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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좀슈 Nov 23. 2022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르헨티나전 월드컵 승리가 반가운 이유

우리 형 메시의 월드컵 우승도 보고 싶지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월드컵 본선에서 우승 후보로 거론되는 메시의 아르헨티나를 2:1로 꺾고 이변을 일으켰다. 축구공은 둥글고 월드컵이라는 단기 토너먼트에서는 어떤 이변도 일어날 수 있다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실제로 그 이변이 일어나면 마음은 흥분 상태에 사로잡혀 차분한 상태를 유지하기가 힘들다.


우리나라 국가대표팀은 물론이고 축구를 좋아해서 영국으로 워킹 홀리데이를 떠났던 사람으로서 잉글랜드를 응원하고 있기도 하지만, 상대적 약팀으로 분류되는 아시아 팀을 응원하는 마음도 있다. 일본, 이란 등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항상 만나는 숙적들이 월드컵에서 패배를 당하면 물론 한 켠으론 기분이 좋다. 일본은 말이 필요 없는 우리나라의 영원한 라이벌이며 이란 또한 서로 물고 뜯은 역사가 깊은 상대다. 하지만 같은 아시아 국가로서 본선에 올라간 상황에서는 정말 조금이나마 선전을 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조별리그에서 너무 대패를 당하지 말고 선전 후 탈락하거나 16강 정도랄까.



상대적으로 사우디 아라비아는 이란이나 일본보다는 우리나라와 크게 앙숙이나 라이벌 관계는 아니라는 점에서 이번 승리가 더 반갑다. 국왕 중심제인 사우디 아라비아는 이미 이번 승리로 하루 공휴일이 선포되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민주주의보다 국왕 중심제가 부럽다고는 할 수 없지만, 2002 월드컵 4강 당시 우리나라의 분위기를 생각해 보면 충분히 일어날 수 있을 일이라고도 생각된다.


아르헨티나에 악감정이 있는 것도 아니다. 리오넬 메시의 마지막 월드컵이라 더 그렇다. 2006년부터 벌써 다섯 번째로 월드컵을 출전하는 메시는 대표팀을 은퇴했다가 은퇴를 번복하고 다시 월드컵행 비행기를 탔다. 메시를 필두로 아르헨티나 대표팀은 2021년 브라질을 꺾고 코파 아메리카를 우승하며 우승 DNA까지 팀에 입힌 상태다. 코파 아메리카, 챔피언스리그, 라리가 등 굵직한 대회를 모두 우승한 메시에게 남은 우승컵은 월드컵 트로피 단 하나뿐이다.


2016년 상암 월드컵 경기장 노쇼두 사건으로 인해 전국민적으로 '우리 형' 호칭을 갖고 있던 호날두는 그 이미지가 최악으로 떨어졌다. 호날두와 라이벌 관계에 위치하던 리오넬 메시가 오히려 덕을 보며 이제 '우리 형'은 메시가 되었다. 2022년 브라질 대표팀이 내한하며 좋은 팬서비스를 보여준 네이마르까지 호감형이 되었으니 이번 월드컵 우승을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를 응원하는 사람이 주변에도 많아졌다. 심지어 호날두는 소속팀에서 감독과의 불화까지 겹치며 이미지가 더 나락으로 향해 가고 있다. 따끈따끈한 오늘 아침 소식으로는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계약을 해지했다고 한다.


이렇게 우리 형 호칭을 획득한 메시의 2022 카타르 월드컵 첫 경기를 모두 응원하며 보고 있었을 텐데 우승후보로 분류되는 아르헨티나의 첫 패배라니 정말 놀라운 경기였다. 아무리 아시아 국가를 응원하는 마음이 있다고 하더라도 메시의 월드컵 우승을 보고 싶은 마음보다는 작았을 수밖에 없다. 오래전이긴 하지만 사우디 아라비아는 예전 독일에게 8대 0으로 졌던 기억이 남아있는 16강 문턱은 가본 적도 없는 정말 최약체의 팀이었다.



뭔가 기분이 싸했던  전반 2분에 메시의  슈팅이 사우디 아라비아 골키퍼의 슈퍼 세이브에 막혔을 때였을까. 이후 메시의 PK 골로 앞서갈 때만 해도, 아르헨티나 선수들이 계속 골망을 흔들었지만 오프사이드로 취소가  때도 경기가 생각보다 지루하게 펼쳐지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사우디 아라비아는 탄탄했다. 후반전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점골을 가져가더니 멋있는 감아 차기로  역전골까지 기록했다. 다급한 아르헨티나는 계속 몰아붙였지만 오히려 아르헨티나의 공격 작업이 너무 단순하고 세부 전술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칼로니 감독은 메시를 중심으로 전술을  짠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너무 롱볼에 의존한다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경기였다. 선수들은 계속해서 로빙 패스로 페널티 박스 안과 파이널 써드까지 공을 억지로 보내려고 했고 이는 사우디 아라비아의 수비진과 골키퍼에 번번이 막혔다. 생각해 보면 아르헨티나의  골도 필드 골이 아닌 PK 골이었다.


여전히 아르헨티나의 우승을 보고 싶은 마음은 그대로이다. C조의 나머지 두 팀인 폴란드와 멕시코가 비기며 그나마 아르헨티나는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 메시는 앞으로 이 두 경기를 모두 잡아야 16강행을 바라볼 수 있다. 1승 1무 1패로도 올라갈 확률은 있지만 떨어질 확률도 있다. 우리나라가 2010년에는 16강에 갔었고 2006년에는 떨어졌던 경험처럼 1승 1무 1패는 그다지 메시로서는 바라는 결과가 아닐 것이다. 무조건 남은 두 경기를 모두 잡아야 하지만 상대가 만만치 않다. 레반도프스키라는 최고의 스트라이커가 버티고 있는 폴란드와 월드컵 16강 단골손님인 멕시코는 사우디 아라비아처럼 상대적 약체로 분류되던 팀들은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사우디 아라비아가 아시아 국가팀으로서 선전을 보여준 데에도 기쁜 마음이 있다. 개최국 카타르는 무기력하게 에콰도르에게 패하고 이란이 잉글랜드에게 대패를 당하며 아시아 팀은 약체라는 분위기가 흘러가고 있었다. 심지어 개최국이 월드컵 사상 첫 경기부터 패배한 기록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카타르는 그 기록을 깨 버린 상황이었다. 이제 오늘 일본은 죽음의 조에서 독일과 첫 경기를 하고 우리나라는 우루과이를 다음날 상대한다. 이미 아르헨티나가 이변의 희생양이 된 상황에서 다른 강팀들은 더욱 방심을 경계하게 되었다. 우루과이 감독은 이미 16강이나 8강 등 예상 성적을 묻는 리포터의 질문에 '오직 한국전만 생각한다'며 방심을 경계하고 있었다.


리오넬 메시의 라스트 댄스를 힘들게 만든 사우디아라비아의 반가운 반란. 어쩌면 그의 마지막 월드컵에 닥친 시련을 더 멋지게 이겨낼 수 있게 만들어 주는 페이스 메이커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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