 데 집중했다. 비행기에 탑승하기 전까지 먹을 계획이 모두 세워졌고, 계획을 마치니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아마도 먹을 생각이 신이 났던 게 아닌가 싶다.


간사이 공항 (터미널 2), 입국 심사만 1시간 20분

1시간 50분 정도의 지겨운 비행이 끝나고 간사이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가 착륙할 때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이 우중충했다.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나는 오사카가 아닌 교토로 가니까, 날씨가 조금은 나을 거라 생각했다. 터미널 2에 내려 입국심사장으로 갔다. 한국에서 비행기 탑승전에 이미 비짓재팬으로 입국을 위한 서류를 모두 등록했기에, QR만 준비하면 됐다. 유심칩이 아닌 로밍으로 왔는데, 종종 해외 공항들에서 데이터가 느리게 터지고 제공되는 와이파이도 느린 경우가 많기에 미리 QR을 캡처해 두었었다. 금방 입국심사를 마칠 거라 생각했건만, 속도가 너무 느렸다. 열린 창구는 5개 정도였는데, 밀려든 사람들만 100명은 되는 것 같았다. 기다리고 기다렸다. 줄이 정체되어 있었다. 대체 왜 그렇게 오래 걸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사람들에게 딱히 질문을 하는 모양새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입국심사를 마치고는 수하물을 찾으러 갔다. 너무 늦게 나와서, 공항 직원들이 수하물들을 모두 내려놓고 있더라. 마침내 캐리어를 내려놓기에 다가가서, 내 거라며 받아 들었다. 시계를 보니 착륙한 지 1시간 20분이 지나있더라. 난 이미 지친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럴 수도 있으니 이런 일에 짜증을 내는 것은 낭비일 뿐이다. 캐리어를 끌고, 길을 나선다.


하루카열차 티켓 교환과 ICOCA 교통카드 구매조차 1시간... 왜 이러지?

공항에서 교토로 가는 열차를 미리 예매해 두었다. 그게 빠르고, 더 저렴하다고 인터넷에서 봐서 한 선택이었는데 전혀 빠르지 않게 되어버렸다. ICOCA 교통카드를 구매하려고 줄을 서서 20분 정도 기다렸는데, 내 순서가 다가올 때쯤, 기계 고장으로 다른 곳에 줄을 서라고 했다. 최소 10분이 더 필요하다면서 말이다. 다른 곳으로 다시 줄을 서서 기다렸다. ICOCA 카드는 외국인만 구매가능했고, 현금으로 결제를 해야 했다. 카드만 2000엔인데, 어차피 나중에 남은 건 다시 뺄 수 있으니 넉넉히 충전한다고 5000엔 지폐 한 장을 넣었다. 그런 후, 이제 인터넷으로 미리 예매한 하루카열차 티켓 교환을 위한 줄을 다시 섰다. 줄을 서서는 예매 QR로 하루카 티켓을 출력했다. 그런 후, 티켓을 들고 게이트로 가려했는데 티켓을 보니 자리를 예약하라는 문구가 쓰여있더라. 문득 하루카티켓 머신에서 자리 예약 버튼을 봤던 것 같다. 다시 줄을 선다. 자리를 예약한다. 시계를 본다. 한 시간이 지났다. 3시 40분에 간사이 공항에 착륙했는데, 5시 44분 하루카열차에 탑승했다. 점점 피로감이 몰려왔다.

교토에 도착하니 부슬부슬 내리는 비

간사이 공항에서부터 교토로 오는 길까지, 모든 안내판과 안내방송에 한국어가 함께하고 있었다. 영어여도 크게 상관은 없지만, 당황하거나 하는 순간이 올 때 아무래도 한국어가 편하니- 한국어 안내들이 가득한 걸 일본 여행을 한결 수월하게 만들어 준다. 기차가 교토역에 다가갈 때 창밖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다시 한번 순간적인 짜증이 올라왔지만, 숨을 한번 들이마시고 내쉬며 감정 조절을 한다. 비가 온다고 짜증을 내서 뭐 하겠는가. 내가 어찌하지 못하는 것은 그냥 받아들이는 게 편하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가는데 개찰구에서 카드 인식이 안되었다. 순간 당황했지만, 바로 직원에게 다가가 물었다. 혼자 너무 고민하기보다는, 바로 물어 해결하는 게 좋다. 기차에서 나가며 기차표를 넣어야 하는 곳이기에 교통카드가 인식이 안된 것이었다. 간단히 해결하고는 이제 지하철 타는 곳을 찾다가 또 못 찾겠어서, 직원처럼 보이는 분에게 다가가 물었다. 바로 친절히 알려주었다. 낯선 곳에서는 잘 모르면 묻는 게 최고다. 지하철로 두 정거장만 가서는 바로 Sijo 역에서 내린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그냥 맞기로 한다. 캐리어에 우산이 있지만, 우산을 꺼내는 게 더 귀찮았다. 어차피 조금 내리는 비에 나는 한국에서도 우산을 잘 쓰지 않는 편이기에 그냥 비를 맞으며 호텔로 걸어갔다. 피곤함에 호텔로 걸어가는 10분이 너무 멀게만 느껴졌다.

체크인, 이제 저녁(돈카츠)을 먹자! (=4,940엔)

체크인 후에 짐정리를 마치고 저녁을 먹으러 갈 생각이었는데, 호텔 방에 들어가니 이미 7시 반이 지나있었고 너무 배가 고파서 힘이 들 정도였기에 바로 호텔을 나섰다. 미리 찾아둔 돈가스집으로 향했다. 아까보다 비가 제법 내려 이제 우산이 필요했다. 교토의 첫인상은 어두워서 잘 안 보이지만 길이 깨끗하고, 사람들이 신호등 신호를 매우 잘 지킨다. 차가 오지 않아도 그냥 건너는 사람이 없다. 일본 답다는 느낌이었다. 찾아둔 식당으로 갔는데 21시 영업종료로 적혀있었는데 도착하니 8시였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웨이팅 중이었다. 바깥에 서있는 외국인이 있어서, 이게 기다리는 줄이냐 물으니 그렇다기에 그 사람 옆에 섰다. 그러자 내게 안에서 대기리스트를 써야 할 거라 알려주더라. 친절함에 고마웠다.

기다리면서 메뉴판을 나눠주더라.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다가, 힘들게 왔으니 비싼 걸 먹자는 맘으로 한정수량인 프리미엄 돼지고기로 만든 돈가스세트를 시켰다. 단품으로 게살크림크로켓과 가지메뉴 하나를 시켰다. 그리고 피곤한 내게 상으로 내리는 맥주 한잔을 시켰다. (피곤한 몸에는 맥주가 상은 아니지만-) 한 20분 정도 더 기다린 후에야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직원들이 모두 잘 훈련되어 있어 모든 게 체계적이었다. 먼저 상이 차려졌다. 차 한잔과 반찬(절임류) 그릇, 젓가락과 티슈, 그리고 참깨 갈아줄 나무 막대를 주었다.

먼저 시원한 맥주가 나왔다. 한 모금 마시니 시원하고 개운했다. 잠시 후, 가지요리가 나왔다. 아주 커다란 가지를 쯔유 같은 양념에 담가두고 위에는 오크라가 잘라있었다. 교토에 도착할 때쯤부터 있던 두통이 조금씩 심해지고 있어서, 시원하고 가벼운 채소요리가 입맛을 돋워주었다. 가지는 부드럽게 잘 익어있었고, 소스의 감칠맛이 좋았다. 그렇게 가지를 먹은 뒤, 게살크림크로켓 와 돈가스가 나왔다. 게살크림을 갈라보니 아주 크리미 한 게살이었는데 내게는 너무 느끼한 느낌이었고, 피곤함에 이런 묵직한 느끼함이 당기지 않았다. 맛이 없다기보다는 내 컨디션에 맞지 않아 한 입 먹고는 남겨버렸다.

돈가스를 먹기 시작한다. 양배추를 위한 유자드레싱을 뿌려주고, 돈가스 소스는 기본 돈가스 소스와 매운맛이 있었는데 기본 돈가스 소스만을 갈아둔 참깨 위에 뿌려준다. 프리미엄 돼지는 뭐가 다를까 하여 돈가스 한 조각을 들어본다. 안에 기름부위가 많고, 힘줄 같은 것들이 있다. 이게 프리미엄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튀김옷은 바삭하다. 깔끔하게 잘 튀겨진 돈가스인데, 고기가 원래 이런 고기인가 싶었다. 내가 시킨 메뉴는 Iwachu pork였는데, 하이퀄리티 이와테 돼지고기라고 적혀있었다. 지금에야 찾아보니, 이와테 돼지고기는 일본 북동부의 이와테현에서 청정한 물, 깨끗한 공기, 정성 어린 사육환경에서 생산된 고품질 축산물로 맛과 품질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고 한다. 특히 지방의 단맛과 부드러운 육질, 그리고 냄새가 없어 고급 요리 재료로 사용된다고 한다. 이런 설명을 보고 다시 생각해 보니, 기름이 느끼하다고 느껴지진 않았던 것 같다. 맛있는 지방이었던 셈이다. 가운데쯤 있던 힘줄도 질기지 않았었다. 그러니 맛있는 프리미엄 돼지였던 것은 맞는 듯하다.

돈가스는 너무 많지 않게 중간 사이즈로 160g으로 시켰었다. 200g으로 많이 먹을까 고민하다가 '배 안 부르면 나가서 다른 집 가서 라멘 사 먹어야지.'라고 생각했었는데, 너무 배가 불러 마지막 한점 먹을 때는 힘겨울 정도였다. 밥은 절반밖에 먹지 못했는데 말이다. 돈가스, 가지요리, 게살크로켓, 맥주 한잔해서 4,940원이 나왔다. 환율이 높지 않아 다행이다 싶었다.


일본이니 편의점! 디저트를 먹어야지 (=792엔)

배가 불렀지만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편의점을 보니 절로 발이 편의점으로 향했다. 둘러보다가 오기 전 인터넷에서 봤던 크림슈와 푸딩이 보였다. 샤워 후 쉬하며 먹거나 아니면 냉장고에 넣어뒀다가 다음에 먹어야지 싶었다.

숙소에 돌아와 먼저 짐을 정리했다. 거의 일주일을 머무니 캐리어네 마냥 놔둘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런 후, 지친 몸을 따뜻한 물줄기 아래서 녹였다. 샤워를 마치고는 사온 디저트를 꺼내든다. 먼저 푸딩을 뜯었다. 푸딩은 탱글탱글보다는 크림처럼 부들부들했다. 진한 바닐라와 적당한 단맛이 좋았다. 그러고 나니 옆에 덩그러니 놓인 슈가 아쉬워서 슈를 뜯었다. 당연히 슈는 바삭할 수는 없다. 부드럽고 얇은 왕 큰 슈에 커스터드 크림과 생크림 같은 하얀 크림이 함께 있었다. 야무지게 슈까지 먹고 나니, 아까 배부르던 게 맞나 싶었다.

디저트를 먹고 나니 여전히 있는 두통에도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편의점에서 두통약을 사지 못해서 지끔거리는 두통을 견디며 잠에 들어야 했다. 일어나면 안 아프길 바라면서 그렇게 교토의 첫날,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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