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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슬쌤 Nov 24. 2020

공간이 주는 힘.

Feat.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살면서 이사를 나처럼 많이 다닌 사람도 없을 것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짧다면 짧을 수 있는 11년 동안의 한국 생활. 그 안에 있던 약 4년간의 짧은 학생으로서의 생활 가운데 전학을 7-8번 정도 다녔었다. (20년도 더 된 일이라 사실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더 다녔으면 더 다녔지, 덜 다니진 않았다.) 그리고 엘살바도르로, 미국으로, 10년도 넘은 시간이 흘러 다시 한국으로. 부산으로. 경기도로. 


아마 나는 태생이 "이사 많이 다닐" 태생이었나 보다.


워낙 어릴 적부터 이사를 많이 다녀서인지, 새로운 환경을 맞이하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을 넘어 이제는 즐긴다. 아직 내가 살아보지 못한 곳이 더 많다는 것에 위안을 삼으며, 다음 목적지는 어디일까 상상해보기도 한다. 이처럼 집이라는 공간은 나에게 주거지 그 이상이다. 일을 마치고 내 몸을 뉘일 수 있는 공간, 밥을 먹고 볼일을 보는 공간,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는 공간, 내가 갖고 싶은 것을 사서 쟁여 놓을 수 있는 공간 그 이상이라는 뜻이다. 코로나가 터지고 나서 나의 먹고사니즘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공간이 되기도 하였고, 나의 개인적인 사무실이 되기도 하였고, 새벽반인 내가 혼자서 맘대로 불을 켜놓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나만의 아지트 같은 곳이 바로 나의 집이다. 



이사를 많이 다녔지만, 정작 나의 집에 대해서는 깊게 탐닉해본 적은 없었다. 그때그때 살았던 곳이 나에게 "특별했다" 정도였지, 돌이켜볼 기회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오늘 읽은 책,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는 최근 5년간 내가 살았던 곳들 -- 모든 곳을 당장 기억해 낼 수는 없다. 30년이라는 시간을 거슬러서 기억을 해내야 하는 작업이 쉽지가 않기 때문이다 -- 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해 주었고,  나는 비로소 각각의 집들이 가진 개성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떤 집에서는 휴지처럼 일이 술술 잘 풀렸던 적도 있었고, 또 어떤 집은 생각만 하면 눈물이 주룩주룩 -- 예를 들면 우리 구름이를 보낸 곳이라던지 -- 흐른다. 이처럼 이 책은 내가 살았던 곳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였고, 나는 이런 삶을 살았지만, 작가는 작가만의 삶을 살았구나, 하며 사람 사는 인생사, 다 비슷비슷하다고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비슷함 속에 각자의 색깔과 시간이 고스란히 녹아들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에세이를 잘 안 읽는 나지만, 공간에 관심이 많고,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의미를 상상 이상으로 크게 담고 있기에,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는 밑줄을 그어가며, 인덱스를 붙여가며 책을 읽었다.

 

그중 나에게 가장 와 닿았던 부분들, 그리고 자연스레 겹쳐졌던 나의 삶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1) 다크 헤리티지 

나는 '집'하면 늘 떠오르는 감정이 있다. 바로 따뜻함이다. 추위를 유독 많이 타는 스타일이어서, 밖에서 벌벌 떨다가 집에 들어오면 그렇게 따뜻할 수가 없다. 심지어 겨울에 내방은 난방이 24시간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방에 들어오면 얼었던 내 몸이 사르르 녹으면서 뼛속 깊이 따뜻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집을 생각하면 난 늘 밖에서 느끼기 어려운 따스함을 느끼는데, 이 책의 1부인 '다크 헤리티지'는 "다크"라는 단어가 알려주듯, 누군가에게는 집이 어두운 유산이 될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사실 시작부터 이 챕터를 읽고 깨달은 것이 많다. 내가 집을 따뜻하다고 느꼈다고 해서 남들도 그럴 거라는 착각이 내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집은 어려운 곳이 될 수도, 세상 그 어디보다 추운 곳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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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집 다운 집 


자기 돈과 시간을 써가면서 아등바등 집을 고치고 있단 말이야?


이 부분을 읽고 내가 책 밑에 이렇게 썼다. 


집에 대해 이런 글을 쓸 수 있다는 게 부럽다.
저런 말을 들었다는 게 성공 아닌가?


집과 공간에 대해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많이 하는 나지만, 한 번도 예쁘게 인테리어를 해볼 생각은 못해봤다. 꾸민다고 해봤자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의 포스터나 액자를 붙이거나, 내가 좋아하는 엽서들을 덕지덕지 붙이는 것 까지 해봤다. 작가가 얼마나 열심히 공들여서 인테리어를 했으면 저런 말을 들었을까? 나는 그 이 부분을 읽고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의 공간을 위해 돈과 시간을 들여가며 "자기만의 색"을 입히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기에 저런 말도 들을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나도 언젠가는 내 공간을 열심히 꾸미고 나만의 색을 입히는데 푹 빠져보고 싶다. 내 풀에 내가 지쳐 멈출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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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서재의 주인 

개인적으로 내가 가장 좋아했던 챕터였다. 밑줄 긋기와 인덱스를 가장 많이 붙인 부분이기도 하다. 


공간을 소유하는 것은 자리를 점유하는 일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하는 물음만큼이나 '나의 자리는 어디인가?' 하는
물음이 나에게는 중요했다. 

나도 자리 탓을 엄청 하는 편이다. 이 공간은 이래서 싫고, 저 공간은 저래서 싫고. 내가 나의 공간을 하나하나 만들어 가기까지 시간이 꽤나 걸리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우기 위해 맥시멀 리스트로 살고 있는 중이다. (언젠가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를 꿈꾸는 중이다.) 


우리 집이 이사를 다닐 때마다 가장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은 단연 나의 책들이다. 나는 감성이 뼛속 깊이 아날로그라, 요즘은 하나씩 다 갖고 있다는 그 흔한 이북 리더기가 없다. 이북을 읽으려고 생각조차 해본 적 없다. 난 종이가 좋고, 인덱스를 붙여가며, 책에 질문과 내 생각들을 마구마구 써가며 읽는 행위의 독서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사를 다닐 때마다, 이삿짐 옮겨주시는 분들께서 늘 하시는 말씀이, 한 사람 짐이 보통 사람 세 사람 짐 정도 되는 것 같다고 하신다. 내가 이렇게 까지 책들을 부득부득 들고 다니는 이유는, 나중에 나만의 서재를 가졌을 때 내 인생에서 나를 거쳐간 책들을 꽂아놓기 위함이다. 


서재에 대한 환상이 있어서 그런지 이 챕터가 가장 내게 와 닿았고, "나의 자리", "나의 서재"는 어땠으면 좋을지 기분 좋은 상상에 잠시 빠져있기도 했다. 


자기만의 공간을 소유한다는 것은 자기만의 시간을 확보한다는 의미다. 


이것이 내가 믿는 공간의 힘이다. 나만의 공간을 갖는다는 것은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뜻이고, 내가 비로소 나 일 수 있다는 뜻이다. 개인적으로 나에겐 "예슬 타임"이라는 시간이 있다. 이 시간은 내가 퇴근 후에 잠에 들 때까지, 커리어 관련된 일 외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시간인데, 그 시간이 밤 12시부터 새벽 3-4시까지 쭉 이어진다. 그 시간에 나는 낮에 바빠서 읽지 못한 책을 읽는다던지, 쓰고 싶은 글을 쓴다던지, 좋아하는 유튜버의 영상들을 한꺼번에 몰아본다던지, 넷플릭스를 본다던지 한다. 나는 내게 주어진 하루 24시간 중, "예슬 타임"이 제일 좋다. 나 혼자서, 나만의 공간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자유를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가장 나다운 내가 나오는 것 같아서 행복하다.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가제본으로 받은 책이라, 총 10부로 이루어진 책의 일부인 6부만 읽었지만, 하재영 작가님께서 집을 얼마나 친애하는지에 대해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책을 다 읽고 책을 덮었을 땐, 책이 나온다면 꼭 나머지 부분도 읽으리라 다짐하며 내 삶을 지탱해준 나의 공간들을 떠올렸다. 평소에도 공간, 특히 "나만의 공간"에 대한 관심이 많은지라, 책을 읽은 지금, 그 후유증 때문일지는 몰라도, 계속해서 나의 집, 나의 방, 나의 공간, 내가  나 다울 수 있는 공간에 대해서 생각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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