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누군가 물어봤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나 자신이 되어 사는 삶."
나는 왜 내겐 엄마, 아내, 며느리로 살아야 하는 가정 보다 작업실이 필요하다고
손님 초대와 파티 뒤치다꺼리를 하는데 내 시간을 쓰지 않겠다고
결혼보단 계약연애를 하겠다고
엄마가 골라준 고급 브랜드의 옷보다 니가 고르는 옷은 왜 모두 거지같고 싸구려냐고 비웃음을 당하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옷을 사겠다고
능력 있는 남자지만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괜찮은지 물으면 안 괜찮다고
하지 않겠다고
싫다고
그건 기필코 갖겠다고 말할 용기가 없었을까.
그런 용기가 있었다면 내 인생은 달라졌을 것이다
그날이 몇 년, 몇 월 며칠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차 안이었고 남편이 어머님을 모시고 살자는 말을 꺼냈다.
그날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오랫동안 생각했다.
시어머님을 모시자는 말에 왜 내 마음이 이토록 새까맣게 타버리는 것인지
왜 이토록 불안하고 온몸이 뜨거워지는지.
왜 이리 울분이 치미는지
내 몸의 반응은 몇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을 만큼 불행했던 시집생활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다.
지금은 시어머니와 함께 살지 않지만 시간이 흐르고 내가 사는 환경이 바뀌었지만 함께 살던 때의 기억은 세포 곳곳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나는 마침내
이혼도 불사할 결심을 했고
시어머니와 함께 살지 않겠다고 말했다.
내 어투가 놀랄 정도로 단호했는지 남편이 놀랐다.
결혼생활 동안 나는 한 번도 고집을 피우지 않은 여자였다.
남편이 좋다면 좋고, 하지 말라면 하지 않았고, 가자면 가고, 하라면 싫어도 하는 여자였던 것이다.
남편도 내가 그런 여자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고 고백했다.
내가 시어머니와 함께 살수는 없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평생을 통해 지키고 싶은 것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것이 없었다면 단호해질 수 없었을 것이다.
극단적인 용기는 용기를 내고자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었다.
맹목적으로 내 생을 바치고 싶은 대상이 있을때 비로소 생기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맹목성이 지키려하는 것이 실패했을 경우, 죽음을 택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었기에
두려울 것도 없었다.
그때 내가 지키고 싶었던 것은 '작가로서의 나'였다.
"글 쓰려면 애들 다 재워놓고 써."
2살 3살짜리 아이를 키우던 시절, 남편이 한 말이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했다.
그땐 글보단 아이들이, 남편과의 화목이 중요했으니까.
아이들이 잠들면 새벽1시쯤. 그 시간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 아침 6시까지 글을 썼고
글쓰기를 마치면 남편의 도시락을 쌌다. 깨어난 아이들을 씻기고 입히고 먹이고 함께 놀아줬다.
오후 3시쯤 되면 아이들이 낮잠을 잘 때 같이 잤다.
아이들이 깨면 나도 일어났다. 그 시간이 내 취침시간이었다.
하루 종일 지친 몸이라 졸릴 법도 했지만
히터도 들어오지 않는 차가운 창고방의 문을 닫고 책상 앞에 앉으면 나는 깨어났다.
그 시간이야말로 24시간 중 유일하게 살아있는 시간이었다.
그때는 글 쓰는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생각했을 뿐 그 일에 일생을 바친다거나 글을 쓰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생각 따윈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심각한 어조로 6개월 동안 급료를 받을 수 없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때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던 때여서 저축 해놓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급기야 남편은 친구들과 어울려 카지노에서 카드빚을 지고 왔고
우리는 심한 부부싸움을 했다.
아이들은 겁에 질렸고 남편은 넋을 잃었으며 나는 정말 죽고 싶었다.
전업주부였던 나는 이제 아이도 키우고 밖으로 나가 일도 해야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었다.
나는 다음날부터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돌아다녔다. 하지만 일자리도 쉽게 구해지지 않았다.
아이를 데리러 갔다가
멍하니 앉아 있던 나는 한숨 끝에 무심코 중얼 거렸다.
“이젠 글도 못 쓰겠구나.”
바로 그 순간이었다. 방금 내가 내뱉은 말에 코끝이 찡해지더니 눈물이 핑 돌았다.
다음 순간 나는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때서야 내가 글 쓰는 일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었는지 깨달았던 것이다.
“어머님과 함께 살 수는 없어.”
내 시어머니는 매일 24시간을 집안을 쓸고 닦고 아들의 옷을 다림질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분이시고,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빈둥거릴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글을 쓰려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필요했다.
드러누워서 눈을 감고 온갖 상상의 나례를 펼 시간
영화, 드라마, 소설에 빠져 공상과 망상의 시간을 오갈 시간
자료를 찾느라 온라인을 헤맬 시간
남들 눈에는 빈둥거리는 것으로 밖엔 보이지 않는 시간.
“당신 출근하고 나면 하루 종일 어머님은 나랑만 있을 텐데 어머님은 절대로 그 시간들을 이해하지 못하실 거야. 내가 빈둥거리는 모습이 눈엣가시겠지. 나는 숨통이 막힐 거고. 난 하루 24시간 집안을 쓸고 닦고 빨래에 다림질을 하는 게 내 글쓰기를 포기해야할 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나도 이젠 나이가 들어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어. 남은 시간은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는데 바치고 싶어.”
라고 남편에게 담담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이기적일수도 있지만 나는 나를 위한 이기심을 부리는 내 자신이 뿌듯했다.
그날이 처음으로 내 자신이 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