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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당설탕 Mar 23. 2023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고

순수함과 성숙함, 그 사이

  호밀밭의 파수꾼은 내가 어렸을 적부터 자주 들었던 책 제목이다. 아마도 성장소설의 대명사로 알려져서 그럴 것이다. 책을 완독 한 입장에서, 나 역시 예의 의견에 동의한다.


  성장이란 무엇인가? 사실 이 질문에는 수백수천 가지의 대답이 존재한다. 나조차도 아직 성장 중인데 어떻게 내가 성장이 무엇인지 완벽하게 정의하고 구분 짓겠는가. 그러나 어떤 이의 일기를 보고 그가 성장 중인지 아닌지를 평론하는 것은 가능하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사실 주인공 홀든 콜필드의 일기장이나 다름없다.  왜냐하면 이 소설의 서술 방식은 1인칭 주인공 시점이며 내용은 주인공이 펜시 고등학교를 퇴한 후 벌어지는 사흘간의 이야기를 회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실망한 냉소적 이상주의자


애들이란 달릴 때는 저희가 어디로 달리고 있는지 모르잖아?
그런 때 내가 어딘가에서 나타나 그 애를 붙잡아야 하는 거야.
하루 종일 그 일만 하면 돼.
이를테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는 거야.
—  호밀밭의 파수꾼 中  


  이 대목은 소설 전체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 장면은 그가 여동생 피비와 함께 자신이 되고 싶은 것에 대해 말하는 장면이다.  그가 말하는 '호밀밭의 파수꾼'이란 무엇일까? 아마도 콜필드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을 수호하는 사람일 것이다.  예컨대 순수한 아이들이 자신의 이상을 벗어난 길에 들어서 타락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왜 콜필드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어 했을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내가 말하고자 하는 콜필드의 '이상'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이상[理想]: 생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가장 완전하다고 여겨지는 상태. (「이상」, 『표준국어대사전』)

  소설 내내 콜필드는 자신의 이상이 무엇인지에 대해 독자에게 힌트를 남긴다. 우선 당장 위의 고백 이전에 콜필드는 자신이 변호사가 되기 싫은 이유를 설명하며 자신은 죄 없는 사람을 도와주는 변호사가 되고 싶지만 막상 변호사들은 사치스러운 삶에 대한 야망으로 일을 한다고 말한다. 다른 예시로 스펜서 선생과의 대화 장면을 보면 콜필드는 자신이 열일곱 살이지만 아직도 열세 살짜리 소년처럼 행동한다고 한다. 또한 어른들은 자신의 말이 절대 진리라고 하지만 자신은 개의치 않는다고도 말한다. 이외에도 소설 속에서 콜필드가 다양한 사람들의 언행을 평가하는 장면들을 통해 대략적인 그의 신념이 파악 가능하다.


  그렇다면 그의 '이상'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콜필드의 이상은 세상 사람들이 모두 어린아이의 순수함은 가지면서 어른의 성숙함을 지녔으면 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어린아이의 긍정적인 측면과 어른의 긍정적인 측면만을 가지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 그 세상이 콜필드의 이상향이다. 과연 그런 사람이 세상에 존재할까? 작중 콜필드와 대화했을 때 결과적으로 갈등이 발생하지 않은 몇 안 되는 사람들 중 하나가 수녀들이었다. 수녀는 아마 내가 앞서 언급한 순수함과 성숙함을 동시에 지닌 대표적인 직업들 중 하나일 것이다. 콜필드는 그들을 향해 무한한 동경을 표시한다. 콜필드의 가족 관계는 또 어떨까? 그는 자신의 형 D.B.의 작가로서의 모습(성숙함)을 존경하지만 할리우드 진출(순수함을 잃은 모습)을 개탄한다. 피비에 대해서는 아이로서의 순수함에 대해 예찬한다.


  안타깝게도 세상은 콜필드의 이상과는 딴판이다. 어른들은 순수함을 잃었으며 그렇다고 성숙함을 가진 어른도 많지 않다. 결국 콜필드는 세상에 계속해서 실망한다. 자신이 성숙하다고 생각했던 스승에게 배신감을 느꼈을 때 콜필드의 모습을 보면 그가 안타까워질 지경이다. 그렇게 실망한 이상주의자는 냉소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내적 갈등이 외적 갈등의 동기


문제는 내가 그냥 하고 싶지 않다는 데 있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성적 흥분보다는 우울함을 느끼고 있었다.
- 호밀밭의 파수꾼 中



  콜필드는 나의 이상과 세상이 다르다는 현실에 대해 타협할 것인지에 대한 내적 갈등을 겪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내적 갈등에 기반한 행동들의 결과는 외적 갈등을 일으킨다. 호텔에서의 창녀, 샐리, 모리스 등 그가 만나는 사람들은 결국 그를 떠나게 된다. 그게 아니라면 그가 그들을 떠난다.


  흥미로운 점은 콜필드 자신조차도 자신의 이상과 부합하지 않는 행동들을 할 때가 자주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소설 속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은 바로 성(性)과 관련한 문제이다. 다른 것보다도 콜필드는 성과 관련한 문제에서 자신이 혐오하는 모습을 스스로에게서 찾는다. 그는 그것을 부정하고 싶지만 사춘기 소년에게 꽤 어려운 일이다. 대표적인 예시가 호텔에서 창녀와의 만남일 것이다. 콜필드는 세상에도 자기 자신에게도 실망한다. 그는 결국 뉴욕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장한다


피비가 목마를 탄 채 돌아가고 있는 것을 보자 나는 갑자기 행복을 느꼈다.
너무나 기분이 좋아서 큰 소리로 마구 외치고 싶었다. 왜 그랬는지 모른다.
 여하튼 피비가 파란 외투를 입고 빙빙 돌고 있는 모습-이건 너무나 멋있었다.
정말이다. 이건 정말 보여주고 싶다.
— 호밀밭의 파수꾼 中


  소설의 후반부에서 콜필드는 세상과 자기 자신의 모습을 수긍하게 된다. 더 이상 어린아이처럼 도망치려 하지 않는다. 학교에 있는 '씹하자'라는 낙서를 아무리 지워도 그 낙서는 박물관 모퉁이에도 있다. 도망칠 곳은 없다. 그는 이제 자신이 말한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기 위해 공부도 할 것이다. 그것은 고통의 과정일 것이다. 성숙해진다는 것은 늘 어려운 법이니까. 어쩌면 자신이 그토록 싫어했던 어른들의 모습과도 조금씩 타협해야 할지도 모른다.


  거울 앞에 서서 자신과 자기 주변을 정면으로 마주 보는 것, 그리고 바꿀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명확히 구분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것이 어른의 성숙함이다. 그러나 그 구분을 토대로 자신의 이상을 추구하도록 만드는 것어린아이의 순수함이다. 두 가지를 모두 함양할 때, 비로소 우리는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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