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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여름 김치, 고구마순김치

by 이확위

어릴 적 여름이 되면 엄마는 고구마순김치를 상에 올리셨다. 충청도에서 자랐는데, 지금까지 살면서 엄마의 밥상 외에 다른 곳에서 고구마순김치를 만난 적은 없었다. 어쩌다 유튜브에서 고구마순김치를 만나고는 이게 주로 전라도에서 많이 담가먹는 김치이며, 여름에 나는 고구마 줄기를 이용하기에 여름이 제철인 김치란 것을 알게 되었을 뿐이다.


한 동안 요리를 하지 않았다. 그저 모든 게 조금 귀찮았다. 여름 날씨에, 몸이 지친 것도 있지만- 계속해서 해 먹는 내 요리에 내가 질려버린 탓도 있었다. 조금은 쉬고 싶었다. 그렇게 게을러져서 배달로 배를 채우며 돈을 낭비하고 몸도 안 좋아진 듯하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건강한 밥상을 차리려 했다. 그러다 고구마순김치에 대한 쇼츠를 보았다. 생각해 보면, 고구마순김치를 못 먹은 지 십 년은 더 된 듯싶다. 명절에나 부모님을 찾아뵙다 보니, 여름이 아니라 집에서 만나는 엄마 밥상에서도 고구마순김치를 만날 기회가 없었다. 그 언젠가 엄마가 보내준 고구마순김치를 마지막으로 어디서도 먹지 못했었기에, 이제는 직접 담가보자 생각했다.


고구마순김치를 담가본 적은 없지만, 어차피 김치는 다 비슷하지 않겠는가. 두어 개의 영상을 우선 살펴보기는 했다. 고구마순김치에서 가장 피곤한 과정은 껍질 벗기기였다. 고구마순을 감싸고 있는 비닐막 같은 껍질을 벗겨야 질기지 않다고 했다. 사람들마다 방법이 조금은 다른 듯했다. 크게 두 가지였는데, 누군가는 소금물에 절인 후 껍질을 벗겼고 다른 이들은 한 번 살짝 데친 후에 껍질을 벗기곤 하더라. 절인 후 벗기는 사람의 영상 댓글에서 "데친 후 벗기면 잘 벗겨져요. 안 데치면 질겨서 못 먹어요"라고들 했고, 데친 후 벗긴다는 레시피에는 "데칠 필요 없이 절인 후 그냥 벗기면 더 오래 보관하고 아삭해요"라는 댓글이 달려 있었다. 모두가 자신의 레시피에 한치 양보가 없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엄마에게 여쭤볼까 싶었지만, 그냥 나대로 내 방식을 찾아가기로 했다. 나는 데치지 않기로 했다. 김치를 담그는데 데친다는 사실이 조금 생소하게 다가오기도 했기에 나는 절인 후 껍질을 벗기기로 했다.


시장에 가서 제대로 된 고구마순을 사 왔다면 더 좋았겠지만, 여름이고 습도가 90%에 가까운 날이었다. 귀찮으니, 에어컨 틀어둔 시원한 집에서 쿠팡 프레쉬로 고구마순을 주문한다. 다음 날 새벽, 도착한 고구마순을 깨끗하게 모두 씻어내고는 소금을 대충대충 뿌리며 섞어 재워둔다. 그런 후, 끝부분을 꺾으면서 아래로 쭈욱 하고 당기 껍질을 벗겨낸다. 고구마순이 제법 연하여 가는 것들이 많아서 껍질을 모두 온전히 제거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어차피 나 혼자 먹을 내 김치이다. 조금은 부족해도 문제랄게 없었다. 그러니 그냥 대충대충 껍질을 벗겼다. 대충 하는데도 손이 많이 가기에 '이번이 마지막이다'라는 생각이 다듬는 내내 머릿속에 떠오르더라.

고구마껍질을 벗기기 전에, 찹쌀풀을 만들어 뒀기에 껍질을 모두 벗기니 찹쌀풀이 모두 식어있었다. 재료는 내 맘대로 넣었다. 다진 마늘을 듬뿍 넣고, 약간의 다진 생강을 넣는다. 새우젓과 멸치액젓으로 염도를 높여주고 감칠맛을 준다. 다이어트를 해야 하니 알룰로스로 설탕을 대체하고, 자연의 단맛을 위해 양파를 갈아 넣어준다. 고춧가루를 듬뿍 넣고는 모두 한데 섞어 빨간 양념을 만들어 준다. 껍질이 모두 벗겨 깔끔하게 다듬어진 고구마순을 나중에 먹기 편하도록 손가락 길이로 잘라주고, 쪽파도 적당히 잘라서는 한데 모아 양념에 버무려준다. 마지막으로 깨를 뿌리고 마무리한다. 통에 담아내고는 따뜻한 여름날이니 하루쯤 실온에 있음 되겠다는 생각으로 식탁 위에 가만히 올려두고는 출근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선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벌써 김치에 물이 생겨났다. 아직 김치가 익지 않았기에 풋풋한 고구마줄기의 맛이 난다. 고구마순은 조금은 질긴 듯한 식감이 있으나 어릴 적부터 먹어와서 인지- 그저 당연히 이런 식감이기에 이게 싫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덥고 더운 여름날이지만, 익어갈 고구마순 김치를 보니 여름이 나쁘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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