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8월.
연세대에서는, 엄청난 사태가 발생했다!
당시에, 학생운동을 이끌던 <한총련> 이,
광복절 기념으로 북한에서 열린 “민족통일대축전“
에 2명의 학생을 남측 대표로 참가시켰고..
그 2명의 학생이 판문점을 통해 돌아오는
시점에 맞춰, 판문점으로 행진을 하기 위해..
전국의 한총련 소속 학생들,
2만 명 정도가 연세대에 집결했는데..
김영삼 정부는, 이 집회를 원천 봉쇄하기 위해!!
서울· 경기 지역의 전경들을 총동원해서,
연세대를 완전 포위했던 것이다.
이듬해에 있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권 재창출을 노리던 김영삼 정부는..
연세대 노수석 학생이 시위 도중,
경찰에게 구타를 당해 숨지는 사건과..
IMF 사태로 치달아가던 경제 악화 등으로,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던 중..
난국을 타개하고, 국정 장악력을 유지하기 위해-
이미 6년간이나 진행되어 왔던,
"범민족대회"를 갑자기 강경 진압 하면서..
<한총련> 자체를 “친북, 이적 단체” 로 규정하고,
와해시키기 위한 “작전을 개시” 했던 것이었다.
이때, 연세대에 진입하지 못한 학생들은,
한양대, 홍익대, 동국대 등을 거점으로 삼아..
연세대에 갇힌 학생들을 구출하기 위해,
연세대 주변 지역에서, 사수대를 만들어-
전경들과 산발적인 싸움을 벌였는데..
김영삼 정부는 백골단을 투입해서,
사수대 학생들을 연행하는 한편..
연세대에 대한 고립 작전도 강화시켜 나갔다.
졸지에,
연세대 안에 갇혀버린 2만 여명의 학생들은..
대부분 이과대와 종합관에 갇혀서,
5일 동안 농성을 하며 버텼는데..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계속해서,
갇힌 학생들의 안전 귀가를 요구했고..
시민 단체들은, 음식물과 약품 및 여성용품,
등의 교내 전달을 요구했으나..
정부와 경찰은 이를 거부하고,
헬리콥터를 동원해, 학생들이 머문 층의
창문으로 최루탄을 살포해 제압하는 한편..
고립된 학생들의 항복(?!)을 받아내기 위해,
전기, 수도, 식량 등을 "완전 차단" 하면서..
의료 단체의 방문도 "제지" 하기까지 했다.
<당시 연대 총학생회장의 증언>
“농성까지는 정말 생각지 못해 준비도 못했다.
그안에서 우리가 할수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으며,
해산하고 싶어도 경찰 봉쇄로 그럴 수도 없었다.”
결국, 이러한 일망타진 작전으로!
연세대 교내 시설은 크게 파손되었고..
집회와 농성을 벌이던,
학생들 1,700여명이 연행되었는데..
이는, 1986년의 건대 항쟁 당시에 검거된-
1,526명을 훌쩍 뛰어넘는 숫자 였다.
그리고 이 때, 대대적인 언론의 편파적인 보도와
일방적인 비판 & 비난의 여론 속에서..
내가 사랑했던 조직인 "진보학생연합"도,
강령에 '사회주의'라는.. 단지 그 표현 하나 때문에!
법원에서, "이적 단체" 라는 판결을 받게 되었고,
핵심 멤버들이 "구속" 되기도 했으며..
이 사건을 계기로,
대학 내 학생운동 세력이 급속히 쇠퇴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