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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캇아빠 Jun 06. 2024

너도 너 같은 애 한번 키워봐라

그렇게 심한 말을

나이가 점점 들면서 점점 확실해지는 게 있다. 나이 든다는 것과 철이 든다는 것은 매우 다른 말이고, 나이가 들었다고 자동으로 현명해지거나 인격적으로 성장하지도 않는다는 거다. 30살 때의 나와 40살 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많이 다르지 않다. 여전히 조금 까칠하고, 여전히 철이 없다. 조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 창피함이 조금 없어졌고, 슬픈 영화를 보면 눈물을 참지 못한 다는 것뿐이고, 본질은 여전히 30대의 철없이 여기저기 부딪히고 다니다가 혼자 잘난 줄 알고 까불다가 큰코다치는 그런 사람이다.


아침에 첫째 아이를 깨워서 학교 보내는 일은 자존심에 꽤 많이 상처를 입는다. 사정사정해서 깨우고, 제발 서둘러달라고 하고, 화를 내다가도, 곧 다시 사정을 한다. 하지만 아빠의 말은 가볍게 무시되고, 문을 나서는 순간까지 거울을 보고, 날씨를 확인하고, 어떤 재킷을 입을지 고민하다. 천천히 문을 나서 주신다.

그렇게, 첫째 아이를 등교시키고 나면, 오래전 들었던 말이 떠오른다.


"너도 너 같은 애 한번 키워봐라"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나도 그랬던 것 같다. 아침은 항상 어머니의 등스매싱으로 시작했었다. 어머니는 아침에 잠을 못 깨는 아들을 화장실에 밀어 넣으시고, 또 빨리 나오라 하시고, 빠진 물건이 없는지 확인하라 하시고, 날씨를 확인해서 혹시라도 비가 올 거라고 하면 우산을 건네주시며, 마지막까지 잠이 안 깬 아들을 문밖으로 밀어내셨다. 그렇게 어머니는 아침마다 몇 년을 전쟁을 치르셨다.

그런 전쟁을 치르면 어머니는 내게, 꼭 나 같은 애를 키워봐라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


그리고, 당시 어머니의 나이가 지금의 나보다 어렸음을 감안하면, 그 말은 분명 분노와 저주의 말이었을 것이라 추측된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저주는 실현되었다. 당시에는 그 말을 들었을 때, 어머니가 나 때문에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정신을 차리고 행동을 바로 하라는 말로 여겼었다. 하지만, 지금의 내 마음상태를 보면, 그건 교육적인 말이 아니다. 그건 분명 저주였다.


시간이 점점 지나고, 나이가 들면서 자꾸만, 당시의 어머니의 나이를 생각하게 된다. 이제 갓 대학교를 졸업하고,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한 가정을 이룬다. 그리고 그래봤자 20대. 여성스러움은 금세 억척스러움으로 바뀌고, 친구들과 팔짱 끼던 손은 아이들을 놓칠세라 양손으로 꼭 잡고 끌고 다닌다. 소녀처럼 깔깔거리던 목소리는 아이들에게 소리를 지르느라 날카로워졌다.


그리고, 어느새 나는 그랬던 어머니보다 훨씬 나이가 먹었고, 당시의 어머니를 어른으로 보지 않고, 여전히 철없고, 까칠한 한 20대 젊은 여자가 가정이라는 말과 엄마라는 말의 무게감으로 어쩔 수 없이 행동했던 모습들을 보게 된다.


그래서 오늘의 생각..


"엄마가 나한테 저주를 내린 거였어! 아무래도 한국 가면 한번 따져봐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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