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이 쓰는 삶
오랜만에 아이와 부모님 집에 들렀다. 어머니가 저녁을 차려주시는 동안 아이와 내가 쓰던 방, 책장을 구경했다. 책꽂이 한켠에 스프링은 녹이 슬고, 색이 바랜 노트가 여러 권 있었다. 호기심에 눅눅한 노트를 꺼내 펼쳐보니 대학 1, 2학년 때 쓰던 강의 노트였다. 꼭 20년이 된 노트에는 낯선 글씨체의 필기가 빼곡했다. 강의제목마저 생소해져 버릴 만큼 시간이 흘렀으니, 요즘엔 손글씨를 거의 쓰지 않으니 낯설기만 하다 싶다. 교양수업과 전공수업에는 펜으로 눌러쓴 글씨가, 복수전공으로 공부했던 경제학 과목 노트에는 뜻 모를 그래프가 가득했다.
뭘 그리 받아 적었을까 싶은 마음에 노트를 후드득 넘기다 맨 뒤를 펼치니 갈겨쓴 메모들이 있었다. 지금도 가끔 회사에서 노트를 쓸 때, 뒤에서부터 아무 말이나 쓰는 메모지로 활용하는데 20년 전에도 그랬나 보다. 누군지도 기억나지 않는 친구와 강의 시간 숨 죽이며 대화한 메모들. 내용을 보니 친구가 썸남에게 받은 평범한 문자를 한 자 한 자 의역하며 해석해 준 잡담. 결론은 평이한 문자지만 그도 너에게 관심 있는 것 같다는 희망적인 내용. 카톡은커녕 플립 핸드폰을 쓰던 시절이라 문자보다는 노트에 펜으로 적어가며 무언의 대화가 더 편했던 시절.
교양 수업 필기, 친구와 시시콜콜한 대화내용을 보며 순간 20년 전으로 돌아갔다. 여전히 열 자리 학번이 기억에 선명한데 언제 강산이 두 번 바뀌었는지. 내가 학번을 이렇게 오래 기억하고 있을지 몰랐다. 대학시절 내가 서른이 된다면, 마흔이 된다면 어떤 모습일까 그려보고 상상했었는데, 이제는 시간의 반대편에서 내 서른은 어땠는지, 내 스물은 어떠했는지를 돌아보고 있다니.
스무 살 다리를 건너기 전 맞은편을 바라보며 강 너머에는 뭐가 있을까 궁금하고 불안한 마음이었다면, 마흔이 된 지금은 뒤돌아 내가 걸어온 길을 바라보고 있는 느낌. 길을 잘못 들지는 않을까, 다리는 끊겨 있지 않을까, 바람이 불고 비가 많이 오지는 않을까. 걱정도 많았지만 어찌어찌 강을 건너왔구나. 중간에 힘들기도 했는데, 잠시 멈춰서 강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기도 했는데, 저 너머 다른 다리를 바라보며 부러워하고 더 불안해하기도 했었는데. 그래도 내가 강을 건너왔구나 하는 생각.
애써 낭만으로 포장하자면 건너온 다리는 내 인생의 청춘 같은 시절이 아니었을까. 꾸역꾸역 건너온 이십 대와 삼십 대를 거쳐 사십 대가 된 오늘,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게 한 동력이 어쩌면 이렇게 노트에, 어딘가에 쓰고 적은 것들이 아닐까. 새롭게 배우고, 깨달은 것들. 머릿속을 스치고 가는 생각들, 시시콜콜한 잡념들. 그것을 기록으로 남긴 것. 손글씨로 노트에 적은 것들, 싸이월드, 블로그, 브런치, 내 노트북 속에만 남은 글과 기록들.
사실 이십 대 중반 여행 중 빼곡히 생각과 감정을 적은 다이어리를 잃어버리고 나서 기록한다는 것에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글로 남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내가 지금 느끼고 깨달은 것을 체화하는 것이 더 중요한 건 아닐까 싶은 마음에 글로 남기는 것을 멈추기도 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은 흐려지고, 글은 선명해졌다. 글로 새겨진 기억과 감정만이 영원했다.
어쩌면 작은 발걸음이 쌓여 끝이 보이지 않는 다리를 건너듯, 별것 아닌 것 같아 보이는 기록이 쌓여 오늘의 내가 되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더욱 쓰는 일을 자주, 부지런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글을 쓰고, 생각을 기록하는 일이 하나의 걸음이라면 남기는 것만이 내 인생을 움직이고 살아내는 것일지 모르니. 멈춰 설 때도 있지만, 걷지 않으면 강을 건널 수 없듯 사십 대를 잘 건너기 위해서 더더욱 쓰기가 필요한 것 같다.
20년 전 우연히 내 손글씨를 보며 과거의 나와 잠시 조우한 것처럼 가끔씩 예전 내 생각이 오롯이 담긴 글을 꺼내어 볼 때 오늘의 내가 그때의 나를 만나 서로 대화하고, 이해하는 것 같다. 앞으로 새로운 20년은 어떤 길일까. 육십이 되어 돌아본 내 사십 대는 어떤 느낌일까. 더 힘든 길일까. 꽃길일까.
마냥 즐겁고 행복하기만 한 시간이어도 좋겠지만 건너온 다리를 돌아볼 때, 가끔 힘들었더라도 순간이 기억에 남고 의미가 있는 시간이 많았으면 좋겠다. 머물고 싶은 순간이 많은 길이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충분히 생각을 남겨서 그때도 이십 대와 사십 대와 육십 대의 내가 만나 안아줄 수 있는 시간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