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새댁의 코로나 블루 극복기 ②] 임신과 직장, 쌓이는 고민들
"임신계획 어떻게 되니?"
결혼 직후 상사와의 면담자리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나는 잠시 당황했지만 순간적으로 입밖으로 나온 나의 대답은 이랬다. "아니요. 없어요."
그리고 이어지는 상사의 말.
"그냥 흘러가는대로 두는 것과 계획을 하는 것은 달라. 대체인력이 없는 상황에서 더 중요한 거고. 이게 현실이다."
마음을 후벼팠다. 면담을 마치고 자리에 돌아오고 잠시 멍했던 것같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그냥 워딩 그대로 받아들이면, '알아서 피임 잘해라' 이런 뜻이었을까. 아무 생각없이 습관처럼 포털사이트를 검색해 보는데, 방금 나와 똑같은 일을 겪은 직원들의 이야기가 뉴스기사에 담겨져나왔다. 그제서야 '말로 형용할 수없는 이 기분'이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전형적인 일꾼형 직원이다. 시키는 일 잘하는 '예스맨'이고, 일이 부족하다 싶으면 알아서 찾아 하는 그냥 일만 하는 그런 직원. 상사에게 이른바'사바사바'를 잘한다든지, 주변 직원들의 동향을 살핀다든지 못한다. '끼리끼리는 사이언스'라고, 주변에도 그런 선배들이 많았다. 머릿속에 계산기를 두드리기 보다는 업무에만 집중하는 타입들. 후배들 등에 빨대를 꽂는다거나, 본인 성과과시를 위해 누군가를 밟는다든가, 근태가 안좋은 직원들이 회사 어딘가에 있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최소한 내 주변은 그렇지 않았다. 이러한 배경엔 '업무 집중형 상사가 지휘하는 부서에서 일했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우리 부서원 중 80%는 여직원이다. 부서장 지휘하에 일하는 팀장 가운데 50%가 여자팀장이다. 어려운 자리지만, 모두 어린 나이에 팀장자리에 올랐다. 다른 여자 선배들도 업무능력 속도가 빨라 상사에게 일잘한다고 칭찬받는 사람들이다.
그렇게 일잘하는 선배들도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한참 서로의 하소연을 들어주다 내놓은 결론은 '답을 찾지 못하겠다'였다. 상사에 대한 섭섭함과 알수없는 불합리함에 말을 잇지 못했다. 다른 회사로 이직한다 할지라도 같은 상황이 반복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아니면 그냥 입 꽉 깨물고 남들보다 2배 3배 더 업무를 더 열심히 한다고 이 상황이 나아질까.
지금까지 열심히 일해왔던 모든 커리어 성과들이 참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기까지한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일해왔을까. 결혼과 임신 출산, 이 과정을 한 번 겪으면 승진인사에서 한참을 밀리고, 최악은 한직으로 물러나게 된다.
선배들과 '우리는 더 잘 돼야 한다'고 서로에게 응원을 보내며 웃으면서 헤어졌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에는 여전히 고구마먹은 듯 답답한 마음이 쌓인다. 아마 선배들도 같은 마음일 거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늦가을 바람이 차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