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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당설탕 Apr 09. 2024

가여운 것들: 근대성의 서사에 관한 동화적 연출

우리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본 글은 영화 <가여운 것들>의 결말을 포함한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본 글에 사용된 사진의 저작권은 SEARCHLIGHT PICTURES에 있습니다.


동화적 연출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최신작 “가여운 것들”은 그의 전작인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2018)와는 차별화된, 독창적인 세계를 펼쳐 보인다. 본 작품은 마치 동화 속에서 빠져나온 듯한 설정과 함께, 19세기 후반을 연상케 하는 시대 배경을 통해, 역사적 실재와는 거리가 있는 기술과 사물들을 등장시키며 시청자를 매혹한다. 특히, “오즈의 마법사”를 연상시키는 미장센은 현실 세계를 아주 섬세하게 틀어, 어딘가 불쾌한 골짜기를 넘나드는 듯한 느낌을 전달한다. 이는 흔히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는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서는 의외의 매력으로 다가온다.


영화는 이 같은 동화적 연출을 통해, 기이한 장면들을 다수 포함시킨다. 그 중심에는 근대 의학과 과학의 발전이 자리 잡고 있다. 벨라 백스터와 그녀의 창조자인 굿윈 백스터 박사의 관계는 현실 기반의 판타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이를 통해, 영화는 근대성의 다층적인 발현을 탐구하고 있다.


근대성과 상징


본 작품은 근대성의 탄생과 발전을 조명하며,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주로 두 가지 요소에 주목해야 한다. 첫째, 각 인물이 상징하는 바와 둘째, 사건들이 의미하는 바다. 인물 측면에서, 밸라는 근대성 자체를, 백스터 박사는 근대성이 탄생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상징한다. 맥스는 시대를 초월한 인간 본성의 선함을, 던컨은 중세가 새로 나타난 근대성을 통제하려 했던 방식을 나타낸다. 해리 애슬리는 과학 발전에도 불구하고 윤리가 필요함을 상징하며, 블레싱턴 경은 인간의 폭력성을, 펠리시티는 유사과학을 대표한다. 밸라의 원래 육체를 지닌 여성은 근대 이전의 사회, (비유적 의미에서) 자신의 자식을 혐오하는 중세적 가치관을 상징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밸라의 신체구조 자체가 근대성에 대한 적절한 비유이지 싶다. 어른의 신체에 심어진 아기의 뇌, 그것이 중세의 인류에 심어진 근대의 정신을 뜻하는 것은 아닐까.


영화의 중요 사건들, ‘자위행위의 발견’, ‘빈민가 목격’, ‘성매매 종사’, ‘아버지의 죽음’, ‘블레싱턴 경의 죽음’ 등은 근대성의 다양한 측면을 탐구한다. 이러한 사건들은 인간의 본능적 욕구, 탐욕, 그리고 근대 초기의 인간성 상실 등을 탐구하며, 과학과 근대 문화가 어떻게 인간의 내재된 선과 악을 드러냈는지를 보여준다.


우선적으로, 자위행위와 그로 인한 성적 행위의 발견은 본질적으로 쾌락을 추구하는 인간의 근본적 욕구와 연결된다. 이러한 추구는 근대 초기에 목격된 인간성의 상실과 유사한 여러 형태를 드러낸다. 예를 들어, 어린이들을 공장 노동으로 착취하거나 노동자들을 과도하게 일하게 만들며 인권을 무시하고 오로지 사업적 이익을 추구한 과거의 모습이 그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생학이나 인종학과 같이 과학을 악용하여 비틀린 세계관을 정당화하는 사례도 존재한다. 근대 문화와 과학이 초기에 인간 내면의 본능적인 악을 쾌락 추구의 형태로 표출시켰던 것처럼, 과학은 종종 자본이나 권력과 같은 인간이 만든 가치를 획득하기 위해 이용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성매매 업소에서의 밸라는 다수의 남성들이 자신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그녀를 이용하는 상황을 연상시킨다. 이는 과학과 근대성의 이용과 남용이 어떻게 반영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아버지의 죽음은 중세와의 최종적인 결별을 상징한다. 중세에서 근대로의 전환 과정에서 인간은 수많은 비윤리적 행위를 저질렀고, 특히 의학 분야에서는 밸라에 비견될 만큼의 인체 실험을 무수히 실행했다. 이러한 행위들은 근대성의 출발점이었으나, 밸라는 이제 그러한 과거로부터 독립을 선언한다. 그녀는 맥스와의 결합을 통해 인간 본성의 선함과 연결되길 희망한다.


하지만, 이 과정은 블레싱턴 경, 즉 밸라의 과거 남편이 나타나면서 복잡해진다. 블레싱턴 경은 근대성 이전의 시대, 즉 중세의 폭력성을 대표한다. 근대는 이미 이러한 폭력과 결별했으나, 블레싱턴 경은 마치 과거의 악몽이 되돌아온 듯 그녀를 위협한다. 결국 밸라는 그로부터 탈출하고, 그를 자신의 애완동물로 만들며 상황을 역전시킨다. 이는 냉전과 탈냉전 시대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냉전은 한때 인류에게 세계대전의 공포를 다시 일깨웠으나, 결국 직접적인 충돌 없이 소멸했다.


결말에 관하여


영화는 밸라와 그녀의 동료들이 이른바 승리를 거둔 듯한 결말로 마무리된다. 실제로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폭력을 상징하는 블레싱턴 경은 관리하기 쉬운 애완동물로 묘사된다. 폭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밸라와 주변인물들은 행복해 보인다. 마치 해피엔딩처럼 보이며, 세계시민주의, 자유무역 등 평화롭고 유토피아적인 미래가 약속된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이 작품은 1992년에 집필되어 소련 붕괴 직후의 시기의 사회를 반영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와 영화에서의 마지막 분위기가 희망으로 가득 차 있는 점은 상당히 유사하다. 하지만 현실 세계는 여전히 폭력의 위협에 직면해 있다. 만약 영화의 원작이 되는 소설이 2023년 현재에 쓰였다면, 결말은 다른 양상을 보였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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