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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옹졸 Mar 19. 2024

회오리감자

뇌수막


세균성 뇌수막염 환자에게 나타날 수 있는 후유증 설명을 길게 듣고 있다. 수두증, 뇌전증, 난청, 시신경 손상, 발달 장애 등등. 어떤 말썽이 날지 아직 알 수 없고 건강하게 자랄 쪽이 확률은 더 높다고 말했다. 나도 저 의사처럼 담담하게, 그냥 감기쯤 되는 병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면 좋으련만. 몇 년 동안은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아야 해 다시 병원 올 날짜를 잡아 주었다. 태어난 지 4주째다. 퇴원했다.



아버지, 어머니 집으로 가 늦은 산후조리를 했다. 다들 걱정에 찬 눈이지만 애써 웃는다. 그래, 아프면서 크는 법이지. 엄마가 먹어야 애도 산다며 미역국에 밥을 한 대접 말아 내 앞에 놓았다. 또 눈물이 난다. 왜 먹어야만 사는가? 아기는 언제 아팠냐는 듯 잘 지냈다. 그렇게 여러 날을 보냈다. 장마가 오려는지 계속 찌푸린 날씨다. 이 탓으로 보채는 것 같다. 새벽녘 젖을 물리려 일어나 아이를 안았다. 몸이 뜨겁다. 39도가 넘는다. 남편을 깨워 응급실로 달렸다. 한 달 전에 받았던 검사를 또 그대로 했다. 방광에 곧장 주사기를 찔러 소변을 뽑고 두꺼운 주사 바늘로 척추를 통해 뇌척수액을 빼냈다. 자지러지는 아이를 지켜만 봐야 한다. 결과가 나오기까지 물 한 모금 넘기기가 힘들다. 또 무슨 최악의 일을 말해주려나. 세상에 이보다 무서운 공포 영화는 없으리라. 주치의가 오더니 뇌수막염이 재발한 것 같단다. 입원실로 올려지고 교수가 왔다. 이런 일은 드물다며 엠알아이를 찍어보자고 한다. "뇌수막에 종양이 보입니다."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다. 머리를 열어야 한다고 한다. 아이를 꼭 안았다. 맞은편 꼬마 환자 엄마가 휴지를 뽑아 눈물을 닦아 주었다. 담당 교수가 다시 왔다. 아무래도 서울로 가는 게 좋겠다며 병원을 연결해 주었다. 



수액 줄을 다시 잡아야 하는데 그동안 손이며 발이며 하도 찔러 대 혈관을 찾을 수 없다. 결국 배에 주사를 꽂고 잠드는 약을 먹여 엠뷸런스를 탔다. 전주에서 서울까지 두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응급실 복도까지 환자들이 가득하다. 아이 배를 보더니 두 간호사가 왔다. '정맥팀'이 따로 있어 혈관만 찾고 다닌다. 전주에서 그렇게 어렵던 걸 두 번만에 성공했다. 이래서 '서울, 서울' 하는구나. 뇌에 있다는 나쁜 것도 여기선 단번에 고칠 것 같다. 



서울대 어린이 병원 7층. 우린 아픈 축에도 못 낀다. 대부분이 중증 환자다. 다시 항생제 치료가 시작됐고 엠알아이 영상 판독은 여러 날 걸린다며 기다리라고 했다. 옆 빈 침대에 환자가 들어왔다. 꽤 큰 아이를 아기 띠로 들쳐 업고는 콧노래를 부르며 문을 열었다. 내 품에 있는 애를 보고 "아유, 귀여워."라고 말했다. 띠를 풀어 딸을 침대에 누였다. 몸을 전혀 가누지 못했고 눈에 초점 없다. 머리통이 작고 한쪽 면이 움푹 파였다. 태에 있을 때 머릿속 종양이 발견 돼 지금까지 수 없는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병원이 집이라고. 묻지도 않았는데 그 여자는 아이의 일생을 쭉 읊었다. 잠깐 나갔다 오겠다며 침대 좀 지켜봐 달란다. 얼마 후 양손에 '회오리감자'를 들고 병실로 들어왔다. 내 것이라며 하나를 건냈다. 이 와중에 이런 요란하고 방정맞은 음식을 사 오다니. 성의를 무시할 수 없어, 받아 한입 베었다. 맛있네.



며칠 후 담당 교수가 왔다. 판독 결과, 종양이 아니란다. 뇌수막에 생긴 염증 자리가 그렇게 보이는 것이라고 했다. 재발이 흔하지 않지만 있는 일이고 애 상태가 크게 나쁘지 않으니 좀 지켜보자고 했다. 후유증이 걱정이지만 꾸준히 병원 다니며 검사받고 관찰하는 수밖에 없다고. 아, 머리를 열지 않아도 되다니!



잠든 아이를 옆 자리 여자에게 부탁하고 근처 포장마차로 달려갔다. '회오리감자' 하나를 사 그 자리에서 다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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