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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여울 Jul 19. 2022

아들이 차려 준 저녁 그리고 브런치

따뜻한 마음으로 차려 준 한 끼


“엄마, 배고프지요? 저녁은 어떻게 하실래요?”

“글쎄, 뭘 먹을지 모르겠네. 혼자 먹는데 이 시간에 뭘 하기도 그렇고.”

“밥은 있으니까 내가 간단하게 스팸하고 달걀프라이라도 해 드릴까요?”

“스팸이 있나? 엄마가 잘 안 사놓는데.”

“찬장에서 본 것 같아요. 스팸에 달걀프라이하고 김, 괜찮지요?" 

“그래. 그럼 엄마 이메일 좀 쓰고 올게. 다 되면 불러줘.”     


대부분의 내 수업은 늦은 오후에 있고, 시간 동안 말을 계속하다 보면 배가 고프기 마련이다. 수업 전에 간식을 먹었더라도 꼬르륵 소리가 나서 당황할 때가 있다. 어제는 저녁 8시에 온라인 수업이 끝났다. 남편은 출장 중이고, 딸은 늦게 온다고 했고, 다이어트 중인 아들은 간단히 고구마와 삶은 달걀로 저녁을 해결했다. 저녁을 먹을 사람은 나뿐이라 밥솥에 밥만 해 두었을 뿐, 특별한 반찬은 없었다. 아들은 내가 수업을 마무리하는 동안 스팸을 노릇하게 구워 놓고 달걀프라이와 함께 상을 차려 놓았다. 김과 냉장고에 있던 상추, 아삭 고추, 깻잎조림, 무말랭이까지 곁들여서. 내가 밥을 먹는 동안 아들은 나와 말동무가 되어 주었고, 후식으로 수박까지 꺼내 주었다.      


아들이 이렇게 음식을 준비해 주는 모습을 볼 때면,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나를 위해 요리를 해 준 기억이 떠오른다. 어머니날인 5월 둘째 주 일요일에 선물로 브런치를 차려 주겠다고 했었다. 요리를 별로 해 보지 않았던 아들이라 어떤 요리를 해줄지 기대되면서도 웃음이 나왔다. 


평소 일요일 늦잠을 자던 아들이 그날은 아침 7시 반쯤 일어났다. 나는 아들이 요리 제대로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귀를 쫑긋 세우고 부엌에서 나는 소리를 들었다. 킁킁거리고 문틈으로 들어오는 냄새맡았다. 조금 뒤, 아들이 부르는 소리에 나가 보니 식탁에 브런치 한 접시가 차려져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차린 걸 보니 짠하면서도 흐뭇했다. 접시에 담긴 토스트, 달걀 스크램블, 소시지와 방울토마토는 간단했지만 충분히 감동적인 아침이었다. 나를 위한 브런치를 차려준 아들에게 정말 고마웠다.      


아들이 고등학교 2학년 때 차려 준 어머니날 브런치


고등학교 3학년 때 어머니날을 그냥 넘기지 않았다. 작년처럼 브런치를 준비하겠다는 아들에게 올해는 힘드니까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아들은 학교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슈퍼마켓에 들러 장을 봐 왔다. 이번에는 작년과 다른 메뉴로 요리할 거라며 유튜브로 미리 레시피를 익혔다고 했다. 


어머니날 아침,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나서 눈을 떠 보니 새벽 6시였다. 평일에도 그 시간에 일어나서 학교에 가야 했는데, 조금 더 늦잠을 자도 되는 일요일에 이렇게 일찍 일어나 나를 위한 아침을 준비하고 있는 아들이 안쓰럽기만 했다. 아들은 오늘 메뉴가 시간이 좀 걸리고 만드는 게 어렵기 때문에 일찍 일어났다고 하며, 다 준비되면 부를 테니 조금 더 자라고 했다. 


아들이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이렇게 깊을 수 있나 싶어서 가슴이 뭉클했다. 그날 아들이 준비한 브런치는 에그 베테딕트였다. 홀란다이즈 소스를 직접 만들고, 수란도 만들었다. 수란을 만들기가 어려워 여러 번 실패했다고 하면서 완성된 에그 베네딕트를 어서 맛보라고 했다. 오렌지 주스와 함께 내어 준 에그 베네딕트는 여느 레스토랑에서 먹은 것보다 훨씬 맛있었다.    


아들이 고등학교 3학년 때 차려 준 어머니날 브런치

 

작년에는 군 복무 중이어서 브런치를 해 주지는 못했지만, 카드와 함께 꽃다발을 배달시켜 주었다. 소중한 꽃이 시들까 봐 나는 정성껏 물을 갈아주고, 책상 위에 화병을 올려놓고 하루 종일 바라보았다. 


올해 어머니날에는 제대한 아들이 다시 나를 위한 브런치를 준비했다. 사워도우 빵을 구워 놓고, 버섯, 햄, 소시지도 구워 접시에 담았다. 에그 스크램블을 한 후 생파슬리를 뿌리고, 샐러드에는 레몬 짜서 꿀과 올리브유를 넣고 스를 부었다. 방울토마토는 십자로 칼집을 넣어 올리브유에 살짝 볶아 샐러드 위에 얹다. 부드럽게 구운 프렌치토스트에 메이플 시럽을 살짝 뿌리고 바나나와 블루베리를 얹었다. 일리 커피 한 잔도 내려 주었다. 여느 브런치 레스토랑과 비교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비주얼도 훌륭했고, 맛도 있었다. 양이 조금 많았지만, 아들이 차려 준 정성을 생각해 모두 깨끗이 먹었다.      


올해 아들이 차려 준 어머니날 브런치


아들제대 후 지난 몇 달 동안 아들과 나는 함께 아침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신문 기사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시간은 금세 흘러 아들은 이제 곧 대학교 기숙사에 들어가야 한다. 기숙사가 가까운 곳에 있지만, 공부하느라 바빠서 매주 집에 오기는 어려울 것이다. 방학 때는 인턴을 하느라 바쁠 것이고, 어느 해에는 교환학생으로 해외에 있는 대학교에 갈 수도 있다. 졸업 후 이곳에서 일을 할 수도 있겠지만, 다른 나라에서 일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제 이렇게 떠나보내면 아들과 함께할 시간은 많지 않을 것 같다. 섭섭한 마음이 들지만 어쩔 수 없다. 어미새가 아기새를 품 안에서 잘 키워 독립할 수 있게 하듯이, 나도 아들이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응원하고 싶다. 앞으로 어머니날에 아들이 차려주는 브런치를 몇 번이나 더 먹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올해 어머니날에 정성껏 차려 준 따뜻한 마음과 손길이 담긴 브런치 한 접시는 내가 먹어 본 음식 중 단연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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