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한 후 신혼을 미국 애리조나 주 피닉스에서 보냈다. 피닉스의 사막 기후는 콧속이 바짝 마를 만큼 건조했고 따갑도록 내리쬐는 햇볕에 온 몸이 따끔거릴 정도로 느껴졌지만 마음만큼은 산들바람이 부는 언덕에 앉아 있듯 살랑거렸다. 미키 아주머니와 버드 아저씨를 만난 건 피닉스에 도착한 후 두 달쯤 지나서였다. 남편 학교에서는 외국인 학생들과 미국인 가정을 연결해 주는 버디(Buddy)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관심분야가 같은 사람들을 연결해 주었다. 남편이 선택한 관심분야는 역사였고 그걸 본 버드 아저씨가 우리에게 연락을 하셨다.
처음 미키 아주머니와 버드 아저씨가 우리 집에 오기로 한 날 나는 과일 한 접시와 치즈케이크를 구워 놓고 기다렸다. 어떤 분들이 오실까 궁금했는데 친정 부모님과 연세가 비슷한 분들이 오셔서 아주 반가웠다. 인사를 하고 서로 소개를 했다. 미키 아주머니, 버드 아저씨라고 불렀더니 한사코 미키, 버드로 이름만 부르라고 하셨다. 친정 부모님과 같은 연세면 깍듯이 존댓말을 써야 하는데 이름을 부르려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미키, 버드로 이름을 부를 때마다 목소리는 작아졌지만 첫 만남에도 서로 어색함이 없이 이야기는 잘 이어졌고 두 분 모두 참 따뜻하신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식들은 모두 독립해서 다른 주에 살고 있고 이전에도 학교 버디 프로그램을 신청해서 몇몇 외국인 학생들과 좋은 추억을 쌓았다고 하셨다. 버드 아저씨는 두 분의 본명과 생년월일, 집 전화번호와 주소를 써 주시면서 다음에는 당신들 집으로 오라고 하셨다. 당신들이 다니는 가정의학과도 알려 주시고 도움이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전화하라고 하셨다. 두 분이 콜로라도 주 덴버에 다녀오신 후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1999년에 버드 아저씨가 적어 주신 메모이다. 사진에서 몇 가지 정보는 지웠다
여행에서 돌아오신 후에 남편과 나는 미키 아주머니와 버드 아저씨 집에 저녁 초대를 받아 갔다. 지도를 보며 아저씨가 적어 주신 주소로 찾아갔다. 앤틱한 분위기의 거실에는 원목 가구와 천 소파가 놓여 있었고 벽에는 사진이나 그림을 넣어 걸어 놓은 예쁜 액자들이 많이 있었다. 아주머니는 사진 속 인물들을 하나하나 소개해 주셨다. 테이블보가 예쁘게 깔려 있는 둥근 식탁에 앉아 미키 아주머니가 직접 면을 뽑아서 만드신 토마토소스 파스타를 먹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파스타라고 하면 두꺼운 면만 있는 줄 알았는데 미키 아주머니의 파스타는 소면과 같이 얇고 부드러웠다. 파스타 제면기도 보여주시면서 지금 먹는 면은 엔젤헤어라고 하셨다. 샐러드와 빵도 먹고 후식으로 직접 구우신 파이와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아이스크림은 늘 바닐라, 딸기, 초콜릿의 세 가지 맛이 한 통에 담긴 것을 사놓시고 조금씩 골고루 담아 주셨다. 이후에도 두 분은 남편과 나를 저녁 식사에 자주 초대해 주셨는데 각종 허브를 뿌려서 오븐에 부드럽게 구운 연어 스테이크를 먹기도 하고 오븐에 구운 치킨을 먹기도 했다.
때로는 우리를 데리고 중국 식당에 가서 쿵파오 치킨과 같은 음식을 사 주시기도 했다. 나도 우리 집에 두 분을 초대해서 불고기와 잡채를 해 드렸다. 생일과 크리스마스에는 예쁜 카드에 정성스레 글을 써서 보내주셨다. 그렇게 일 년을 서로 오가며 지내던 중 남편이 뉴욕 주에 있는 학교로 가게 되어 정든 그곳을 떠나게 되었다. 미키 아주머니와 버드 아저씨의 집에 마지막으로 간 날 나는 내가 직접 한 땀 한 땀 십자수를 놓은 것을 액자에 넣어 선물해 드렸다. 그 무렵 나는 큰아이를 임신해서 입덧에 시달렸고 십자수를 하면서 지루한 시간을 견뎠는데 같은 디자인으로 두 개를 만들어서 하나를 미키 아주머니에게 선물해 드렸다. 미키 아주머니는 무척 좋아하시면서 벽에 걸어 놓은 액자 하나를 내려놓고 내가 선물한 액자를 바로 거셨다. 임신한 내가 기특하다면서 엄마 미소를 지으시고 이리저리 신경을 써 주셨다. 뉴욕 주로 가더라도 계속 연락하기로 하고 서로 아쉽게 헤어졌다.
우리 집 현관에는 아직도 미키 아주머니께 선물한 것과 똑같은 액자가 걸려 있다. 23년이 지났지만 색이 바래지 않았다.
그해 겨울 나는 큰아이를 낳았고 아이 사진과 함께 미키 아주머니와 버드 아저씨에게 카드를 보냈다. 얼마 후 아주머니에게서 답장이 왔다. 장미꽃이 예쁘게 그려진 카드에 그림처럼 예쁜 필체로 글을 쓰셨다.
네 아들의 사진을 보는 게 너무 반가워. 작은 몸에 3.6kg의 아들을 낳았구나. 아기가 예쁘고 아빠를 많이 닮았네. 아기 때문에 너와 ㅇㅇ가 많이 바쁘겠다. ㅇㅇ와 네가 서로 좋은 파트너로 잘하리라고 생각해. 우리가 언제 한번 방문할게. 아기가 밤에 잘 잤으면 좋겠다...... 우리가 같이 저녁을 먹었던 시간이 그리워.
그 후로도 쭉 우리는 서로의 생일과 크리스마스에 카드를 주고받았다. 내가 작은아이를 낳기 며칠 전 미키 아주머니가 작은 소포를 보내셨다. 큰아이를 위한 장난감과 곧 태어날 아기를 위해 직접 손뜨개하신 아기 모자와 장갑을 카드와 함께 보내셨다. 미키 아주머니의 손길이 가득 담긴 모자와 장갑을 보니 마음이 뭉클했다. 태어날 아기를 생각하면서 한 올 한 올 뜨개질을 하셨을 아주머니가 많이 그리웠다.
너희들에게 새 식구가 생긴다는 소식이 반가워. 모두 다 만나볼 수 있으면 좋겠어. 우리는 지금 콜로라도에 있어. 콜로라도 시더릿지에 작은 집을 짓고 있는데 겨울에는 애리조나로 돌아갈 거야...... 겨울에 아기가 이 모자와 장갑으로 따뜻하게 지내길 바랄게. 애리조나에서 너희들과 같이 보낸 시간이 정말 즐거웠어. 너희들과 함께 한 좋은 추억들이 많아.
손뜨개해서 보내주신 모자와 장갑이다. 모자 뒷부분은 리본으로 묶게 만드셔서 모자를 쓰면 뒷모습이 아주 사랑스럽다.
작은아이를 낳은 그해 11월 우리는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 어린아이 둘을 데리고 짐 정리를 하느라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고 주위 사람들과 인사하고 떠나오기도 바빴다. 미키 아주머니와 버드 아저씨에게는 한국에 가서 연락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국에 와서 집을 구하고 짐 정리를 한 후 조금 여유가 생긴 무렵 미키 아주머니에게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으셨다. 잠시 콜로라도에 가셨나 보다 생각하고 이후에 몇 번을 더 전화를 해 봤지만 여전히 받지 않으셨다. 내가 보낸 카드에도 더 이상 답장이 오지 않았다. 아마도 애리조나에 있는 집이 팔려서 콜로라도에 새로 지은 집으로 이사를 가신 것 같았다. 우리는 그렇게 연락이 끊겨 버렸다. 지금처럼 핸드폰도 있고 SNS도 가능했다면 좋았을 텐데 참 많이 아쉽다.
딸아이를 위해 떠 주신 모자는 집에서 몇 번 씌어보고 옷장에 넣어 두었다. 한국에 있었던 그 겨울은 아이 머리에 비해 모자가 컸고 사이즈가 맞을 무렵엔 일 년 내내 더운 싱가포르로 왔기 때문이다. 며칠 전 딸아이 옷장에서 꺼내 본 미키 아주머니가 떠 준 모자와 장갑은 20년이 지나도 새것처럼 올이 살아있고 러블리한 핑크색도 하나도 바래지 않았다. 미키 아주머니를 생각하며 내가 차곡차곡 모아 놓은 그리움도 아기를 생각하며 한 올 한 올 뜨개질을 하신 아주머니의 따스한 마음도 모두 그 안에 있었다. 모자와 장갑을 잘 싸서 다시 서랍 안에 넣었다. 비록 내 딸에게는 모자를 씌우지 못했지만 훗날 우리 아이들이 결혼해서 딸을 낳으면 이 모자와 장갑을 주려고 한다. 태어날 아기를 생각하면서 한 올 한 올 정성 들여 떠 준 미국 할머니의 따뜻한 사랑을 미래의 내 손녀에게도 전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