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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슬쌤 Feb 18. 2021

죽지 않는 마녀, 키르케.

Feat. 키르케 

여태까지 내가 읽어온 고전이나 책 속의 마녀들은 하나같이 죽임을 당했다. 종교적인 이유도 있었고, 단순히 그들이 기묘한 약을 만드는 <여자>여서 화형에 처하거나 다른 모양의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하지만 키르케는 달랐다. 영생을 누릴 수 있는 신이기도 했고, 마음만 먹으면 원하는 약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마녀이기도 했다. 그렇게 키르케는 본인만의 방식으로 남성의 힘과 가부장적인 세상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방>을 구축했다.

 

<키르케>라는 캐릭터를 처음 만난 건 9학년 때였다. 미국 고등학생이라면 꼭 읽어야 하는 등용문 같은 대서사시, <오디세이>에서 선원들을 돼지로 만들어 버린 무시무시한 장본인이 바로 키르케였다. (여담이지만, 키르케가 영문으로 <Circe> 였는지 이 책을 읽으면서 알았다. 우리 영어 선생님이 분명 발음을 <썰씨>로 읽었던 것 같은데, 그리스어로 발음을 하면 <키르케>가 맞다고 한다.)


<오디세이>에서는 잠시 나오기 때문에 <키르케>라는 캐릭터가 그저 무서운 마녀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그의 삶 뒤에는 파도 파도 끝이 없는 대서사시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키르케는 대차다. 


수많은 남신들의 권위 앞에서 자신의 올곧은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 


키르케는 자기만의 방을 구현해 나갔던 개척자다. 


그는 잘못을 저지른 후, 한 섬에 유배되는데, 버려졌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삼아 마녀로서의 능력을 끊임없이 키워나갔다. 


키르케는 굴복하지 않았다. 


그는 여성이 남성들에게 억압되는 것이 당연한 세상 속에서 태어나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억압당하는 것에 대한 부조리함과 불편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것들에 맞서 싸워가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이 책은 남녀노소 누구나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특히 그리스/로마 신화를 잘 아시거나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더더욱. 한 가지 염두해 둘 점은,  <키르케>는 500페이지가 살짝 넘는 벽돌 책이고, 읽는 속도에 따라 완독 하는 시간이 천차만별이겠지만, 책을 열기 전에 충분한 시간을 확보한 후에 열길 바란다. 나 같은 경우 <키르케>를 받고 읽기 시작했을 때 분명 하루에 30분씩만 읽을 거라 생각했는데, 나의 계획과는 영 다르게 흘러가는 시간이 야속할 정도로 푹 빠져서 앉은자리에서 다 읽었다. 그 때문에 수면 패턴이 엉망이 되었지만 후회는 없다. 그만큼 재밌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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