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여울 Sep 17. 2021

싱가포르의 달빛, 랜턴 축제

차이나타운, 가든스 바이 더 베이 (2021년)

달빛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나는 맨 먼저 뮤지컬 캣츠의 무대가 생각난다.

은은한 달빛 아래에서 춤을 추던 고양이들의 축제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그리자벨라의 Memory(메모리)가 흐르면 달빛의 깊은 여백이 내 마음속 깊이 자리 잡는다.     


며칠 후면 일 년 중에 달이 가장 크고 밝은 밤, 추석이 온다. 싱가포르에서 추석은 쫑치우지에 또는 Mid-Autumn Festival(미드 오텀 페스티벌)이라고 불린다. 싱가포르 인구의 70퍼센트가 중국 계이지만 한국과 달리 중추절은 공휴일이 아니다. 하지만 중추절 기간엔 가족과 이웃과 함께 월병을 나눠먹고 서로 행복을 빌어준다. 월병은 둥근 보름달을 닮아 모양이 동그랗고 속이 꽉 차서 두꺼우며 달달한 맛이 난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는 아이들이 각자 소원을 담은 등을 만든다. 중추절 전날 밤에는 학교마다 Lantern Festival(랜턴 축제)를 하는데 부모님과 함께 참여하여 등불을 들고 다니며 소원도 빌고 친구들과 재미있는 시간을 보낸다.      


전통적인 월병은 주로 팥, 밤, 연꽃 씨앗, 달걀노른자 등을 넣고 만든 것이나 요즘은 두리안이나 초콜릿, 아이스크림 등과 같은 소를 넣은 다양한 종류의 월병을 볼 수 있다. 유명 호텔 브랜드의 화려한 포장과 맛을 겸비한 고급스러운 월병도 있지만 집 근처 동네 베이커리나 호커 센터에서 소박하게 구워낸 월병 또한 맛도 좋고 가격도 저렴하다. 아이스크림 브랜드 하겐다즈나 커피 전문점 스타벅스에서도 월병을 맛볼 수 있다.  

   

<녹차 월병, 팥 월병, 검은깨 월병, 단황 월병>


<왼쪽 아래: 계란 노른자가 들어있는 단황 월병,  오른쪽 아래: 검은깨 월병>


매년 추석에 가장 화려한 장식을 하던 곳은 차이나타운이었다.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전에는 추석 전후로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로 붐볐다. 물건을 구경하고 사고파는 사람들로 생동감 있고 활기찬 곳이었다. 형형색색의 등불 아래로 이리저리 사람들에게 치여 가며 걷는 재미가 있었다. 그러나 며칠 전 가 본 차이나타운은 문 닫은 가게도 많았고 장식 또한 소박해서 명절 분위기가 많이 나지 않았다. 또 구경 온 사람들도 물건을 사는 사람들도 별로 없어서 길거리가 아주 한산했다. 상인들이 얼마나 힘들게 버티고 있을지 생각하니 마음이 많이 안 좋았다. 


<차이나타운>


차이나타운 밖으로 나와 Eu Tong Sen Street와 New Bridge Road의 길거리 장식을 보았다.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전만큼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길거리를 따라 쭉 밝혀 놓은 아기자기한 캐릭터 모양의 등불이 환하게 비추고 있어서 길을 따라 걷는 즐거움이 있었다.     


<New Bridge Road 등불 장식>


차이나타운 못지않게 등불 장식이 예쁜 곳은 가든스 바이 더 베이이다. 바로 슈퍼트리로 유명해서 관광객들이 많이 찾던 곳인데 올해 가 본 가든스 바이 더 베이는 토끼를 주제로 이곳저곳 예쁘게 장식해 놓았다. 등불 장식은 여러 곳에서 볼 수 있었는데  골든 가든에서는 Sky Lanterns(하늘 등불)이라는 주제로 전시해 놓았다. 슈퍼트리 아래로 빨간 등불이 물결처럼 흐르고 아래에 토끼 두 마리가 한자로 쓰인 '복‘이라는 글자를 들고 있다. 토끼 왼쪽에는 사슴, 오른쪽에는 학이 있는데 이 동물들은 행운과 장수를 뜻한다고 한다.    

 

<Sky Lanterns@Golden Garden>


골든 가든에서 조금 걸어 나오면 Rabbit Trail(토끼 길)이 나온다. 길 양쪽으로 다양한 포즈를 한 토끼 등불이 길을 밝히고 있다.    

<월병을 먹고 있는 토끼 등불>


토끼 길을 나오면 반갑게도 한옥 형태의 큰 디지털 액자 안에 김홍도와 김준근의 풍속화 여러 점이 전시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싱가포르 한국대사관과 한국관광공사의 협력으로 전시되고 있다고 한다. 구경을 하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아서 보기가 참 좋았다.     


<한국 풍속화 안내문>


<김홍도의 '무동'>


또 다른 길에는 시민들이 제작한 종이로 만든 등 개가 천장에 달려 길을 밝히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슈퍼트리 쇼를 보러 갔다. 쇼는 해가 저물어 어둑해지는 저녁 7시 45분과 8시 45분에 있는데 나는 저녁 8시 45분 쇼를 봤다. 형형색색의 불이 켜졌다 꺼졌다 하며 노래를 하는데 정말 아름다웠다. ‘어쩌면 이렇게 환상적으로 아름답게 만들었을까’ 생각되었다. 내가 정말 영화 아바타의 어느 한 장소에 와 있는 듯 느껴졌다.      


<'슈퍼트리 쇼'의 한 장면>


쇼는 정말 황홀했다. 노란빛, 파란빛, 빨간빛, 보랏빛 등의 다양한 빛이 반짝반짝거리는데 하늘에 떠 있는 구름과 달빛과 어쩜 그리 잘 어울리던지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예쁘다, 너무 예쁘다, 정말 예쁘다, 진짜 예쁘다’하고 연신 감탄하며 봤다. 그러다가 팝송 Moon River(문 리버)에 맞춰 불빛이 반짝이는데 ‘음... 이상하다...’ 너무 예쁜데 가슴이 왠지 먹먹하다. 


한국에 있었으면 지금쯤 나는 마음이 꽤 분주했을 것이다. 며칠 쉬니 미리 장도 봐야 할 것이고 추석 전 날엔 시댁에 가서 차례 음식도 준비해야 할 것이다. 다행히 시댁은 차례 음식을 간소하게 준비했고 많은 양을 준비하지도 않았다. 어머님은 나물, 소고기 산적, 생선찜 같은 음식을 준비하셨고 그동안 나는 동그랑땡과 생선전을 조금 부치면 일이 끝났다. 명절엔 지방에 있는 친정에 가지 못 했다. 차례를 지내고 저녁에 출발하기가 어려웠다. 그때만 해도 고속전철이 없어서 추석 다음 날 하루 시간을 내어 다녀오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명절이면 몸이 고달픈 것보다 마음이 많이 허했다.     


슈퍼트리의 반짝이는 불빛을 보며 나는 우리 모두의 건강과 행복을 빌었다.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떠올리고 그려보며 진심으로 행복하길 빌었다. 그리고 맨 마지막으로 나를 위해 빌었다. ‘내가 진정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모든 일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기를.'      


가든스 바이 더 베이를 나와 배 모양의 호텔로 유명한 마리나 베이 샌즈 쪽으로 걸어갔다. 저 멀리 싱가포르 플라이어가 보였다. 사진을 찍다가 눈부시게 밝은 달을 쳐다보다가 또 사진을 찍다가 더딘 발걸음으로 지하철역을 향해 걸었다.      


< 오른쪽으로 싱가포르 플라이어 대관람차가 보인다.>


집으로 걸어오는 길에 내 등 뒤로 환하게 비추는 달빛을 보았다. 길모퉁이에 서서 가만히 바라보다 김용택 시인의 시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가 생각났다. 며칠 뒤 달빛이 가장 밝은 밤이 오면 전화를 해야겠다. 그리움을 달빛에 실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보내야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