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김훈 작가의 <공무도하>를 읽고

by 황만복
공무도하가.jpg 김훈, <공무도하(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문학동네, 2009






공무도하

세상은 아름답다. 반드시 피어날 것들은 썩은 땅 위에서도 결국 피어난다. 뇌물을 주거나 받든, 때리거나 죽이든, 강탈하거나 강탈당하든. 이렇게 깨끗하지 못한 곳에서도 매일 아침,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그러니까 괜찮다. 이것은 우리 이야기가 아니라 누군가의 이야기니까. 이 비겁한 일과 우리는 아무 관련도 없으니까. 그러나 김훈 작가의 <공무도하(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읽고, 비로소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결코 이 비겁한 일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지금 건너지 말아야 할 강을 건넜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비겁함

사실 우리는 많은 사건과 관련이 있다. 직접적으로 사건과 연관되어 있지 않더라도, 간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브라질에 사는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일으킨다(나비효과)는데, 위대한 당신은 세상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겠는가.


그러나 나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세상에 벌어지는 일들의 책임을 회피했다. 비겁함이란 이런 것이다. 더러운 강으로 떠나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라고 소리치며 말려야 하는데, 세상이 결코 깨끗하지 않음을 알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니, 외면했다. 단지 그 책임과 용기를 늘 다른 사람에게 미뤘다.



비겁한 사람들의 세상

김훈 작가의 공무도하(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에 등장하는 문정수는 비겁한 사람이다. 그는 신문기자다. 박옥출이 어떤 부패한 일들을 저지르는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기사로 쓰지 않는다. 오로지 백화점 화재 사건만 주야장천 기사로 쓸 뿐이다.


그가 자신의 직업에 소명의식을 갖고 있었다면 달라졌을까. 적어도 비겁하지 않았을 것이다. 은폐되었거나 은폐될 수도 있는 문제를 사회와 대중들에게 고발했을 것이다. 사회는 소명의식이 있는 소수의 사람들이 모여 올바르게 선도한다. 물론 문정수만 탓할 수는 없다. 애초에 박옥출 같은 사람들이 세상에 없었다면, 또, 문정수 같은 사람들이 가난하지만 않았다면.



아무도 분노하지 않는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생존에 대한 갈망이 있다. 특히 인간이라면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함부로 윤리를 저버리거나 양심을 팔지 않아야 한다. 욕망보다 소중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의를 저버린 행동에 대해 우리는 비인간적인 행위라고 한다. 그러나 김훈의 공무도하(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에서는 애석하게도 인간성을 가진 인물을 찾기 힘들다.


박옥출은 빼돌린 보석으로 콩팥을 사고, 누군가는 그 대가로 콩팥을 판다. 모든 인물들이 비겁하다. 그러나 인간성이 해체되는 지옥 같은 이곳에서 그 아무도 분노하지 않는다. 불법적으로 장기를 사거나 팔거나 아무도 관심이 없다. 대부분 인물들이 노목희처럼 그저 현재를 순응하며 살아갈 뿐이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jpg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 님은 끝내 물을 건너시네 / 물에 빠져 돌아가시니 / 가신 님을 어찌할꼬 - 공무도하가



전직 기자출신 작가의 사회비판

이후 박옥출과 그와 거래한 사내는 어떻게 되었을까. 또, 장기를 팔고 받은 돈은 어디로 흘러갔을까. 아마도 그 돈은 또다시 누군가에게 가고, 그 누군가를 찾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갔을 것이다. 그렇게 문정수와 노목희를 포함한 모든 인물들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서로 연결되어 있다.


현실도 마찬가지다. 매일 밤 뉴스에서는 부패한 정치인과 유명인이 등장한다. 처음에는 안주거리처럼 실컷 씹고 뜯다가 금세 흥미를 잃고 채널을 돌린다. 나랑 관련 없는 일이니까. 그러나 우리는 문정수, 노목희처럼 비겁하게 방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현재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지만, 한때 기자출신이었던 김훈 작가의 공무도하(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소설이 아니라, 사회비판하는 칼럼 같다고 느껴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은 아닐까.



떠나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지금 우리가 건너고 있는 강은 더럽다. 그럼에도 누가 더 깊게 빠져있느냐, 얕게 빠져있느냐 도토리 키재기만 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멀리서 보면 모두 같은 강에 빠져있는 것처럼 보인다. 강이 더러운 것을 알면서도 나 하나쯤이야 라는 마음으로 그 책임과 용기를 서로에게 미루고 있다.


현재 사회는 그 강을 건너지 말라며 소리치는 사람을 미친 취급할 뿐이다. 하지만 모두 그 강에서 나와야 한다. 이 비겁한 강이 바다가 되기 전에. 모두 물귀신이 되기 전에. 강밖에서 나오라고 소리쳤던 사람처럼 강에서 나오라며 미친 듯이 소리쳐야 한다. 그리고 모두 강에서 나올 때쯤 진짜 미친 것이 어떤 것인지 비로소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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