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누리 산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누리 Jan 16. 2022

인생은 소설


카페에 들어앉아 다른 테이블의 손님들이 대화하는 풍경을 바라보며, 그들의 관계나 현 대화의 내용 따위의 것들을 궁금해하고 이내 제멋대로 상상해보곤 한다. 연신 노트북만을 바라보며 간헐적으로 짧은 말들을 주고받는 저들은 조별과제 중이겠거니, 손바닥만 한 핸드폰 화면을 같이 뚫어져라 들여다보며 수다스럽게 떠드는 저 연인은 신혼집 가구들을 둘러보며 행복한 미래를 꿈꾸는 중이려니 하며 말이다. 이때만큼 타인에게 관심을 갖게 되는 시간도 적은 듯하다. 이럴 때면 난 그들이 꼭 서가 속 빼곡히 꽂혀있는 책들 같다는 생각을 한다. 손바닥보다 조금 큰 크기에 제각각 하나의 세계를 품고 있지만, 펼치기 전 까진 그저 형형색색의 의미 없는 벽돌 무더기일 뿐인, 저 책들처럼 말이다.​


뻔한 말이지만, 모든 사람의 인생은 한 권의 소설과 맞먹는다. 인생을 열심히 살았다 자부하는 어른들 중 자기 인생이 험난하지 않았다고 하는 사람이 없다. 그러니까 자기는 소설 같은 인생을 살았다고. 그러나 그들은 내가 그를 유심히 들여다보기 전 까진 그 또한 자신의 자부와는 정 반대로, 그저 속세의 미개한 대중들. 그 정도뿐으로 보이는 것을 전연 모른다.

타인의 페이지를 휘적대는 게 취미이던 날이 있었다. 나를 뺀 모든 인간들이 각별했다.

누구에게나 사랑이 있지. 평생 볼 일 없을 저 먼 외국의 어느 소녀에게도 속상한 사랑의 경력이 있을 테고, 볼품없이 나앉아 있는 저 사내에게도 사랑이 있거나, 있었거나, 적어도 있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별 볼일 없는 나에게도 무론 있겠지. 지겹고 재미없는 내 삶에도. 마냥 놀라운 일들, 남 얘기 같던 일들이 내게도 생기겠지. 이런 걸 생각할 때면 삶은 생경하게 다가오며 나를 물씬 놀라게 한다.​


구수하던 녹차가 점차 떫어진다. 콧등 위의 안경이 새삼 무겁게 느껴지고, 무선 블루투스 이어폰이 유독 귀에 꽉 끼는 듯 느껴질 때다. 이제 하루 치의 원고가 또 마감되는 시간인 거다. 이만 오늘 하루 막을 내리고 분주하게 다음 막을 준비해야겠다. 내 삶도 거의 소설이고 극이다. 내 페이지를 성의껏 읽어 줄 사람도 있을 거라 오늘도 믿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노후도시에서 청소년을 산다는 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