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흥욱 교수의 <정도전의 악장에 대한 일고찰>을 읽고
조선전기 시가문학은 악장, 경기체가, 가사, 시조로 이루어져 있다. 시가문학은 문학, 시, 음악적 성격을 모두 아우르는 장르다. 악장에서 경기체가로, 경기체가에서 가사로 갈수록 음악적 성격은 줄고, 반대로 문학적 성격은 확대된다.
조선전기 신진사대부 문학은 공적인 문학과 사적인 문학으로 나뉜다. 공적인 문학은 왕조 사업에 중요한 구실을 하고, 사적인 문학은 자기 생활을 표현하고 즐기는 데 사용되었다. 이 중 악장은 나라의 공식적인 행사에서 주로 사용되던 노래였다.
악장은 춤, 노래와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당대 상류층들이 즐기던 풍류의 형태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사실 대부분 정치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특히 조선전기 악장은 조선건국의 정당성을 위해 만들어져, 당시 시대적 이념과 관점이 잘 드러나 있다.
그럼에도 사학연구가 중 일부는 조선전기 악장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당대 유행한 시조나 가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연구의 의의가 적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학사적으로 의의가 덜하더라도, 악장은 당대 존재했던 문학장르 중 하나기 때문에 반드시 연구해야 한다.
조흥욱 교수는 <정도전의 악장에 대한 일고찰> 논문을 통해 삼봉 정도전의 악장에 대해 연구하였다. 정도전은 조선전기 문물을 정비하고, 조선 왕조의 기틀을 마련하는 등 조선건국의 실질적인 주역으로, 다양한 업적들을 펼쳤다. 그리고 그의 업적 중에는 악장 창작도 포함되어 있었다.
조선건국 후 태조 이성계와 관리들은 정치에 필요한 여러 관제를 구성하였다. 그중에는 예악을 관장하는 부서도 있었다. 삼봉 정도전은 예악의 정치적인 기능에 대해 관심이 많았는데, 그는 조선건국의 이념과 제도를 갖추기 위해 예악을 이용하였다.
정도전은 태조 이성계의 무덕을 칭송하기 위해 무덕곡을 만들었다. 무덕곡이란 <납씨곡>, <궁수분>, <정통방곡>을 말한다. 납씨가는 이성계가 원나라 잔당 납흡출을 물리친 공적을 찬양하는 노래고, 궁수분은 이성계가 왜구를 물리친 공적을 서술한 노래다. 또한, 정통방곡은 위화도회군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노래다. 그 밖에도 삼봉은 <문덕곡>, <몽금척>, <수보록>도 함께 지었는데, 문덕곡은 태조 이성계가 장차 베풀어야 할 덕치를 다룬 내용이고, 몽금척과 수보록은 이성계가 왕 위에 오를 조짐이 이미 보였다는 내용이다.
이렇듯 삼봉 정도전은 태조의 공적을 찬양하고, 조선건국을 정당화하는 데 악장을 사용하였다. 이후 정도전은 태종 이방원에게 제거되었지만, 악장은 성종 때까지 이어졌다. 조선왕조 위업을 찬양한 악장은 정도전만 지은 것은 아니었다. 권근, 하륜, 변계량 등이 지은 악장도 있었다. 하지만 악장은 음악이 필수조건인데, 이들이 지은 악장은 대부분 장편이라 노래로 부르기에 쉽지 않고, 이미 있는 악곡에 가사를 짜 맞추는 방식이었다. 따라서 삼봉의 악장처럼 독자적인 형식을 갖췄다고 보기 어렵다.
삼봉 정도전은 전문적인 악사가 아님에도 어떻게 악장을 만들 수 있었을까. 조흥욱 교수의 <정도전의 악장에 대한 일고찰> 논문에서는 정도전이 고려 관리로 중용된 이유가 악장에 능통했으며, 따라서 직접 악장을 만드는 것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통치이념으로 유교를 선택하는 전제왕조들은 나라의 근간으로 예악을 중시한다. 예악에서의 예는 성실함을 드러내고 거짓됨을 버리는 것이고, 악은 마음의 근본을 궁구하여 변화를 알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예악에는 유교적 원리가 포함되어 있다. 삼봉이 예악을 이용한 것은 이러한 유교적 원리를 조선의 통치이념으로 적용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삼봉 정도전은 고려 멸망의 이유를 정치의 퇴폐, 법도의 붕괴, 예악의 부진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정치, 법도, 예약으로 나누어 관리하기를 주장했다. 정도전은 제도적인 정비뿐만 아니라, 악장 창작을 통해 태조 이성계의 왕업을 찬양하고, 조선건국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등 다양한 업적을 쌓았다. 그리고 그의 악장은 이후 악장창작의 모범적 선례가 되기도 하였다.
정도전의 악장은 당대 정치적인 상황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처럼 조선전기 악장이 문학사적 의의가 결코 적다고 볼 수 없다. 오히려 조선전기 악장의 연구는 조선건국 당시 정치적인 이념과 사상은 물론, 태풍처럼 휘몰아치며 변화했던 당시의 시대상을 밝히는 구심점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악장의 발생과 몰락, 그리고 새로운 음악의 발생이 시대적으로 무엇을 의의한지 앞으로도 연구할 필요가 있다.
조흥욱 교수는 사람들이 삼봉 정도전의 악장에 관심 갖지 않는 것에 대해 아쉬워한다. 시조나 가사와 달리 악장은 대중에게 크게 확산되지 못했고, 문학보다 음악 비중이 높은 작품이었기 때문에 전승되기 쉽지 않았다. 또한 학자들 사이에서 악장이 음악이다, 문학이다 의견이 분분한 만큼 아직까지도 악장 연구가 가야 할 길은 멀다고 볼 수 있다.
현재까지 모든 악장들이 발견된 것은 아니다. 아직 발견되지 못한 악장들도 많고, 당대 지배층뿐만 아니라 민간에 전승된 악장들이 남아있을 수도 있다. 또한 악장의 발생이 예악 사상이 아닌 다른 목적과 형태로 발생되었을 수도 있다. 조선전기 악장이 통치이념으로 자리 잡기 위해, 또는 예악 사상의 보급을 위해 발생한 것이라는 주장 외에도 새로운 시각에서의 연구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