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에서 끓인 경상도식 소고기뭇국, 얼큰한 위로

나를 위해 끓인 한 그릇

by 황여울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흑백요리사 2'를 보다가, 결승전의 주제로 나온 ‘나를 위한 요리’라는 말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지금껏 가족들을 위해 차리는 음식은 많았지만, 정작 나 자신을 위해 준비한 한 끼는 많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은 아이들과 함께 결승전을 보던 중이었다. 아들이 문득 내게 물었다.


“엄마는 엄마에게 해 주고 싶은 요리가 뭐예요?”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잠시 생각하다가 한 가지 음식이 떠올랐다.


“음... 엄마는 소고기뭇국인 것 같아. 할머니가 끓여주시던 경상도식 소고기뭇국.”


대구에서 자란 나는 소고기뭇국을 당연히 고춧가루가 들어간 얼큰한 국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서울에서 하숙집 아주머니가 끓여준 소고기뭇국은 전혀 달랐다. 고춧가루가 들어가지 않아 색이 허옇고 맛도 어딘가 심심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하숙집 국은 소고기가 들어 있나 싶을 만큼 적어서 거의 뭇국에 가까웠다. 같은 소고기뭇국이라도 지역에 따라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방학이 되어 집에 내려가면 나는 늘 엄마에게 제일 먼저 소고기뭇국을 끓여달라고 했다. 칼칼한 소고기뭇국이 그렇게나 먹고 싶었다. 내 방에 누워 있으면 부엌에서 들려오는 소리와 냄새에 마음이 풀어졌다. 그러다 스르르 잠이 들고, 엄마가 깨우면 어느새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엄마는 국 대접에 국을 가득 담고 밥도 수북이 담아주셨다. 나는 늘 먼저 국부터 먹다가 밥을 말아먹었다. “바로 이 맛이지. 진짜 그리웠던 맛이야.” 감탄을 하며 서너 끼를 연달아 먹곤 했다.


세월이 많이 흘러 20대의 나는 이제 50대 중반이 되었다. 일 년 내내 무더운 싱가포르에 살면서는 국을 자주 끓이지 않는다. 더운 날씨에 국을 끓이느라 부엌에 오래 서 있는 것도 힘들고, 가족들도 뜨거운 국을 반기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국을 끓이려면 아무래도 소금이나 국간장을 넣게 되어 나트륨 섭취가 늘어나니 굳이 자주 끓이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기운이 없거나 속이 허할 때면 엄마가 끓여주시던 소고기뭇국이 떠올랐다. 국 한 그릇 있으면 김치와 먹으면 되니 쉽게 끓일 만도 한데, 문제는 우리 가족 중에 나 말고는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남편은 육개장도 크게 좋아하지 않아 소고기뭇국은 무슨 맛으로 먹는지 모르겠다고 하고, 아이들도 특별히 맛있다는 생각이 안 든다고 했다. 그러니 나 혼자 먹자고 쉽게 끓이게 되지 않았다.


예전에 같은 아파트에 살던 동생이 다리를 다쳐 음식을 못 하던 적이 있었다. 무엇을 해줄까 고민하다가 소고기뭇국을 끓여 냄비째 가져다주었다. 나중에 들으니, 부산 출신인 남편분이 어머님이 끓여주시던 맛 같다며 그렇게 맛있게 먹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괜히 마음이 뭉클해졌다. 타지에서 같은 국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닮아 있어서였을까.


며칠 전 저녁 메뉴를 고민하던 중 아들의 질문이 떠올랐다. 오랜만에 나도 나를 위해 요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무더운 날씨였지만 장바구니를 메고 재료를 사러 걸어갔다. 다른 재료는 집 앞 슈퍼마켓에서도 살 수 있지만, 야들야들한 한국 콩나물을 사려면 한참을 걸어가야 했다.


가족들의 저녁을 준비하며 한편에서 나를 위한 국을 끓이기 시작했다. 냄비에 참기름을 두르고 소고기를 먼저 볶았다. 고춧가루를 넣어 색을 내고, 납작하게 썬 무를 넣어 함께 볶았다. 그 뒤 멸치 육수를 부어 끓였다. 이때 육수는 한 번에 다 넣는 게 아니라 조금씩 나눠 넣고 끓여야 한다. 무가 어느 정도 익으면 콩나물과 대파를 듬뿍 넣고 마지막으로 마늘과 고추를 넣고 국간장으로 간을 맞췄다.


엄마는 대파를 데쳐 사용했지만, 나는 다른 음식과 함께 조리하느라 바빠 그냥 길쭉하게 썰어 넣었다. 국간장은 엄마가 한국에서 우편으로 보내준 집간장이었다. 시판 간장보다 색이 짙지만, 그 깊은 맛은 따라올 수 없다. 국을 끓이는 동안 한 입 맛을 보니 고향의 맛이 느껴졌다.


20260114_193922 (1).jpg 경상도식 소고기뭇국.


국그릇 가득 국을 담고 밥과 김치를 곁들였다. 한 입 먹는 순간, ‘그래, 바로 이거지!’하며 탄성이 나왔다. 에어컨을 켜고 먹는데도 땀이 맺혔다. 이 많은 걸 다 먹을 수 있을까 싶었지만 먹다 보니 다 비워졌다. 엄마의 레시피를 그대로 흉내 내지 못한 탓인지 조금 맛은 덜했지만 그래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맛이었다. 속이 채워지고 기운이 났다.


결승전에서 최강록 셰프가 고단한 하루의 위로로 국물 요리를 만들었다면, 나에게 소고기뭇국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리움을 달래 주는 음식인 것 같다. 엄마가 보고 싶은 마음을 참고 한 학기 버티다가 집에 돌아와 엄마가 끓여준 국을 먹으며 느꼈던 그 안도감. 그 기억이 중년의 나이가 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해외에서 산 지 25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가끔 속이 허할 때 소고기뭇국이 떠오르는 걸 보면 나에게 소고기뭇국은 음식이라기보다 정체성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타국에서 오래 살아도 내가 한국 사람임을, 사투리 억양이 옅어졌다 해도 여전히 대구 사람임을 느끼게 해 주는 매개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뜨끈한 국을 한 그릇 먹고 나니, 설명하기 어려운 따스함이 마음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