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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Goodbye 육아

당근 지켜보기

자전거

by 황옹졸

긴 외출을 끝내고 현관을 열었다. 팬티 바람으로 남편이 손을 흔든다. “오셨습니까?” 자식들은 좀 컸다고 군기가 빠졌는지 애미가 돌아왔는데 한 놈도 나와보질 않는다. ‘이것들이.'를 외치려는 순간 남편이 검지만을 새워 입술에 대고 ‘쉿.’하며 고개를 흔든다. 큰녀석은 자고 딸들은 아이스크림을 사러 나갔단다.

“두번 째는?”

“건드리지 마, 기분 안 좋아.”

열일곱 총각은 무슨 있으신가 하여 방문을 열었다. 2층 침대 아래층에서 머리를 베개에 처박고 엎드려 있다. 조금 더 어렸더라면 궁둥이를 까서 두들겼을 텐데. 발치로 가 종아리를 쓰다듬었다.

"아드님, 엄마가 왔어요. 얼굴 좀 보여 보십쇼."

천천히 돌아눕는다.

"엄마, 망했어요."


지명이는 느렸다. 특히 몸을 쓰는 일에. 태어난 지 넉 달이 지나서야 목 가누기를 시도했고 뒤집기는 남들은 되집기까지 다 터득했을 때, 그때서야 저도 해보겠다고 용을 썼다. 머리는 컸고 몸은 뚱뚱했다. 육아수첩에 6개월 9.6kg라고 쓰여있다. 걸음마는 15개월이 되어서야 겨우 한 발짝 땠고 후로 언제라도 몇 번이라도 달리기는 꼴등. 태어나자마자 세균성 뇌수막염을 앓은 터라 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후유증 걱정에 단 하루도 마음을 놓고 잠든 일이 없다. 의사는 앞으로 닥칠 수 있는 여러 무서운 가능성을 말하면서도 미리 앞서 걱정하는 것은 경계하며 "좀 지켜보죠."라고 했다. 다른 무엇보다 자식을 지켜보는 일은 초월자의 단수가 아닌가. 여섯 살, 블록으로 'ㄱ'과 'ㅏ'를 만들어 '가'라고 말한 날 나는 웃으면 잤다.


네 발에서 두 발 자전거로 넘어갈 때 무섭다고 도망하더니 이제야 배우겠다고 나섰다. 형이 타던 후줄근한 자전거를 인적 드문 길로 가지고 나갔다. 도와주겠다고 해도 혼자 한다며 아무도 못 따라 나오게 한다. 타는 모양새가 부끄러운 모양이라 우리도 굳이 나서지 않았다. 그렇게 두어 주 연습하더니 천지 사방 멍이 들었다. "자전거를 사야 할 것 같아요. 이거 내 몸에 안 맞고 낡았서." 얼른 네이버에 자전거 가격을 검색했고 자연스럽게 잘 타게 되면 사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시무룩이 자전거를 끌고 가는 아이의 뒤를 남편과 몰래 따랐다. 앞으로 곧바로 가지 못하고 비틀비틀 거린다. 아직 몸과 자전거가 한덩어리가 못 되고 저 따로 자전거 따로다. 그래도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는 탄다. 하나 사 주라는 남편의 말을 못 들은 척 했다.


"당근에 멋있는 게 나왔더라고요. 15만 원에. 꿍쳐 둔 돈이 딱 그만큼 있어서 산다고 올렸거든요. 동부시장으로 오라 해서 버스 타고 갔는데 자전거가 사진이랑 다른 거야. 더 낡았더라고요."

"안 산다고 하지 그랬어."

"아니, 엄마, 무슨 그런 당연한 말을. 나도 그러고 싶었지. 그런데 그 남자 팔다리에 그 팔다리에 말이에요. 문신이 빽빽해. 무서워서 말이 안 나와요."

"......"

거의 흐느끼며 말을 이었다.

"자전거를 탔는데 브레이크가 안 드는 거예요. 뒤돌았는데 그 사람이 그새 없어져버렸어. 동부시장에서 집까지 끌고 왔다니까요. 중간에 자전거 수리점 들렸는데 고치려면 4만 원이나 든대요. 나 어떡해."

키는 지 아빠보다 훨씬 큰 놈이 닭똥만 한 눈물을 쉴 새 없이 떨어뜨린다.


문신 잔뜩인 사람 앞에서 겁이 난 아들의 모습과 더운 날 십리가 넘는 길을 낑낑대며 자전거를 끌고 오는 모양, 수리 비용 4만 원이라는 말에 절망한 아이의 얼굴이 또렷이 그려져 심장 쪽이 아프다. 어떻게 나서야 할까? 당근의 그 남자를 쫓아가야 하나? 아직 한 번도 문신이 잔뜩인 사람과는 말을 안 섞어봤다. 편견이겠지만 나도 겁이 난다. 브레이크 고치는 비용만 줘, 애처로운 걸 봐 그냥 새거 사줘 버릴까?


그 옛날 의사 말을 교훈 삼아 생각을 멈추고 좀 지켜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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