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오후, 횡단보도에서 받은 배려
싱가포르는 요즘 우기에 접어들었다. 화창하다가도 예고 없이 소나기가 쏟아지는 날이 잦다. 건물과 건물 사이가 지하로 연결돼 있고 길거리에도 지붕이 설치된 곳이 많지만, 이곳에서는 웬만하면 날씨와 상관없이 우산을 챙겨 다닌다. 갑작스러운 비가 일상이기 때문이다.
며칠 전, 딸과 함께 집에서 버스로 여덟 정거장쯤 떨어진 슈퍼마켓에 다녀왔다. 집 근처보다 가격이 저렴하고, 조개나 꽃게 같은 수산물도 살 수 있어 가끔 일부러 찾는 곳이다. 그날은 장도 보고 저녁도 해결할 겸 늦은 오후에 집을 나섰다.
지하주차장을 지나 출입문을 나섰을 때 하늘은 조금 흐려 있었다. 가방을 뒤져 보니 우산이 없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집으로 되돌아갈까 잠시 망설였지만, 회색 구름이 낮게 깔려 있을 뿐 당장 비가 쏟아질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슈퍼마켓에 도착할 때까지만 비가 오지 않으면, 돌아오는 길에는 지하보도를 이용해 버스를 탈 수 있으니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버스를 타고 세 정거장쯤 지났을 무렵, 운전기사가 와이퍼를 켰다. 창밖에는 빗방울이 희미하게 맺혀 있었다. 이슬비 정도겠거니 여겼지만,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빗줄기는 점점 굵어졌다. 정류장에 내리자 기다렸다는 듯 굵은 장대비가 쏟아졌다.
정류장 근처엔 지붕이 있어 잠시 비를 피할 수 있었지만, 슈퍼마켓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봐도 우산을 살 만한 가게는 보이지 않았다. 지붕 아래 서서 비가 조금 잦아들길 기다렸다. 굵은 빗방울이 조금 가늘어졌을 무렵, 딸과 나는 발걸음을 재촉하며 빗속으로 나섰다. 후드득, 후드득 내리는 비에 머리와 어깨가 금세 젖어 갔다.
슈퍼마켓에 가기 위해서는 작은 도로 하나와 대로를 연달아 건너야 했다. 횡단보도 앞에 섰지만 신호는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실제로는 몇 분에 불과했겠지만, 비를 맞으며 서 있으니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그때 딸이 자기가 쓰던 야구 모자를 벗어 내 머리에 씌워주었다. 나는 다시 딸에게 건넸고, 딸은 또다시 내게 돌려주었다. 내가 끝내 쓰지 않자, 딸은 두 손으로 내 머리를 가려주었다. 비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도 나를 먼저 챙기는 딸의 마음이 고마웠다.
바로 그때였다. 머리 위로 갑자기 까만 지붕이 생겼다. 놀라 옆을 돌아보니 한 청년이 아무 말 없이 우산을 씌워주고 있었다. 나는 얼떨결에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했다. 딸과 나는 우산 아래에 섰다.
청년은 갓 스무 살 넘긴 듯 보였다. 곧고 반듯한 자세가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그 청년은 우산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팔을 길게 뻗어 우리 모녀만 가려줄 뿐, 정작 자신은 그대로 빗속에 서 있었다. 함께 쓰자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청년은 옅은 미소만 지은 채 말없이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신호가 바뀌자 더 이상 신세를 지기 미안해 빠르게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했다. 중간쯤 건너왔을 때 다시 한번 “정말 고마워요!”라고 외친 뒤 우산 속을 벗어나 딸과 함께 슈퍼마켓 쪽으로 달렸다. 비를 맞으며 걷는 청년이 계속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슈퍼마켓에 도착해 뒤돌아보았을 때 청년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음료수 하나라도 건네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못내 아쉬운 마음이 남았다.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그 청년이 내어준 따뜻함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아직 학생처럼 보이던 청년에게서 받은 도움이라 더욱 고마웠다. 싱가포르에서 20년 넘게 살았지만, 낯선 사람과 우산을 함께 쓴 건 처음이었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공존하는 사회인만큼, 서로 다름을 존중하는 대신 개인 간의 거리 역시 중요하게 여긴다고 느껴왔다. 그런 사회에서 받은 선의라 더 깊이 다가왔다.
문득 오래전 내가 국민학교 다니던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버스를 타면 자리에 앉은 사람이 옆에 서 있는 사람의 가방을 받아 무릎 위에 얹어 주곤 했다. 손잡이가 달린 까만 교복 가방이 차곡차곡 무릎에 놓이던 풍경이 낯설지 않았던 때였다. 비가 오면 대나무 살에 얇은 파란 비닐을 씌운 우산을 함께 쓰고 걷기도 했다. 바람에 우산이 뒤집히면 다시 바로잡아 쓰곤 했다. 그런 풍경이 특별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요즘은 낯선 사람에게 다가가는 일이 조심스러워졌다. 선의는 종종 오해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친절을 베풀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그날, 비 오는 횡단보도에서 만난 낯선 청년의 우산은 싱가포르에서도, 지금의 한국을 떠올려 보아도 더욱 특별하게 여겨졌다.
그날 내게 손을 내밀어 준 그 청년처럼, 나도 언젠가 누군가의 하루에 잠시나마 따뜻한 지붕이 되어줄 수 있을까. 그 청년이 어디에 있든 건강하기를, 그 고운 마음으로 세상을 오래도록 걸어가기를 바란다. 비 오는 횡단보도에서의 짧은 만남은 그렇게 따뜻하고도 묵직한 여운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