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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과 향에도 조화가 있잖아요

by 이확위

한참 미역국에 열무김치가 괜찮냐를 친구들에게 물었는데, 다른 이들은 자신들은 괜찮다고 했다. 처음에는 친구 한 명이 그래서- 다른 친구들은 다를 거라 생각했는데. 다들 “왜 안돼?”라는 반응이었다.

그런 반응들에, 내가 너무 예민한 건가?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대체적으로 무던한 사람이다. 무언가에 딱히 예민하다고는 스스로 생각질 못했다. 물론, 예민하게 구는 건 있다. 예를 들어 너무 익은 계란 노른자를 싫어한다던가. 나는 보통 많은 것들은 그냥 그러려니-하지만, 음식에 대해서는 조금 그렇지 못한 모양이다.


엄마는 내가 어린 시절, 나 때문에 종종 스트레스를 받았노라 말하셨다. 자기 전에 매번 찾아와서 “내일 아침 반찬은 뭐예요?”라고 묻곤 해서, 아무 생각 없던 엄마는 피곤했다 말했다. 게다가 똑같은 걸 주면, 잘 먹질 않아서- 매번 새로운 요리를 해야 했더랬다. 언젠가는 재어둔 갈비를 계속해서 주기에, 안 먹겠다며 식탁에 일어나 방에 들어가 과자를 먹기도 했다. 지금도 여전히, 같은 음식을 계속해서 먹는 게 너무 어렵다. 아무리 맛있어도 연속 두 번이면 나에겐 충분하다. 한 솥을 끓였는데, 어찌하냐-하는 문제가 있으면 나는 그냥 버린다. 먹으려고도 애써봤지만, 영 넘어가지가 않고 체하더라.


음식마다 어울리는 맛이 있고, 어울리지 않는- 서로의 맛을 죽이는 것들이 분명 있다. 뚜렷한 건 술과 음식의 페어링에서 나타난다. 언젠가 친구들과 겨울철 방어를 먹으러 갔다. 방어회가 나오고, 다들 소주를 마시는데- 어쩐지 술이 당기지 않아, 가볍게 맥주를 마시겠다고 했다. 다 함께 짠- 건배를 하고, 친구들은 소주를 나는 맥주를 마셨다. 그러고는 먹은 방어회는 너무나도 비릿한 느낌으로 다가오며 맛이 없었다. 맥주를 마시니 입안에 맥주의 향이 남아, 섬세한 회의 맛이 전혀 살지 못했다. 결국 채 한잔을 마시기도 전에 나는 친구에게 “거기 빈 소주잔 좀.”하고 소주로 갈아타고야 말았다.


음식도 그러하다. 서로의 맛을 살려줘야 하는 데, 종종 서로의 맛이 충돌해 맞지 않는 조합들이 있다. 나에게는 미역국에 열무김치가 그러한 것 중 하나인 거다. 부드러운 감칠맛에는 풋향의 날 것 같은 맛은 그 맛을 죽인다. 곰탕에 오이소박이 먹는 사람을 본 적이 있나? 난 그런 맛을 얘기하는 거다.


비슷한 것으로 전에 한 식당을 갔는데, 가게 안으로 들어가니 커다란 공간을 절반은 샤브샤브가게가 반대편은 철판볶음집이 함께 운영되고 있었다. 나는 샤브샤브 주인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철판볶음의 강한 향이, 섬세한 향과 맛의 샤부샤부를 다 눌러버릴 테니까 말이다. 이런 향과 관련해서, 꽃집에서 운영하는 카페도 납득할 수가 없다. 꽃에게도 커피에게도- 그 누구도 득이 될 게 없는 향의 충돌 아닌가.


내가 예민한 듯 말하는 이런 것들에 누군가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다. 미역국에 열무김치가 괜찮다 말한 친구들도, 뭐 그렇게 싫어할 거리냐고 할 수도 있다. 다만 내 입장에서는, 다른 선택지가 있는데 왜 “굳이” 그다지 좋지 않은 선택을 하냐는 얘기이다. 뭐 진심으로 미역국에 열무김치를 먹어도 괜찮다면, 할 말은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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