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시카고>를 떠올리며
아침을 먹으며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아들에게서 반가운 메시지가 왔다. 미국에 교환학생으로 간 아들이 뉴욕 여행 중에 보낸 것이었다.
“엄마, 나 지금 뮤지컬 시카고 보러 왔어요. 엄마한테 드리려고 프로그램북도 샀어요.”
아들은 공연이 열리는 극장과 주변 풍경을 찍은 사진도 함께 보냈다.
“엄마가 25년 전에 봤던 극장이랑 같은 곳 같아요. 앰배서더 극장 기억나요?”
“글쎄, 내가 본 곳은 다른 극장이었던 것 같은데. 공연은 끝났어?”
“아니요, 지금 인터미션이에요. 이따 다시 메시지 할게요.”
두 시간쯤 뒤, 다시 메시지가 왔다.
“엄마, 너무 재미있었어요. 뮤지컬 넘버 중에 ‘올 댓 재즈’하고 ‘셀 블록 탱고’가 제일 좋았어요. 뉴욕에서 제일 오래된 뮤지컬이라던데, 오리지널 공연을 보니까 더 감동이었어요.”
아들이 뮤지컬에 눈을 뜬 건 얼마 전 일이다. 뮤지컬을 무척 좋아하는 나는 싱가포르에 인터내셔널 투어가 오면 빠짐없이 공연을 봤고, 주로 딸과 함께 관람했다. 그러다 어느 날, 딸이 퇴근이 늦어져 공연을 보러 갈 수 없게 되었다. 딸이 특히 보고 싶어 하던 위키드였다. 그 자리를 대신 아들이 채웠다.
공연을 보고 난 뒤 아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엄마, 이래서 뮤지컬을 보네요. 영화보다 훨씬 재미있어요.”
그 이후 오페라의 유령까지 함께 보면서, 아들은 완전히 뮤지컬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아들이 보내준 사진 중에는 공연이 끝난 뒤의 커튼콜 장면도 있었다.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인사하는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좋았다.
누군가 다음 생에 뭐가 되고 싶냐고 묻는다면, 나는 늘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뮤지컬을 보는 동안 나는 주연도 되고, 앙상블도 되고, 때로는 무대 위의 소품이 된다. 많은 작품을 여러 번 봤지만, 시카고는 지금까지 단 한 번, 뉴욕 브로드웨이에서만 보았다. 그리고 그 한 번의 관람은 내 인생에서 아주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내가 시카고를 본 건 지금으로부터 24년 전, 뉴욕 브로드웨이였다. 큰아이가 태어난 지 두 달쯤 되었을 때였다. 당시 나는 뉴욕 주의 작은 도시에 살고 있었다. 풍경은 정말 아름다웠지만, 아기를 데리고 갈 만한 곳은 없었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오래된 주유소, 작은 비행장, 그 흔한 스타벅스 하나 없는 쇼핑몰. 몇 개의 식당과 슈퍼마켓이 전부였다.
겨울은 길고 어두웠다. 다섯 시만 되면 어둠이 내려앉았고, 매일같이 눈이 내렸다. 현관문을 열면 삽으로 수북이 쌓인 눈을 치워야 했고, 차를 타려면 앞유리의 성에부터 긁어내야 했다.
아들이 두 달쯤 되었을 무렵, 남편이 일주일간 다른 도시로 출장을 갔다. 집에는 나와 아들만 남았다. 그 긴 겨울밤들. 칠흑 같은 어둠은 내 마음을 깊이 가라앉혔다. 그러던 중, 우리 집에 다녀간 아이가 아들에게 여러 번 뽀뽀를 한 뒤, 아들은 바이러스 장염에 걸렸다. 잘 먹고 잘 자던 아들이 입과 코로 우유를 뿜어내고, 배를 뒤틀며 설사를 했다. 자지러질 듯 울어대는 아기를 안고, 한밤중에 나는 어쩔 줄 몰라 함께 울었다. 소아과 당직 선생님께 전화를 하니 별일 아니라며 날이 밝으면 병원으로 오라고 했다. 그 밤은 유난히 길었다.
며칠 뒤 아들은 회복했지만, 한 번 놀란 내 마음은 쉽게 진정이 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내게 아들은 자신에게 맡기고 잠깐 뉴욕에 바람을 쐬고 오라고 했다. 백일도 안 된 아기를 두고 떠나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남편은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끝까지 망설이던 나를 버스터미널에 데려다주었다.
뉴욕에서 나는 가장 저렴한 숙소에 머물며 며칠을 보냈다. 예전에 지냈던 학교 기숙사에도 가보고, 소호에 있는 작은 갤러리, 여러 뮤지엄, 공원을 걸으며 옛 추억을 꺼내보았다. 그리고 저녁에는 뮤지컬을 보았다.
그때 처음 만난 작품이 시카고였다. 다른 뮤지컬과 달리 무대 위에 밴드가 있었고, 나는 흥겨운 재즈에 흠뻑 취했다. 러시 티켓으로 저렴하게 산 자리는 무대와 너무 가까워 고개를 뒤로 젖혀야 했지만, 배우들의 호흡과 에너지가 그대로 전해졌다.
며칠 후 집에 돌아오니 내 마음이 한결 밝아져 있었다. 아들을 키우는 일이 더 이상 두렵지 않았고, 하루하루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것이 즐거웠다. 아들은 건강하게 잘 자랐다.
그리고 지금, 아들이 보내온 사진 속 뉴욕에는 다시 눈이 내리고 있었다. 영하의 겨울 공기가 사진 너머로 전해졌다. 나는 그 사진을 몇 번이고 보며, 맨 앞자리에 앉아 재즈의 선율에 몸을 맡기던 그때의 나를 떠올렸다. 아들은 어느새 스물네 살의 청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