캥거루족과 청년실업문제, 해답은 없다

김선주 작가의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를 읽고

by 황만복


김선주.jpg 김선주,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 한겨레출판, 2010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

나의 기차는 지금 사십을 향해 달리고 있다. 빛나는 나의 20대는 어땠을까. 무엇을 할지, 어떻게 살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계획했던 것 같다. 그래서 뭐가 바뀌었냐고. 아니. 말 그대로 고민은 고민, 계획은 계획일 뿐이다. 수많은 생각들 중에서 실천으로 옮긴 것은 과연 얼마나 될까. 시간은 모두에게 소금처럼 소중하다는데, 나는 오히려 그 시간 위에서 태평하게 떠다니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청춘이라는 말로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 불안함과 위태로움의 낭떠러지로 떠밀려가고 있다. 전력을 다해 헤엄쳐도 모자랄 판에 나는 여전히 권태롭고 무기력하다. 나도 안다. 이런 짓을 반복하다 보면 소중한 나의 30대도 금세 흘러갈 것을. 그리고 40대, 50대도 이런 식으로 빠르게 지나서 결국 허무한 죽음에 닿고 말 것을.



너 걱정돼서 그래? 웃기시네

우리는 다양한 주위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듣는다. 과거 자신의 행실에 대해 무용담을 늘어놓는 사람. 주워들은 이야기를 자기 이야기처럼 하는 사람.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철면피처럼 하는 사람. 그중에서도 가장 최악은 습관처럼 상처 주는 말을 하는 사람이다.


"네가 뭘 알아", "네 주제에", "너는 나이가 있으니까". 어떤 말들은 하루 종일 기분을 불쾌하게, 또 어떤 말은 미래를 불안하게 만든다. 그리고는 어디에서 미리 의논하고 왔는지 항상 마무리 말이 같다. "너 걱정돼서 그래". 걱정은 개뿔. 제발 네 걱정이나 해.


누군가의 조언이 분명 도움이 될 때가 있다. 어찌 됐건 그들이 몸소 경험하고 터득한 노하우니까. 인생이란 어려운 길에 조언은 때때로 내비게이션 같다. 그러나 자신의 인생을 누군가의 조언대로 사는 것이 정말 바람직한 일일까.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과연 자립하는데 도움이 될까.


김선주 작가의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에서는 서른이 넘어서 누군가의 도움 없이 살 수 없다면, 그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꾸짖는다. 그러면서 경제적 독립과 정신적 독립을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도 이 말에 동의한다.


최근 우리 사회는 캥거루족(자립할 나이임에도 경제적으로 부모에게 의존하는 청년)과 자라족(위기가 생길 때마다 부모 뒤로 숨는 청년)이 늘고 있다. 물론 캥거루족과 자라족의 책임을 청년들에게만 물을 수는 없다. 다만, 그들도 아름다운 인생을 스스로 계획할 의무가 있고, 부모 또한 평생 양육이라는 책임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취업도 힘든데 독립은 어떻게 해

청년들의 비경제활동은 청년실업률을 높이고, 자라족과 캥거루족을 늘리는데 한몫하고 있다. 일을 하고 싶어도 취업하기 어렵다. 좋은 대학도 나왔고, 힘들게 자격증도 땄는데 내가 원하는 회사는 사람을 구하지 않는다. 빚까지 내면서 자신에게 투자했는데 연봉도 높고, 근무환경도 좋고, 비전도 있는 일, 그리고 남부끄럽지 않게 제법 멋진 일은 나를 바라봐주지 않는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안타깝게도 현실이 그렇다. 이제 대학교는 엘리트 코스가 아니라 개나 소나 갈 수 있는 흔한 과정이 되어버렸다. 또, 졸업 후에는 취업을 위해 다시 처음부터 공부해야 하는 기이한 구조가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좋은 대학을 나오고, 취업 스펙도 잘 쌓아서, 비로소 원하던 곳에 취업을 하면 완벽한 독립을 이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것이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인생의 즐거움일까.


아니. 처음부터 잘못되었던 것 같다. 왜 대학을 나와야 할까. 정말 대학교를 졸업하지 않으면 취업이 안될까. 죽기살기로 쌓은 취업스펙은 업무에 어떤 도움이 될까. 그리고 정말 그 회사가 나에게 그렇게 중요한 곳일까. 그 회사에 취업하는 것이 내게 주어진 숙명일까. 나의 가치보다 회사를 위해 일하는 것이 더 중요한 가치일까.


언제부터일까. 사회구조가 붕괴하고 있다. 어린 학생들이 학업 때문에 비관적인 선택을 하고있다. 청년실업률은 나날이 높아지는데 중소기업은 늘 청년 고용난에 시달리고 있다. 아이러니하다. 어렸을 때 꿈을 키우던 어린아이들이 청년이 되어서 히키코모리나 캥거루족이 되고있다. 씨앗과 새싹이 썩고 있으나 줄기와 나뭇가지는 여전히 나무 탓을 하며 서로 싸우고 있다.


회사를 만들려면 사무실이 필요하다. 그래서 누군가는 사무실을 만들어야 하고, 누군가는 그 사무실을 짓기 위한 자재를 만들어야 한다. 세상의 모든 직업들의 귀천은 누가 정하고 누가 만들었는가. 구석에 몰려 기어이 괴로운 선택을 했던 그 어린 학생은 아닐 것이다. 애초부터 멋진 직업이라는 것이 정말 있을까. 모두가 정당한 노동을 하고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데 어떻게 어떤 직업은 멋있고, 어떤 직업은 하찮단 말인가.



캥거루족.jpg 청년실업 문제가 캥거루족 양산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청년실업 문제, 결코 해결할 수 없다

예전에 출장을 다녔을 때, 어느 공장의 반장님이 해주신 말씀이 떠오른다. "요즘 공장에 사람이 너무 없다. 그래서 제대로 돌아가지 못한다. 몇 년만 고생하면 진급도 빠르고, 웬만한 중소기업 사무직보다 월급을 더 많이 받는데, 한국청년들이 지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다. 그런데 그랬더니 한국 청년들의 일자리를 왜 뺏냐며 욕을 한다. 나도 한국청년을 고용하고 싶다. 그러나 그들은 정작 3D업종이라고, 넥타이 매고 에어컨 바람 잘 나오는 곳에서 일하고 싶어 한다. 그러면서 일거리가 없다고 한탄한다. 정말 넥타이를 매고 돈을 벌면 멋진 일이고, 공장에서 연장 들고 돈을 벌면 초라한 일인가."


이대로는 청년실업 문제가 결코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정부입장에서는 어중간하게 대학도 나오고, 어중간하게 스펙도 쌓았겠지만, 혹시 비정규직으로 취업하면 안 될까?라고 대놓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년 기본소득, 청년 주택정책, 청년 일자리 정책 등 다양한 지원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청년을 위한 주택을 지어 저렴한 임대료로 제공하면 청년들이 주거독립을 할거니까. 청년들에게 면접수당이나 근로 장려금을 지원하면 집 근처에 있는 공장, 편의점 등 비정규직이나 단시간 근로라도 당장은 할거니까. 과정이 어떻든 정부는 자기들 덕분에 캥거루족과 청년실업률이 감소했다고 말할 수 있으니까.


이렇게 하면 정말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글쎄. 투입한 예산에 비해 단기적인 효과만 있을 수 있다. 또, 이 정책의 허점을 악용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주 나쁜 방법은 아니다. 청년들의 사회경험을 쌓는 부분에 있어 기발하고 효율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려면 구조적으로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


물가와 임금이 상승하면, 기업입장에서는 인력채용에 있어서 많은 부담을 짊어져야 하고, 이 때문에 기업에서는 능력 많고 경력 많은 신입(?)을 채용하려고 한다. 또 능력 있는 신입사원들을 붙잡기 위해서 많은 임금을 지불해야 하고, 올린 임금만큼 물가가 오른다. 지금까지 이러한 악순환들이 결국 청년실업 문제의 원인은 아니었을까.




우리다 행복했으면 좋겠어. 쨍하고 햇볕 난 것처럼 구겨진 것 하나 없이.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나의 인생은 누구보다 이미 아름답다

김선주 작가의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에서는 자신이 행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당당함을 주장한다. 직업이든, 회사든 결국 가치가 중요하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얼마나 스스로 당당하게 생각하는지 중요하다.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정답이다. 나의 인생은 누구의 인생보다 이미 아름답다. 다른 사람들이 옳다고 해서 모두 옳은 것도, 틀리다고 해서 모두 틀린 것도 아니다.


우리는 많은 것들로부터 억압받고 있다. 특히 알 수 없는 빈부격차의 끈과 인맥이 실재한다. 그 결과 우리는 서로 다른 스타트포인트에서 달려야 하는 운명에 마주하게 된 것인지 모른다. 그래서 살기 위해 누군가를 제쳐야 하고, 버티기 위해 발버둥 쳐야 한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이 책에서 담고 있는 메시지처럼 더 당당해야 한다.


인생은 결코 남에게 좋아 보이도록 포장하는 일이 아니다. 또, 보기 좋게 빚어내는 일도 아니다. 자신의 인생을 누구보다 스스로 아름답게 여겨야 한다. 누구보다 당당하게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 우리는 인생을 즐기면서 살 권리가 있다. 인생이 즐겁지 않으면 모든 것이 즐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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