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크 좀 주세요!

포크, Pork, Fork

by 황여울

어머나 세상에,

아침을 밖에서 사 먹다니,

와아,

맥도널드가 왜 이렇게 커.

놀이터도 있고

저 사람은 차 안에서 햄버거를 주문하네.

와아, 진짜 놀랍다.


1990년대 초반 처음 미국에 갔을 때 깜짝 놀란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맥도널드에서의 해프닝은 미국에 간 지 며칠 안 되어 겪은 일이라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일 년간 외국계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미국에 갔다. 그 당시에는 인터넷이 대중화되기 이전이어서 서점에서 책 두어 권을 사서 읽고 간 게 전부였다. 미국 사람과 대화를 해 본 건 영어 학원 초급반 선생님 두 명 밖에 없었다. 미국은 지방에서 살던 내가 서울에 와서 놀란 것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모든 게 새로웠고 충격 그 자체였다. 그중 첫 번째가 맥도널드에서 ‘맥모닝’이라는 아침 세트를 먹는 것이었다. 그 당시 한국에서는 아침을 사 먹는 문화가 보편화되지 않았고 아침 외식이라고 하면 해장국이나 설렁탕과 같은 국밥류를 떠올렸던 때였기 때문이다.




주말 아침 그곳은 평화로웠다. 널찍한 주차장에 차 몇 대가 세워져 있었다. 매장 안에는 아침을 먹으면서 신문을 보는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도 계셨고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을 지켜보며 아침을 먹는 젊은 부부도 있었다. 매장 안에 딸려 있는 놀이터도 어찌나 크고 좋던지 참으로 신기했다.


‘아침인데 밥 대신에 뭘 먹어야 하나... 아, 저기 핫케이크 세트가 있네. 저걸로 먹어야겠다.' 메뉴를 정한 후 주문을 하기 전에 미국 유학을 다녀온 직장 상사의 말을 떠올렸다. “ㅇㅇ 씨, 미국에서 뭔가를 주문할 때는 이 문장 하나면 끝나. 뭐든 Can I have를 써서 말하면 돼.” 떨리는 마음으로 핫케이크 세트를 주문했다. “캔 아이 해브 핫케이크 세트?” 다행히 직원은 내 주문을 바로 알아들었다. ‘오우, 다행이다. 내 말을 잘 알아듣네. 내 영어 꽤 괜찮은 가봐.’ 주문에 성공한 나는 뿌듯한 마음으로 핫케이크 세트를 받아 자리에 앉았다. 핫케이크를 먹으려 뚜껑을 열어보니 포크와 나이프가 보이지 않았다. 다시 주문대로 갔다.


“캔 아이 해브 포크?”

“...?”

‘아, 그렇지. 내가 너무 [r] 발음에 신경을 안 썼네.’


“캔 아이 해브 포올크?”

“...??”

“캔 아이 해브 폴크?”

“...???”

주문을 받은 사람이 도무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주방으로 들어가 한 사람을 불러왔다. 자신감이 급속히 저하된 상태였지만 다시 한번 더 용기를 냈다. ‘[r] 발음이 틀린 게 아니라 [f] 발음이 틀렸나? [f] 발음을 어떻게 하라고 했더라? 그래, 윗니를 아랫입술에 살짝 올리고 바람이 나가게 해서 ㅍㅎ’


“캔 아이 해브 ㅍㅎ올크?”

“...????”

두 사람은 모두 어깨를 들썩이며 나를 쳐다봤다.


‘아하, 안 되겠다. 이럴 땐 바디 랭귀지가 답이지.’ 하며 나는 다시 포크와 나이프로 핫케이크를 써는 제스처를 했다. 그들은 도무지 네 말을 못 알아듣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정도로 얘기했으면 아무리 구린 영어 발음이었더라도 알아들었을 법도 했을 텐데 말이다. ‘fork' 앞에 정관사 'a'를 안 써서인지 아니면 발음 때문에 끝내 못 알아들은 건지 일부러 못 알아듣는 척 한 건지 지금도 알 수가 없다.


창피한 마음에 더 이상 얘기를 못 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때 뒤편에 앉아 계시던 할아버지가 “너 혹시 저거 찾니?”하며 한쪽 켠에 있는 비치대를 가리켰다. ‘아, 저기 있네. 왜 저걸 못 보고서 ㅠㅠ.' 빨대도 있고 포크와 나이프도 있고 휴지도 있는데 왜 저게 안 보였나 싶었다. 손으로 접어 먹을 뻔하다가 다행히 포크와 나이프를 가져다가 핫케이크를 썰어 먹었다. 커피를 다 마시고 한 잔 더 주문하러 주문대에 갔다. 이번엔 또 내 컵을 가리키며 그걸 가져오라 했다. '아니 왜 빈 컵을 가져오라고 하지?' 의아했지만 마시던 컵을 가져갔다. 뜨거운 커피를 가득 담아주었다. 이건 리필이니까 돈은 안 내도 된다고 하면서. '와, 세상에 리필이 있다니. 그럼 다 마시면 또 주려나?' 궁금했지만 커피도 이미 충분히 마셨고 더는 주문대에 갈 용기도 나지 않았다.




혼자 있는 아침에 뭘 해서 먹을까 생각하다가 문득 맥도널드 아침 세트가 떠올랐다. 오랜만에 맥모닝도 맛있을 것 같았다. 배달 어플로 핫케이크 세트와 에그 맥머핀을 주문을 했다. 30분 뒤에 온 아침 세트엔 핫케이크용 시럽, 버터, 칠리소스, 휴지, 포크 그리고 나이프가 들어 있었다. ‘아, 이 포크. 이 포크 때문에 내가 그렇게 창피를 당했는데...’ 플라스틱 포크를 보니 그 옛날 맥도널드에서 포크 좀 달라고 그렇게 사정했던 기억이 떠올라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때의 창피함은 잊을 수 없는 재미난 추억거리로 남아 맥모닝과 함께 배달되었다.

이젠 진짜 ‘포크(fork)' 발음을 잘할 수 있는데 포크로 먹을 일이 별로 없다. 싱가포르도 젓가락과 숟가락으로 먹는 음식 문화여서 서양식 레스토랑에 가지 않으면 포크를 쓸 일이 별로 없다. 조만간 파스타를 한번 먹으러 가야겠다. 포크 좀 달라고 여러 번 애원하지 않아도 단번에 알아들을 발음으로 포크 두 개를 받아서 양손에 쥐고 감아 먹어버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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