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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옹졸 Aug 13. 2024

엘에게 하는 해명

엘이 내가 작년 6월에 쓴 글의 일부를 캡쳐해 단톡방에 올렸다. 엄지와 검지로 액정을 벌려 글자를 크게 했다. 글쓰기한 지 3개월 되었을 때, 먹는 것 자는 것이 하찮게 느껴질 정도였는데 이런 마음을 글에 담아 놓았었다. 브런치에 글 올린지 2주나 지났다며 초심 잃지 말고 얼른 글을 쓰라고 독려해 준다. 내가 무슨 명작가라고. 내 글을 기다린다는 게 듣기 좋고 고마워 핸드폰 들고 있는 손이 빨개졌다. 


실은 작년보다 글쓰기에 간절하다. 모든 일어나는 일은 어떻게 쓸까로 연결된다. 흐르는 일상에 오만가지 생각이 따라 붙는데 오줌을 싸고 똥을 누고 머리 감고 세수하고 얼굴에 로션 바르는 일에서도 할 말이 산더미다. 오가다 만나는 사람과 잠깐 나누는 대화는 어떤가? '안녕하세요?'에도 많은 게 담겨 있다. 문제는 몽알몽알 생각은 많은데 가닥을 못 잡는다는 것. 거미줄 같이 희미하고 얇더라도 얼개가 머릿속에 짜여야 책상에 앉을 수 있는데 요즘 깊이 생각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 


지난 2주 동안 글로  일이 여러가지였는데 다 지나버렸다. 순간을 몇 개의 낱말로라도 기록해 두지 않으면 기억은 거의 소실되고 남은 파편은 내 중심으로 편집된다. 엘이 일하느라 시간이 없냐고 묻는다. 그렇다. 오전에만 나가서 한글을 완전히 해득하지 못 한 아이 두 명과 공부하고 오는데 무슨 큰 연구를 해서 가르치진 않아도 그 시간만큼은 최선을 다한다. 아이들이 눈에 띄는 발전은 없다. 이게 여간 스트레스가 아니다. 일도 잘하고 살림도 깔끔하게 유지하며 글을 써내는 건 쉽지 않았다. 퇴근하면 마침 점심이라 또 밥을 지어 식구들을 먹이고 설거지를 하고 쌓여있는 빨랫감을 구분해 세탁기를 돌린다. 버려도 버려도 쌓이고 쌓이는 쓰레기를 또 버린다.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하니 땀이 비 오듯하여 이왕 버린 몸, 화장실을 청소했다. 안방 욕실은 남편이 이틀 전에 했다고 했는데 도데체 왜 이 모양일까? 따져봐야 입만 아프고 개선은 없으니 넘어간다. 마치고 샤워하고 나와 냉동실에서 얼음을 하나 꺼내 입에 문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집어 들어 거실 복판에 드러 누웠다. 한 쪽 읽고 깊은 잠에 빠진다. 그러고 나면 저녁이 왔고 또 밥이다. 세상에  밥이 없다면 나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 되었을지 궁금하다. 낮에 한 일을 또 반복했다. 그러고 나면 한글을 해득하지 못 한 아이들이 생각나 보습학원 경력 20년인 수화에게 전화해 비법을 묻고, 이래저래 사는 얘길 하다 보면 또 즐음이 쏟아져 창문을 보니 밤이다. 깜깜만하면 살이 헛헛하다. 전화를 얼른 끊고 남편에게 갔다. 엎드려 누워 유투브를 보는 그의 메리야스를 걷어 올려 등을 살살 긁어주었다. 그러고는 나도 등을 내민다. 오른손으로 핸드폰을 들고 왼손으로 대충 긁는다. 그마저도 잠깐하다 손이 엉뚱한 곳으로 와 똑바로 긁으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다 보면 밤은 더 깊어져 잠을 잘 수밖에 없다. 


이러니 글을 못 쓰고 2주나 지나버렸다. 


교회 여름 수련회에 가는 날 아들이 가출을 했고 생일에 남편에게 '10분 키스' 선물을 받기로 했는데 채 1분도 못했다. 막내와 여행에서 '소년의 서'라는 독립 서점 갔다가 나도 책방 주인이 되고 싶은 꿈이 생겼다. 내가 번 돈으로 십일조를 하고 어머니 생신에 용돈을 드렸다. 하나님 표정은 볼 수 없었고 어머니가 치아를 다 그러내 놓고 웃는 건 처음 보았다. 10년을 요양병원에 계셨던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드디어'라는 단어가 떠올라 민망했던 일도 있었구나. 조각 조각에서 사는 게 뭔지 고민하고 울고 웃었으며 생각의 끝은 이걸 글로 담아 '엘에게 읽혀야지'였는데. 마태복음 26장 41절 말씀,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여, 다 지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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