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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효진 Nov 21. 2020

2020년 결산 (1) 두 번째 책을 냈다

<나만의 콘텐츠 만드는 법> 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올해 하반기에는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았다. "회사 일도 하고, 다른 일도 하면서 어떻게 책까지 썼어요? 언제 쉬어요?" 그러면 나는 웃으며 답했다. "....그래서 책 쓰는 데 2년이 걸렸어요."


<나만의 콘텐츠 만드는 법>은 원래 <잡지 만드는 법>이 될 뻔한 책이었다. 2018년,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사적인서점에서 '나의 사적인 잡지 만들기' 워크숍을 진행했고, 당시 사적인 서점의 정지혜 북디렉터와 <사적인 서점이지만 공공연하게>를 작업하고 있던 유유의 전은재 편집자가 그 워크숍을 보고 출간 제안을 준 것이다. 지금이 초보 저자라면 그때는 왕초보 저자였던 나는 첫 책 <아무튼, 잡지>를 세 달만에 마감했다는 사실에 몇 달째 심취되어 있었기 때문에, '올해까지 마감하실 수 있을까요?'라는 편집자의 말에 자신 있게 답했다. "당연하죠! 저 첫 책도 세 달만에 썼는데요."


그리고 그대로 1년이 흘렀다.


책을 쓴다는 건 두 번째에도 역시 어려웠다. 샘플 원고를 여러 개 쓰고, 쓰다 말고, 목차를 바꾸고, '이게 책이 될 수 있는 이야기인가?' 의심하고... 아무튼 그런 시간을 지나는 동안 책이 완성될 기미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2019년 봄 나는, 풀타임으로 일하는 회사에 입사했다. 구성원의 수가 적은, 이제 막 시작하는, 말 그대로 '스타트업'에서 새로운 일과 새로운 동료에 적응하는 과정도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만만치 않았다. 당시로서 그럭저럭 순조롭게 흘러간다고 감각할 수 있는 일은 동료 윤이나 작가와 함께 만드는 팟캐스트 [시스터후드]를 만드는 일 정도였다. 해야 하는 업무가 비교적 간단하고, 어쨌거나 이전부터 계속 해왔으며, 정기적인 일이었으니까. 책에 관해서라면, 실제로는 책을 쓰지 않으면서 쓴다는 기분 같은 것에만 눌려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조금 더 변명해보자면, 쓸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만큼이나 나의 방법론을 잘 정리해서 누군가에게 쓸모 있을 노하우로 만드는 게 너무 어려웠다. 콘텐츠를 만드는 건 사람마다 맞는 방법도 다르고, 과정도 다르고, 목표도 다르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누군가 자신이 만든 기획안을 보여주고, 내가 거기에 피드백을 하는 게 훨씬 더 나은 방식일 것이다. 팟캐스트 만드는 법도 아니고, 뉴스레터 만드는 법도 아니고, 콘텐츠 만드는 법이라니! 왜 도대체 이런 걸 쓴다고 했을까!


아무튼 편집자의 당근과 채찍, 수많은 간식들, 친구와의 수많은 카톡, 수많은 참고자료와 휴지통으로 사라진 수많은 문서들과 목차들과 수많은 커피와 수많은 다른 마실거리들 덕분에, 2020년 2월 14일 무사히 모든 원고의 초고를 털었다. 마감에 집중했던 2019년 연말부터 2020년 연초까지는 거의 매일 많으면 하루에 원고지 60매, 적으면 20매 정도를 썼던 것 같다. 너무 많은 분량의 글을 짧은 기간 안에 연이어 쓰다 보니 이게 어떤 글이 되고 있는지, 글이 되고는 있는지 판단하기조차 어려웠지만, 어쨌든 나는 마감을 해냈다. 해냈다는 것만이 중요했다. 가만히 있어도 웃음이 났다. 초고를 다 턴 날에는 자축하기 위해 타다를 타고 사무실에 출근해 회사 동료들과 칼국수에 왕만두에 파전을 먹었다. 타다는 편했고 칼국수와 그 밖의 음식들은 너무, 너무, 맛있었다.


체계적으로 마감하는 기분을 내기 위해 노션에 정리하던 마감 일지. 곧 귀찮아졌는지 1월 3일 자로 끝나 있다.



첫 계약을 하고 거의 2년이 지나 나오게 된 <나만의 콘텐츠 만드는 법>은 오렌지와 라임색이 귀엽게 어울린 표지의, 어디 놓아도 눈에 띄는 책이다. 이 책이 나오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정말 많은 축하를 받았다. 친구이자 동료인 윤이나 작가는 사적인 서점에서 이 책을 여러 권 사서 트위터에서 리트윗 이벤트를 통해 모르는 사람들에게 선물했고(역시 트위터 친화적인 사람이다), 사적인 서점의 정지혜 북디렉터는 내 책과 내가 추천하는 책 세 권(참고로 <디디의 우산>, <읽거나 말거나>, <면역에 관하여>였다)을 사적인서점에 힘주어 진열해주었다. 이 책이 만들어지는 모든 과정을 함께 한 전은재 편집자는 아름다운 접시와 편지를, 또 차와 연필을 나에게 선물하며 틈틈이, 꾸준히 축하해주었다. 회사 동료들은 누구보다 먼저 책을 읽고 좋다고 이야기해주었다.


그리고 그 사이 일하는 밀레니얼 여성을 위한 커뮤니티 서비스를 만드는 회사를 통해, [시스터후드]를 통해 얻은 아주아주 느슨한 친구와 동료들이 - 친구는 인터넷 친구가 있어요 - 이 책을 많이 읽고 많이 소문내고 많이 축하해주었다. 만약 내가 계획대로 2018년 겨울에 무사히 마감을 해내서 2019년에 책이 나왔다면, 이 정도로 많은 사람들에게 환대받지는 못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계획대로 되지 않아서 더 좋은 결과가 나올 때도 있다니 인생은 역시 재미있지.


나는 아직도 매일 아침 잠에서 막 깨어 잘 떠지지도 않는 눈으로 온라인 서점에 접속해 세일즈 포인트를 확인하고 포털사이트에서 책 제목을 검색해 '베스트셀러' 딱지가 여전히 붙어있는지, 새로 올라온 리뷰가 있는지 살펴본 다음 인스타그램에서 해시태그와 작가 이름으로도 검색해본다. 언제쯤이면 이 작업을 멈출 수 있을까?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마 다음 책이 나올 때쯤 멈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다음 책이라는 것이 무사히 나오려면 또 고통의 시간을 얼마간 건너야 하겠지만 말이다. 진작 건넜어야 하는데 아직 안 건넜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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