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요리 장인의 손끝, 한 끼의 감동

도쿄에서 만난 가이세키 오마카세, 계절의 맛

by 황여울


요코하마와 가마쿠라를 여행한 뒤 도쿄로 향했다. 이번 도쿄 여행의 목적은 센소지나 도쿄타워 같은 관광명소가 아니라, 조금 더 다양한 일본 요리를 맛보는 것이었다. 남편이 도쿄 출장을 다니며 알게 된 식당 몇 곳과 인터넷에서 평이 좋은 곳들을 중심으로 일정을 짰다. 여행 전 예약을 모두 마쳤고, 인기 있는 식당들은 예약금을 내거나 음식값을 선결제해야 했다. 다녀온 모든 식당이 기대 이상이었지만, 그중 한 곳은 싱가포르로 돌아온 뒤까지도 오래도록 마음에 여운으로 남았다.


예약 시간은 저녁 5시 반이었다. 호텔 조식을 먹고 점심은 간단한 스낵으로 대신해, 살짝 출출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호텔에서 식당이 있는 긴자까지는 전철로 다섯 정거장이었지만,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조금 일찍 나섰다. 15분쯤 먼저 도착해 근처 가게들을 둘러보다가 예약 시간에 맞춰 식당 문을 열었다.


푸근한 인상에 연륜이 느껴지는 여성이 기모노 차림으로 우리를 맞았다. 셰프와 마주 보고 앉는 카운터 자리였다. 셰프는 서른 중반쯤으로 보였고, 인상이 선했다. 우리는 서로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나눴다.


직원은 우리 가족의 겉옷을 차례로 받아 옷걸이에 걸어주었다. 옻칠한 쟁반 위에는 젓가락과 도기 찻잔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곧이어 직원은 차주전자를 들고 와 찻잔에 따끈한 녹차를 따라 주었다. 찬바람에 시렸던 몸이 따뜻한 차 한 모음에 스르르 풀어졌다.


모두 술을 마시는지 물은 뒤, 남편과 아들 앞에 사케 잔을 놓았다. 사케를 한 병씩 가져와 각각의 특징을 간단히 설명한 뒤 차례로 시음하게 했다. 네 종류의 사케를 맛본 후, 남편과 아들은 다이긴조 사케를 골랐다. 나는 술을 즐기지 않아 남편이 고른 사케를 한 모금 맛보았다. 과일 향이 먼저 느껴졌고, 부드러운 단맛이 뒤따랐다.


네 가지 사케.


그 사이 셰프는 전채를 준비하느라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이번에 우리가 경험한 오마카세는 일본 전통 코스 요리인 가이세키였다. 전채로 시작해 식사와 디저트까지 이어지는 형식이었다.


첫 번째로 나온 음식은 전채 요리인 ‘핫슨’이었다. 핫슨은 계절의 풍경을 한 접시에 담는 요리로, 가이세키 요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사각 트레이 위에 여덟 가지 요리가 올려졌다. 작은 그릇과 접시에 한두 입 분량의 음식이 정갈하게 담겨 있었다. 음식 위에는 하얀 매화와 큰 잎 장식이 더해져 상차림을 한층 화사하게 만들었다. 보는 순간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날 코스 중 가장 인상 깊은 요리였다.


계절을 담은 요리, 핫슨.


직원은 음식 하나하나를 설명해 주었다. 참치 아보카도 무침, 조개와 해산물, 산나물과 제철 채소, 생선 요리까지. 설명을 듣고 맛보니 풍미가 더 또렷하게 느껴졌다. 특히 유자 미소 드레싱을 사용한 참치 아보카도는 상큼한 맛이 일품이었고, 맨 아래 왼쪽의 나물은 은은한 향과 깨의 고소함이 잘 어우러졌다. 요리 하나하나에 분명한 의도가 느껴졌다.


두 번째 음식은 ‘완모노’였다. 맑은 국물에 가볍게 튀긴 도미살을 넣은 요리였다. 튀김을 국물에 넣었는데도 흐트러지지 않았고 국물 또한 탁해지지 않았다. 생선 살은 부드럽고 촉촉했고, 표고버섯과 채소가 더해져 감칠맛이 깊었다. 국물에서 은은하게 퍼지는 유자 향이 입안을 개운하게 해 주었다.


맑은 국물에 가볍게 튀긴 도미살을 담은 완모노.


세 번째는 '사시미'였다. 우리가 완모노를 먹는 동안 셰프는 사시미를 준비했다. 스테이크처럼 두툼하게 썬 회가 돌접시에 담겨 나왔다. 참치, 참치 뱃살, 광어가 함께 올려졌고, 간장과 고추냉이, 폰즈가 곁들여졌다. 평소 참치회를 즐기지 않는 편이지만, 이곳의 참치는 비린 맛이 전혀 없어 깔끔하게 느껴졌다. 따뜻한 차를 한 모금 마시면서 다음 요리를 기다렸다.


스테이크처럼 두툼하게 썬 사시미.


네 번째로는 오리 미트볼 요리가 이어졌다. 다진 오리고기를 동그랗게 빚어 만든 완자를 맑은 국물에 담아냈다. 지방은 있었지만 느끼하지 않았고 가늘게 채 썬 파와 다시마가 풍미를 더했다.


오리 미트볼 요리.


다섯 번째 음식은 고기와 생선 요리가 함께 나온 메인 요리였다. 소고기는 최상급으로 꼽히는 미야자키 와규로, 살짝 구운 뒤 간장 베이스 소스로 조리한 것 같았다. 촉촉하고 부드러우면서도 느끼함이 전혀 없었다. 입에서 살살 녹는 맛이었다. 아들은 남은 소스에 밥을 비벼 먹기까지 했다. 생선 역시 담백하고 깔끔해 고기와 조화로운 맛을 냈다. 식사는 어느새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고기와 생선을 한 접시에 담은 메인 요리.


여섯 번째는 '츠케우동'이었다. 얇게 썬 차돌박이를 살짝 익혀 만든 국물에 쫄깃한 우동 면을 찍어 먹는 요리였다. 담백하고 쫄깃한 면과 감칠맛 나는 육수가 잘 어울렸다. 정신없이 맛을 음미하다 보니 어느덧 두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츠케우동.


마지막으로 과일 디저트가 나왔다. 오렌지, 키위, 멜론, 딸기, 사과 등 셰프가 고른 최상급 과일이었다. 특히 아오모리현 후지 사과는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맛이 뛰어났다.


디저트.


각각의 코스마다 양이 조금씩 나올 거라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양이 많아 상당히 배가 불렀다. 직원은 차가 조금이라도 식으면 찻잔을 바꿔 따뜻한 차를 따라 주었고, 음식이 나올 때마다 번역기를 사용해 정성껏 설명해 주었다. 아들이 일본어를 곧잘 해 셰프와 직원과 대화를 나누며 우리에게 통역도 해주었다.


지금까지 맛있는 음식에 감탄한 적은 많았지만, 음식을 만드는 셰프에게 이렇게 감동한 적은 없었다. 꽃잎 하나를 올리는 손끝에서도 얼마나 많은 준비와 고민이 있었는지 느껴졌다. 손님 앞에서 요리를 완성하기까지의 시간과 정성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디저트와 따뜻한 차로 식사를 마친 뒤 셰프와 직원과 함께 사진을 찍고 감사 인사를 여러 번 전했다. 2시간 반 동안의 식사는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직원은 처음 도착했을 때처럼 하나하나 외투를 입혀 주었다. 따뜻한 마음을 안은 채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우리가 엘리베이터에 오르자 셰프와 직원은 다시 한번 허리를 깊이 숙여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우리도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한 끼의 식사였지만, 그 안에 계절과 시간, 셰프의 정성이 담겨 있었다. 일본 요리 장인의 손끝에서 시작된 감동은 지금까지도 우리 가족의 마음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