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질 현수막의 두 번째 삶

싱가포르 국립미술관 워크숍에서 만난 새활용 체험

by 황여울

평소 미술 전시 관람을 좋아해 싱가포르 국립미술관(National Gallery Singapore)을 자주 찾는다. 연간 회원권을 끊어 두면 보고 싶은 전시를 횟수 제한 없이 관람할 수 있기 때문이다. 회원이 되면 상설 전시는 물론 특별 전시까지 추가 비용 없이 볼 수 있다. 특히 일반 관람 시간이 끝난 뒤 진행되는 특별 관람이나 도슨트와 함께 작품을 감상하는 프로그램도 있어 나 역시 자주 참여하며 만족스럽게 이용하고 있다.


국립미술관에서는 다양한 워크숍(체험 수업)도 열린다. 회원뿐 아니라 일반인도 참여할 수 있는데, 회원에게는 할인 혜택이 제공된다. 수채화 그리기나 한 작품을 천천히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슬로 아트’ 프로그램, 부모와 아이가 함께 참여하는 가족 프로그램 등 종류도 다양하다.


이번에 내가 참여한 워크숍은 가방을 만드는 수업이었다. 이 프로그램의 특별한 점은 일반 천이 아니라 ‘2025년 어린이 비엔날레에서 사용되었던 현수막을 새활용해 가방을 만든다’는 데 있었다. 이메일로 받은 워크숍 안내를 보니 날짜는 2월 28일, 참가비는 1인당 40달러(약 4만 원)로 적혀 있었다. 마침 시간이 맞아 딸과 함께 참여하기로 했다. 온라인으로 티켓을 구매한 뒤 정해진 날에 국립미술관으로 향했다.


수업 시작 시간은 오후 4시였다. 장소는 국립미술관 5층에 있는 스튜디오였다. 조금 일찍 도착했는데 이미 여러 사람이 탁자에 앉아 준비하고 있었다.


가방 만들기 워크숍 장면. 친구나 연인과 함께 온 참가자들이 많았다.


탁자 하나에 4~6명이 앉도록 배정되었다. 등록한 이름을 확인한 뒤 안내받은 자리에 앉았다. 탁자 위에는 재봉틀 두세 대와 여러 장의 천 조각이 놓여 있었다. 두 사람이 재봉틀 한 대를 함께 사용한다고 했다. 먼저 잘라 놓은 천 여러 장 가운데 마음에 드는 것 두 개를 고르라고 했다.


어린이 비엔날레에 사용된 현수막이라 색이 무척 밝았다. 샛노란 바탕에 분홍색과 하늘색, 꽃분홍색 등 어린이들의 꿈을 표현한 색들이 인쇄되어 있었다. 큰 현수막을 조각조각 잘라 놓은 것이라 대부분 글씨나 그림의 일부가 잘린 채 남아 있었다. 딸과 나는 탁자 위에 놓인 천 조각들을 하나씩 살펴보며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골랐다. 천을 고른 뒤 물티슈로 표면을 닦았다. 거뭇거뭇한 먼지가 많이 묻어 있어 여러 번 닦아내야 했다.


가방을 만들기 위해 조각조각 잘라 놓은 현수막.


본격적인 수업이 시작되었다. 20대의 젊은 선생님이 진행을 맡았다. 먼저 리사이클링(재활용)과 업사이클링(새활용)의 차이를 알고 있는지 물었다. 저쪽 탁자에 앉아 있던 한 사람이 손을 들어 대답했다. 선생님은 두 개념의 차이를 다시 한 번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재활용은 버려진 물건을 분해해 다시 재료로 쓰는 것이고, 새활용은 버려진 물건을 그대로 살려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설명을 듣는 동안 유튜브에서 낡은 청바지를 가방으로 만들거나 다 마신 와인병을 이용해 LED조명을 만드는 영상을 본 기억이 떠올랐다. 그 역시 새활용의 한 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은 재봉틀 사용법을 익히는 시간이었다. 재봉틀을 써본 경험이 있는 참가자도 있었지만 처음인 사람이 훨씬 많았다. 나도 오래전에 재봉틀 써본 적이 있지만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컴퓨터 화면에 띄워진 설명을 보며 눈앞의 재봉틀 각 부분을 하나씩 짚어봤다. 핸드휠, 노루발, 페달 등 이름과 역할을 익힌 뒤 작은 연습용 천에 직접 박음질을 해보았다. 탁자마다 보조 선생님이 계셔서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옆에서 친절하게 도와주셨다.


연습용 천에 박음질을 해보며 재봉틀 사용법을 익혔다.


연습용 천에 이리저리 박음질을 해 보니 긴장감이 조금 풀렸다. 이제 본격적으로 가방을 만들 차례였다. 미리 골라놓은 천에 클립을 몇 군데 꽂아 움직이지 않도록 고정했다. 윗실과 밑실을 뒤로 정리하고 약 1cm 시접을 두고 노루발을 내렸다. 핸드휠을 몇 번 돌려 밑실을 끌어올린 뒤 직선 박기를 시작했다. 끝부분에서는 되돌아박기를 해 실이 풀어지지 않도록 단단히 고정했다.


가방이 생각보다 커서 박음질을 하는 데 제법 시간이 걸렸다. 무엇보다 천이 일반 원단이 아니라 뻣뻣한 PVC 소재여서 방향을 바꾸거나 밑바닥 두께를 잡을 때 더 신경이 쓰였다. 특히 가방 안쪽 바닥을 박음질할 때는 천이 두껍게 겹쳐 있어 더 힘들었다. 박음질이 모두 끝난 뒤에는 가방을 겉면이 나오도록 뒤집어 주었다. 소재가 뻣뻣해 뒤집는 일도 쉽지 않았다. 긴 자로 안쪽을 눌러 모양을 잡고 발을 넣어 밀어가며 겨우 뒤집어냈다.


드디어 가방이 완성되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내가 직접 만든 가방이었다. 무엇보다 그 가방에 담긴 의미가 마음에 들었다. 비엔날레에 사용된 현수막은 어린이들의 꿈과 희망을 전했던 물건이다. 사용이 끝난 뒤에는 버려지는 대신 새활용을 통해 새로운 가방으로 다시 태어났고, 그 과정에서 얻어진 수익은 여성 한부모 가정 등 취약계층을 돕는 데 쓰인다고 하니 더욱 뜻깊게 느껴졌다.


완성된 가방.


노란 가방을 메고 있으니 마치 동심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수고하신 여러 선생님들께 감사 인사를 전했다. 딸과 함께 사진을 찍고 워크숍을 마무리했다.


딸도 무척 즐거워했다. 재봉틀을 다루는 법을 배운 것도 좋았고, 처음으로 직접 만든 가방이라 더욱 마음에 든다고 했다. 무엇보다 수강료가 취약계층을 돕는 데 쓰인다는 점이 의미 있게 느껴졌다고 했다. 딸과 나는 커다란 노란 가방을 각각 메고 뿌듯한 마음으로 갤러리를 나섰다.


집에 돌아와 딸과 내가 만든 가방 두 개를 나란히 세워 두고 보니 더욱 의미 있게 느껴졌다. 평소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단순히 재활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거기에 새로운 기능과 가치를 더해 다시 쓰는 방법도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앞으로는 물건을 버리거나 재활용으로 내놓기 전에 다른 쓰임이 있을지 한 번 더 생각해 보려고 한다. 버려질 뻔했던 현수막이 새로운 가방으로 탈바꿈했듯, 물건에 새로운 가치를 더해 다시 쓰는 작은 실천을 이어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