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회장 사퇴 대소동

[1부 제도와 권력의 무게]

by 어울리는음


입주를 막 시작한 대단지 아파트 1기 동대표회의가 붕괴되던 장면을 나는 혼란의 중심 속에서 직관했다.


열 명으로 시작했던 동대표가 단숨에 네 명으로 줄어드는 순간, 이 작은 공동체가 얼마나 취약한지, 그리고 대중의 분노란 얼마나 강력한지 체험했다.


그것은 내가 원해서 시작한 싸움도, 계획한 변화도 아니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마음 하나로 한 발 더 내디뎠을 뿐인데, 결과는 단순하지 않았다.



불씨는 온라인 주민 카페 활용 여부 논의에서 시작되었다.


신축 단지였던 우리 아파트는 입주 전부터 예비입주자들이 네이버 카페를 만들어 소통의 장으로 이용해 왔고, 입주 후에도 주민들이 다양한 목적으로 활동하였다.


당시 하루에도 십수 건의 글이 오르내리는 활발한 아고라였다.

간단한 입주인사부터 중고거래, 그리고 주차 규정, 시설 하자, 관리비 의문 등 단지 생활에 관한 민원까지 쏟아졌다.


회의실에서 일어나는 동대표들의 실무적 고군분투를 주민들이 일일이 다 알 수는 없기에 반복되는 이야기들도 있고, 때론 회의실에서는 나오지 못한 아이디어도 나왔으며 동대표를 찾는 사람들까지 등장했다.


주민의 목소리를 가장 쉽고 빠르게 듣고 다양한 의견을 취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 이미 준비되어 있으니 나는 대표회의가 당연히 그 공간을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회장은 자기 연령의 평균보다도 전자기기를 다루는 데에 미숙했고, 타인의 의견을 경청하는 데에는 더욱 재능이 없었기에 다소 공격적이었다.


“온라인 뭐 그런 건 사적인 공간일 뿐이지. 공신력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그의 말은 단순한 의견이 아니라 선언처럼 들렸다. 불같이 치고 들어오는 그의 거부 앞에서 다른 대표들도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심지어 나를 동대표 자리로 이끈, 카페를 통해 동대표에 나설 사람들을 모았던, 믿었던 부회장마저도 “공식 창구로는 무리인 것 같다”라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뭐 그런 사적인 공간'으로 치부하기엔 카페는 입주예비자협의회의 공식적인 활동처였고, 3천명에 이르는 회원들은 카페 이용을 위해 입주 계약서 인증을 마친 주민들임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결국 카페를 공식적으로 이용하자는 사람은 나와 또 한 명의 중년 남성 둘 뿐이었다.


그때의 공기는 차갑게 가라앉았다.


나는 속으로 자문했다. ‘내 생각이 짧은 걸까? 모두가 아니라고 하는데 내가 쓸데없이 집착하고 있는 걸까?‘


하지만 주민들의 목소리를 외면하면서, 우리가 무엇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은 가라앉지 않았다.


회의가 거듭될수록 나는 점점 더 고립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무엇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당시 승강기게시판에 붙는 회의 결과 공고문은 안건 별로 단 한 줄의 문장으로 요약되어 기재되곤 했다. 긴 시간의 소란스런 회의를 통해 나름 복잡하게 의결된 그 사안들에는 저마다 이유도 있고 주민의 알권리를 위해 참고해야 할 사항도 있었다.


나는 이 공고문이 주민들에게 매우 불친절한 결과문이라고 생각했고, 결정사항 이유와 배경설명 등을 조금 더 자세히 보태어 회의 내용을 카페에 공유하곤 했다.


민감한 대외비나 혼란을 야기시킬 수 있는 부분은 당연히 제외하였고, 주민들이 특히 답답해하는 안건을 위주로 자세히 적었다. 눈에 띄는 개선 속도는 더디더라도 동대표들이 할 일을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호소를 담아 적기도 했다.


그러나 심혈을 기울여 올리는 글의 내용은 대표회의 동기들에겐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읽어보지도 않고 글을 올리는 사실만으로 불편해하는 대표회의의 전반적인 반대 여론으로 인해 나는 더 이상 글을 올릴 수 없었다.




그 사이 카페는 달궈지기 시작했다.

“왜 000동 대표 외에는 소통을 하지 않느냐.”

"우리 동 대표는 어디 계시냐"

“회의를 하긴 하는 것 같은데, 아무것도 달라지는 게 없다.”

대표회의에 대한 불만이 커져갔다.


여론을 의식한 일부 동대표들이 “카페를 활용 안 하더라도 카페를 대신하는 다른 방법이라도 찾자”라며 갑론을박을 이어나갔지만 회장은 요지부동이었다.


시끄럽던 그날의 동대표 단톡방.

회장이 아집으로 뭉친 단어들을 마구 쏟아내고, 나는 인내심이 바닥났다.


나는 작심하고 물었다.

“이 대화를 주민들이 그대로 보아도 괜찮습니까?”

회장은 태연하게 답했다. “상관없다. 뭐라 하든 관심 없다.”


그 한마디가 내 등을 떠밀었다.


내부고발자가 된다는 건 단순히 사실을 밝히고자 성급히 행동할 문제는 아니었다. 앞으로 어떻게 수습하고자 하는지 중심을 잘 잡고 나아가야 할 내가 감당해야 할 무게를 생각하면 망설여졌다. 무차별적으로 몰려올 수 있는 비난도 염려되었다.


주민들이 나를 지지할까, 아니면 배신자로 볼까. 그 두려움도 가슴을 조였다.


그러나 더는 피할 수 없었다.

나는 그간 대표회의의 분위기와 회장의 입장을 주민들에게 공개했다.



불길은 금세 번졌다.

카페는 순식간에 폭발했고, 회의 방청을 신청하겠다는 주민들이 줄을 이었다. 당황한 관리소가 당시 창궐하던 코로나를 핑계로 방청 인원을 제한한다는 공문을 붙였지만, 그것은 오히려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부회장이 나섰다.

주민들의 문제 제기에 장황한 답변을 내놓았지만 안타깝게도 설명은 서툴렀고, 개인적인 변명만 가득해 보였다. 오해는 삽시간에 커졌다.

화살은 곧장 그에게 쏠렸고, 신뢰는 무너졌다. 그는 비난 여론에 자진 사퇴를 선언하고 말았다.


오히려 회장은 더 오래 버티려 했다.

“물러날 이유가 없다.” 며 동대표들을 상대로 목소리는 키웠지만, 주민들의 묵직한 목소리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그 역시 끝내 자리에서 물러났다.


회장이 사퇴하자 폐쇄적 정치를 지지하던 대표들도 일제히 떠났다.

삐친 듯, 질린다는 듯 사퇴서를 던졌다.


열 명으로 시작했던 대표단은 단숨에 네 명만 남았다.



‘어린‘ 내가 예상한 것 이상으로 무책임한 '어른들' 모습에 나는 더 이상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간단한 원칙을 지키고자 주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려 했을 뿐인데, 회의는 붕괴 직전까지 갔다.


네 명만 남은 대표단은 법적 정족수조차 채우지 못해 회의를 열 수 없었다.


물러나버린 동대표들을 비난하고, 나를 지지해 주는 주민들의 목소리마저 그 순간에는 버겁게 느껴졌다.

마치 단두대 핏방울이 내게 튀는 것처럼 무서웠다.


파투 난 동대표 단톡방을 보며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계속 버틸 수 있을까? 끝까지 이 자리에 남아 있을 수 있을까?‘


고찰.

- 설득력 없는 리더의 아집과 신뢰를 허무는 임원의 변명은 그 정치집단의 어떠한 능력도 무의미하게 만든다.

- 여론은 어떤 제도보다 강력한 힘이자 때로는 잔인한 무기가 될 수도 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일까.


나는 남기로 했다.




이전 01화어린 여자 주제에! 동대표입니다 #프롤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