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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여울 Nov 14. 2021

싱가포르, 한여름의 크리스마스 2021

오차드 로드 

싱가포르의 크리스마스 준비는 10월 중순부터 시작된다. 오차드 로드(Orchard Road)에 장식물이 하나둘씩 설치가 되고 11월 둘째 주에 점등을 시작하여 다음 해 1월 2일까지 7주 동안 지속된다. 오차드 로드로 진입하는 탱린 몰(Tanglin Mall)에서 플라자 싱가푸라(Plaza Singapura)까지 약 3Km의 거리가 황홀하고도 환상적인 조명으로 반짝인다.     


오차드 로드의 크리스마스 장식은 올해가 38번째 되는 해로서 1984년에 처음 시작되었다고 한다. 매년 다른 주제로 장식이 되는데 올해는 싱가포르의 풍부한 식물에서 영감을 받은 ‘Christmas in Bloom'이라는 ' 꽃’을 주제로 장식되었다. 올해 첫 점등은 11월 13일 토요일 6시 반에 시작되었다. 오차드 로드와 스코츠 로드(Scotts Road) 교차로에는 메인 아치가 설치되어 있는데 올해는 빨간색, 하얀색 그리고 금색 포인세티아와 크리스마스트리로 장식되었다. 특히 이번엔 만다린 오차드 호텔(Mandarin Orchard Singapore) 외벽 전체를 스크린으로 사용하여 입체적인 영상을 볼 수 있도록 연출한 것이 특징이다. 코로나19 이전의 눈부시게 화려했던 장식에 비할 순 없지만 올해도 빠짐없이 아름다운 오차드 거리를 볼 수 있다는 건 싱가포르에 살면서 누릴 수 있는 큰 즐거움 중에 하나이다.      


오차드 로드와 스코츠 로드 교차로에 있는 메인 아치 (2021년)



만다린 오차드 호텔 외벽의 입체적인 영상 (2021년)


올해 나는 싱가포르에서 17번째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되었다. 싱가포르에 온 첫 해, 겨울이 아닌 한여름의 크리스마스가 아주 낯설었다. 민소매에 반바지를 입고 듣는 캐럴도 길거리 장식도 낯설었다. 그렇게 한 해 두 해가 지나면서 적응이 되었다. 10월 중순쯤이면 올해는 어떤 주제로 오차드 거리가 장식될지 슬슬 궁금해진다. 오차드 로드에 볼일이 있어 나갈 때 하나둘씩 설치되는 장식물을 눈여겨본다. 점등이 되었을 때 어떤 광경이 펼쳐질지 머릿속으로 상상해 본다.       


나는 길거리에 서서 예쁜 장식을 보고 반짝이는 조명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무엇보다 차 안에서 캐럴을 들으며 창밖으로 보이는 각양각색의 오너먼트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 아름다운 빛의 세계에 마음이 젖어든다. 마치 동화책의 한 장면 속으로 들어가 ‘앨리스의 원더랜드’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오차드 로드 크리스마스 장식 (2021년)


아이들이 어렸을 때 길거리에 설치된 예쁜 장식들을 배경으로 사진을 많이 찍었다. 토이저러스가 있는 파라곤 백화점(Paragon)에 들러 아이들 몰래 장난감도 샀다. 남편은 크리스마스이브에 아이들 머리맡에 선물을 두는 대신 산타 할아버지가 밤새 다녀간 흔적을 남겨 두었다. 아이들은 아침에 일어나서 산타할아버지가 남겨놓고 간 쪽지들을 읽으며 보물 찾기를 하듯 각자의 선물을 찾았다. 크리스마스에는 성당에 가서 미사를 드리고 크로스 번도 먹었다.


오차드 로드 크리스마스 장식 (2019년)


올해 크리스마스는 아무래도 혼자 보내게 될 것 같다. 남편과 아이들은 이미 한국행 비행기표를 끊어 두었다. 내가 다니는 학교도 크리스마스 전후로 짧은 방학이 있지만 2년 만에 가는 한국 여행을 짧게 다녀오고 싶지는 않았다. 아쉬운 마음이 들어도 한국 여행은 잠시 미뤄두기로 했다. 홀로 보내는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초콜릿 맛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모카 맛 통나무 케이크를 살 생각이다. 술은 못 마시니 도수가 낮은 애플 사이다 한 병을 사야겠다. 톡톡 쏘는 맛에 달콤한 향을 즐기며 에어컨 빵빵하게 켜고 시원한 크리스마스를 보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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