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 번째 엽서: 자연의 들꽃을 생각하며

by 이확위

열여섯 번째 엽서: 자연의 들꽃을 생각하며

꽃을 여러 종류 그렸어. 모두 레퍼런스 사진과는 달라. 어차피 똑같이는 못 그릴테니, 사진의 이미지를 기억하고 붓이 가는 대로 마음대로 표현했지. 이 엽서는 화려하지 않고 자유로운 들꽃 같은 꽃이 되었어. 난 들꽃을 보면 우리 엄마가 떠올라. 엄마는 산책하다 발견하는 것들을 이용해 꽃꽂이를 하시곤 했거든. 자연의 모든 게 엄마에게는 꽃꽂이 소재가 되었어. 자연 속에서 그 작은 것들이 가진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엄마는 정성스레 꽃병에 꽂아 자연을 표현하곤 했지.

언니와 전에 얘기한 적이 있어. 우리는 부모님에게서 이미 많은 유산을 받았다고. 흙수저/금수저라는 말에 대해 얘기하며 나눈 얘기였어. 물질적인 것을 말하는 게 아니었어. 정신적 유산에 대한 얘기였지. 그중 하나가 엄마에게서 자연과 꽃을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했어. 영향은 받았지만, 엄마만큼 아직 자연을 느끼지는 못해.

좀 더 자연을 느끼는 사람이 되고 싶어. 자연 속 작은 들꽃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작은 가치들을 놓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어.

2025.02.25. 해가 져야 감성적인 너의 친구.


오래된 친구기에 강과 나는 서로의 가족을 모두 안다. 나는 내가 속한 서로 다른 집단들이 교차하는 것을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 뭐라 해야 할까, 딱히 나를 꾸미는 것은 아니지만- 속한 곳에 따라, 보이는 나의 모습이 다르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서로 다른 집단의 지인들이 만나는 건 어쩐지 부끄럽게만 느껴진다. 그럼에도 강은 거의 모든 나의 집단과 접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어린 시절 이후 고향 집에 누군가를 초대하지 않았건만, 강은 우리 집에 놀러 와 시간을 보냈다. 나 또한 누군가의 집에서 하룻밤을 잔다거나 하는 데 불편함을 느끼지만, 강의 집에서는 다른 곳보다 마음이 편하다. 서로의 가족들에 대해서 알고 있어서인지, 가족과 나눈 얘기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도 모든 게 자연스럽다. 강은 나의 부모님도 알고, 언니도 알기에 엽서에 담은 글들을 바로 적어도 바로 이해한다. 우리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언니와 내가 이런 이야기들을 나눈다는 것도 모두 알고 있으니까.


나누고 싶은 얘기들을 나눌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이다. 분명 살아가는 데 있어서 경제, 재테크와 같이 물질적인 것들에 대한 얘기들도 중요하긴 하겠지만, 나 어쩐지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는 영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그렇기에 많은 만남들 속에서도 주제가 주식과 같은 분야로 흘러가버리면 그 순간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지곤 했다. 그렇기에 그런 이야기보다 조금 더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강과의 순간들이 좋다.


어느 순간부터 많은 사람들과의 대화 속 주제가 조금 더 실존적인 것들에만 치우치게 된 것만 같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좀 더 문학적이었고 아름다움이나 사랑에 대한 표현에 있어서도 지금보다 감성이 담겼던 것 같다. 어딘가 인터넷 속 "우리 엄마 아빠 연애편지"라며 올라오는 것들을 보면, 전 국민이 문학인이었나 싶을 만큼 감성적인 면들이 많았다. 그러나 아마도 싸이워드 시절을 거치면서 조금만 문학적 미사여구로 무언가를 표현하려 하면 "오글거린다"며 놀림의 대상이 되었다. 그렇게 우리 세상은 어느 순간보다 직설적인 표현들로 가득 차버렸고, 문학이나 아름다움에 대한 예찬은 그저 작품 속에서나 볼 수 있고 일상에서 멀어져 버린 것만 같다. 그래서 내게는 강의 존재가 소중하다. 어떤 말들을 전해도, 오글거린다고 하지 않고 그 말을 이해해 주는 나의 가까운 친구에게 난 언제나 고맙다.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자연스레 표현해도 그게 어색하지 않게 받아들여지는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 이 세상 속에서 나는 조금 더 이해받고 있다는 생각으로 외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