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 번째 엽서: 그림을 먼저 그리고 의미를 찾아봐

by 이확위

열다섯 번째 엽서: 그림을 먼저 그리고 의미를 찾아봐

그림을 먼저 그렸어. 뭔가 이 안에서 의미를 찾으려 했지. 어떤 그림을 그리더라도, 우리 20여 년의 추억 하나쯤 묻어있을 테니가.

그런 후, 하나하나 살펴보니, 꽃이 예전에 너희 어머님께 선물했던 "자나장미"가 생각났어. 그건 작은 미니 장미이고, 이 그림 레퍼런스의 꽃은 자나장미는 아니지만.. 그리고 또다시 살펴보니, 네 짝꿍이 좋아한다는 쿠키가 보이는 거야. 그러고 보니 차는 홍차더라고. 내가 얼마 전 너에게 선물한 홍차를 떠올리게 했지. 그래서 이 그림 속에는 내가 너와 너의 사람들을 떠올릴 수 있게 해 주는 거야. 너도 이 그림을 보면서 너의 가족들을 생각하면 좋겠어.

그러니 이 그림은, 너와 너의 사람드렝게 푸르고 밝은 미래만이 함께하길 기원하는 나의 마음을 담았다고 할게. 그림이 먼저였지만! 원래 꿈보단 해몽이야~

2025.02.25. 너의 친구


이번 엽서는 지난 엽서들과 달랐다. 보통은 쓰려는 내용을 먼저 생각하고, 그에 맞는 사진을 택하고 이를 내 나름의 방식으로 그림으로 표현하곤 했다. 하지만 이 엽서는 레퍼런스가 맘에 들어 일단 그림을 먼저 그렸다. 엽서에 말했듯, 어떤 그림이라도- 강과 호수의 20년 넘는 역사 속에 관련된 스토리 하나쯤은 이을 테니까 말이다.


예상대로, 그림 속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떠올리기는 어렵지 않았다. 그림 속 분홍 꽃은 바로 내가 강의 어머님께 선물했던 그날을 떠올렸다. 대전에 있는 강의 집에 놀러 간 날이었다. 집 근처까지 왔는데, 빈손이란 걸 깨닫고는 무언가 사야겠다 생각했다. 어머님이 계실 거 기에, 집 근처 꽃집에 들러 둘러보며 어머님에게 드릴 미니장미 한 다발을 샀다. 빈티지한 분홍빛의 작은 장미가 제법 예뻤다. 그렇게 강의 집에 가서, 어머님께 반갑게 인사를 드리며 꽃을 건넸다. 빈손의 민망함을 가리기 위해 소소하게 준비했던 꽃다발이었는데, 몇 년이 지나도록- 강은 내게 고마워했다.

"넌 우리 엄마에게 꽃다발을 선물하는 사람이야."

라며 나를 따듯한 사람이라고 했다. 따뜻하다는 말을 들을 만큼의 행동이 아니라 생각하지만, 좋은 평가를 굳이 깎을 생각은 없기에, 그저 "그런가?"하고 받아들였다. 오랫동안 강이 내게 그날의 분홍 장미를 언급하곤 했기에, 분홍장미를 보면- 강의 어머님이 생각난다.


그림 속엔 쿠키와 홍차 있었다. 쿠키는 바로 그녀의 짝, "평야"를 떠올리게 했다. 우리는 남들이 신기하다고 할 수 있는데, 어쩐지 서로 연애상담 같은 것을 그다지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나는 그녀의 남편에 대해 아는 바가 많지 않다. (사실 거의 없다.) 결혼식 때 내가 해외에 있었던 탓에, 결혼식조차 참석하지 못해서- 이들이 결혼하고 일 년도 더 지나서야, 한국에 돌아와서 뒤늦게 강 인생의 짝을 만나게 되었다. 조금은 재밌어서 내가 기억하는 두 가지가 있는데 바로, 커피는 바닐라라테만 마시고 쿠키를 굉장히 좋아한다는 사실이었다.


얼마 전 그녀의 집에 놀러 갔을 때, 짝꿍의 웃긴 에피소드라며 강이 내게 말해주었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고 그 후 답례로 10만 원이 넘는 쿠키세트를 보냈다고 했다. 상대방은 처음에 그게 얼마짜리인지 모르고 받은 후, 나중에서야 "그 쿠키가... 좀 비싸더라고요."라고 말했다 했다. 자신이 쿠키를 워낙 좋아하기에, 남들도 좋아할 거란 생각으로 10만 원이 넘는 쿠키세트를 선물했던 것이다. 그러나, 꽤나 많은 사람들은 쿠키에 그만한 소비를 하지 않기에, 10만 원이 넘는 쿠키세트는 흔하지 않은 거였다. 그 얘길 전해 들으며, '쿠키를 정말 좋아하는구나'라는 걸 알았다. 그렇게 강과 나 사이에 새로운 "쿠키"에 대한 공유된 이야기가 추가되었다.


그림 속을 홍차를 보니, 최근에 건네주었던 홍차가 생각났다. 프랑스에 사는 친구가 베르사유 궁전에 다녀오며 베르사유 에디션-홍차티백 세트를 내게 선물로 보내주었다. 프랑스에서 온 꽤나 귀하고 고마운 선물이었다. 그 선물을 받고 바로 며칠 뒤 강과의 약속이 있었고, 나는 이 홍차를 강과 나눠 마시고 싶었다. 좋은 것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은 건 조금은 본능적인 거라 생각한다. 그렇게 챙겨가 홍차를 나눴기에, 이 그림을 보는 순간- 분홍 꽃, 쿠키, 홍차가 강과 그녀의 사람들을 떠올리게 했다.


이렇게 그림이 먼저고, 그 이후 우리의 이야기를 적어보니 앞으로는 어떤 그림이라도 먼저 그려도, 그와 관련된 엽서는 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돌이켜보면 우리에겐 많은 이야기가 있으니 얼마든지 많은 이야기를 써 내려갈 수 있다. 새삼 우리가 이런 추억들을 쌓아 온 지낸 시간들이 고마웠다. 여러 오브제들이 모여 하나의 사진이 되듯, 우리가 나눈 많은 이야기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모여 우리의 추억이 되었다. 그러니, 그림을 설명할 이야기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