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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금토끼 Apr 22. 2024

배심원: 미국 시민의 의무

얼마 전에 재밌는 이야기를 들었다. 배심원 의무에 대한 이야기였다.


배심원 제도는 내가 알기로는 한국에는 없는, 미국의 제도다. 배심원들이 하는 일은 간단하면서 강력하다. 12명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은 피고인의 유/무죄를 정할 수 있다. 물론 형량은 판사가 정한다.


아무리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배심원단이 무죄를 때려버리면 판사가 할 수 있는건 없다. 그렇기에 사전 뇌물을 막기위해서 배심원단은 무작위로 뽑힌다. 미국 고등학교에서 법에 대한 수업을 들으면 상당한 비중을 할애하는게 바로 이 배심원 의무이다.


이렇게 무작위로 뽑혀서 배심원 소환장을 받으면 결격 사유가 없는한 모든 미국 시민들은 소환에 응해야한다.


 그러나 미국의 한인들에게는 귀찮은 일일 뿐이다. 그들에게 배심원 의무는 이름만 다른 민방위였다. 특히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배심원으로서 법원 가는 것도 꺼려지고, 꽤나 긴 시간동안 법원에 출근해야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으리라.


한인들이 쓰는 일반적인 회피 방법은 "영어를 잘 모른다"였다. 영어를 모르는 사람이 재판을 이해할 수 없을테니 말이다. 그러나 이 회피 방법을 불안하게 여기기도 한다. 후일 불이익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얼마전 들은 이야기는 바로 또 다른 회피 방법에 대한 이야기였다. 배심원으로 가면 간단한 인터뷰를 본다고 한다. 그때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이 사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인데, 가서 이렇게 말하라고 했다.


"유죄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경찰은 유능하기 때문에 실수할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 생각없이 유죄무새를 할거란 이야기를 들으면 배심원에서 제외된다는 조언이였다. 기발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배심원은 시민의 의무인 동시의 권리다. 재판 과정에 참여하는건 단순한 노동이 아니다. 사회의 일원으로서 범죄를 저지른 이에 대해서 다른 구성원들과 논의하고 결정을 내리는 중차대한 일이다.


동시에 많은 나라에서는 얻기 힘든 권리이기도하다. 한국 사람들이 왜 재판 과정을 욕할까. 왜 판사를 욕할까. 시민들이 재판 과정과 유리되어있기 때문이다. 법이 어떤지는 관심이 적지만, 범죄자가 약한 형량을 받는건 불만스럽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아니다. 모든 시민들은 법에 대해서 배우고, 배심원으로 참석하며 재판과정을 익힌다. 적어도 내가 다닌 고등학교에서는 배심원으로 출석하는걸 당연한 의무라고 가르쳤다.


한인들이 배심원 제도에 불출석하는게 개개인에게는 편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인 커뮤니티에는 명확하게 불이익이다. 통계를 보았을때 한인들이 배심원으로서 출석하지 않는게 들어난다면 다른 미국 시민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한인들이 피고로 재판에 불려왔을때, 배심원들은 어떻게 사건을 다룰까.


결국 배심원들도 사람이다. 감정에 영향받고, 눈에 보이는 것에 휘둘린다. 의무에 소홀히 하는 한인이 누명을 써서 재판에 서게 되었을때, 그들의 판결이 공정할지 우리는 모른다. 그러나 같은 한인이, 아니면 한인과 함께 배심원을 했던 사람이 배심원에 서게 된다면 사건을 보다 공정하게 바라볼 것이다.


그리고 나는 배심원 제도는 한국에서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미국 교육을 받아서 그런지는 모르겠다. 물론 모든 시민들에게 법에 대한 교육이 선행되어야한다. 하지만 배심원 제도는 사람들이 재판에 대한 불만을 해소하는 해결책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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