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거일 작가의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를 읽고
복거일 작가는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를 통해 민족주의자를 비판하고 영어공용화에 대해 찬성한다. 민족주의자가 사라져야 나라가 발전하고, 국제시장에서 권리를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내 생각은 다르다. 민족주의자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영어공용화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정말 대한민국은 한국어 때문에 발전하지 못할까. 한국어 때문에 국제사회에 권리를 주장하지 못할까. 글쎄. 현재 대한민국은 수십 개의 건물과 아파트가 줄을 지어 세워지고 있다. 또한 세계 각지에 다양한 상품을 수출하고 있고, 아직 부족하지만 나름대로 국제사회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한국어를 영어로 바꾸자고 주장하는 걸까.
대한민국이라는 바다 위에 다양한 언어들이 살고 있었다. 글을 읽지 못하는 백성을 위해 1443년, 세종대왕께서 만드신 한국어(한글)는 물론, 영어, 일본어, 중국어 등 다른 바다에서 건너온 다양한 외래어들이 우리나라에서 조화롭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일까.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한국어의 수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었다.
다양한 이유가 있었지만 외래어가 한국어를 잡아먹는데 한몫했다. 특히 그중에서도 영어는 가장 먹성이 좋았다. 영어는 치어건, 성어건 상관없이 보이는 대로 한국어를 먹어치웠다. 배워야 하는, 배울 수밖에 없는 언어라고 많은 사람들이 영어의 몸집을 키워주었기 때문이었다.
불과 몇 년 전, 역사교과서의 한국어를 영어로 바꿀 계획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앞으로 학생들이 우리나라 역사를 영어로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과 역사를 외국에 잘 알릴 수 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음, 글쎄. 다른 나라 역사를 알기 위해 그 나라의 교과서까지 살펴보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그리고 영어를 못하는 학생들은 앞으로 역사를 어떻게 배워야 할까.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한국어를 영어로 바꾸자고 주장한다. 영어보다 한국어가 배우는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든다는 것이다. 또한 국가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영어공용화는 필수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정말 대한민국 국가경쟁력은 형편없는 수준일까. 세계 GDP만 보더라도 대한민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굳이 우리의 가치관과 정신이 담겨있는 한국어를 폄하해야 할까. 그만큼 영어가 중요한가.
영어는 전 세계 약 15억 명이 사용하는 언어로 실질적 세계공용어다. 그렇다면 영여공용화가 국제 위상을 높이는데 도움이 될까. 70년 넘게 정전 중인 나라, 수출 의존도가 높은 나라, 삼면이 바다인 나라. 사실 대한민국은 국제적으로 열악한 환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준 높은 기술력과 이색적인 문화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과연 우리의 것을 사랑하지 않고서 지금까지 기술력과 문화를 지켜낼 수 있었을까.
예로부터 글자는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그러나 평민들은 배울 시간 없이 밤낮으로 일해야 했다. 게으른 것이 아니라 그렇지 않으면 수탈로부터 버틸 수 없었다. 이를 가엾게 여긴 세종대왕은 신하들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글자를 만들었다. 바로 한글이다. 돈을 벌게 하고 경쟁력을 높이는 글자는 따로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담긴 글자, 한 나라를 대표하는 언어는 전 세계에서 얼마나 될까.
어떻게 영어는 세계공용어가 되었을까. 일부 사람들은 영어권 국가가 국제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많은 국가들이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영어공용화를 하고 있다고 덧붙인다. 그렇다면 반대로,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서 힘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많은 나라들이 한글공용화를 하려고 노력했을까. 영어권 국가들이 영어를 한국어로 바꾸자고 주장했을까.
예전에 어른들은 중국어, 일본어 등 아시아 강국의 언어를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지금은 영어를 배우라고 한다. 또한, 한창 여러 사설에서는 급부상하고 있는 인도를 따라 인도어를 공용화로 추진하자고 말했다. 그렇다면 한국어로 국가경쟁력을 키우는 방법은 결단코 없는 걸까.
최근 세계는 대한민국에 주목하고 있다. K팝과 영화, 스포츠, 드라마, 음식 등 K문화에 관심을 갖는 외국인들이 늘어났다. 예술계에서는 한국시장을 잡기 위해 홍보전략을 별도로 준비할 만큼 한국 문화의 위상이 높아졌다. 이것이 우리나라가 영어를 잘하기 때문에 이뤄진 것일까.
한글은 세계 문자역사상 가장 진보된 글자
세계적인 과학잡지, <디스커버> 1994 7월호 특집기사
아니다. 세계 각지에 우리나라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그들의 피와 땀 없이 지금의 K트렌드 시대는 열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뉴욕타임스퀘어에서, UN연설장에서 한국어로 세계인을 주목시키고 있다. 왜 외국에서는 한글과 한국의 것을 배우려고 하는데, 우리는 왜 한국어를 영어로 바꾸려고 할까. 왜 아직도 우리의 것을 버리고 바꾸려고 할까. 익숙한 것의 가치가 그 무엇보다 소중한 것을 대체 언제쯤 깨달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