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반

by 황만복

아무것도 아닌 나를 위해서

기다리는 시간마저도 설레시더니

당신은 내게 몇 번 입을 맞추시고는

냉장고 한편에 나를 미루셨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기다림 끝에서

다시 만날 순간을 기도했더니

마침내 당신은 코를 부여잡으시고는

냉동고 한구석으로 나를 치우셨습니다


온몸이 얼어붙고 딱딱해져

더 이상 나답지 않다는 것을

진작에 알았지만 난 그것마저도 좋았는지

쓸쓸한 시간들을 마치 별처럼 헤아렸습니다


비로소 당신은 그리웠던

그 따스한 손길로 나를 들어

잔뜩 찡그려진 코주름과 짧은 눈 맞춤으로

조금 더 먼 세계로 나를 떠나보냈습니다


두 손 한가득 나를 안았던 당신의 손이

어느새 찝찝하게 잡은 두 손가락으로 변해버리고

나의 체취마저 불편해한다는 것을 덤덤히 받아들였지만

나는 그 시간마저 좋았습니다


글쎄요 나는

다시 누군가의 입으로

다시 누군가의 배설로

그렇게 다시 누군가의 양분에서

긴 시간을 지나 어쩌면 다시 당신을 만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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