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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여울 Apr 14. 2023

80대 중반이신 부모님과 함께 부산에 갔다

2박 3일간의 추억


한국에 가기 두 달 전부터 부모님과의 부산 여행을 계획했다. 이번에는 기필코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다녀와야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있었다. 오랜 해외 생활로 인해 부모님과 함께 여행을 할 기회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이번 한국 방문에는 꼭 같이 여행을 다녀오리라고 마음먹었다. 아이들도 모두 대학생이 되었고 스스로 제 앞가림을 할 수 있으니 조금 여유 있게 한국에 머물다가 오면 충분히 국내 여행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국에 도착한 후 서울 시댁에서 지내다가 친정 부모님이 계신 대구에 내려가서 며칠 쉰 후 부산으로 갈 계획을 세웠다. 호텔은 미리 객실 요금이 좀 싼 날을 찾아서 싱가포르에서 예약해 두었다. 고속철도 승차권도 정해진 일정에 맞춰 모두 예매해 두었다.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 승차권을 열어 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가슴이 벅찼다.


한국에 도착했다. 시댁에서 며칠 지내면서 친정에 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데 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아빠가 코로나에 걸리셨다고 말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소식에 당황했다. 아빠는 이제껏 잘 지내시다가 왜 하필이면 지금 코로나에 걸렸는지 너무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 무엇보다 80대 중반이신 아빠가 코로나를 잘 이겨 내실지 많이 걱정이 되었다. 부산 여행은 어쩌면 못 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도 많이 기대하고 있던 여행이어서 못 가게 된다면 실망이 아주 크실 것 같았다. 마음을 졸이며 아빠께 전화를 해 보니 이틀 정도 열이 났지만 다행히 감기 기운도 없고 컨디션도 나쁘지 않다고 하셨다. 아빠가 격리해제 되는 날에 맞춰 친정에 갔다. 아빠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아쉽더라도 여행 계획을 취소하려고 마음먹었지만 다행히 아빠는 하루가 다르게 빠른 회복을 하셨다.    


오랜만에 여행을 가신다고 부모님도 한껏 기분이 들뜨셨다. 일교차가 크고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에 혹시라도 감기에 걸릴까 봐 반팔부터 얇은 패딩까지 챙겼다. 대구에서 고속철도를 탄 지 40분이 되자 부산역에 도착했다. 부산은 때마침 꽃샘추위가 물러가고 따사로운 햇볕이 내리쬐어 나들이하기에 좋은 날씨를 보였다. 택시를 타고 해운대에 있는 호텔에 갔다. 10층 전망 좋은 오션뷰 객실로 배정되었다. 부모님 연세가 많으시니 되도록이면 호텔에서 편안하게 머물면서 주위 동백섬과 해운대 해변을 산책할 계획을 세웠다. 첫 끼로 호텔 뷔페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해운대 백사장과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분위기 좋은 창가에 앉아 천천히 식사를 했다. 평소 당뇨가 있으셔서 가리는 음식이 많으신 아빠도 이것저것 몇 접시나 담아 오셔서 참 맛있게 드셨다. 잘 드시는 아빠를 보니 기분이 좋았다. 부모님을 방에 모셔다 드린 후 나도 방에 와서 잠시 침대에 누웠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참 예뻤다. 어렸을 때 엄마 아빠와 함께 이 호텔에서 며칠 묵은 적이 있었다. 그때는 아빠가 나를 안아서 창가에 앉혀 주며 창밖 바다 풍경을 보라고 하셨는데 이제는 침대에 기대 누워 있어도 저 멀리 바다 풍경이 잘 보인다. 세월이 참 빨리 흘렀다. 그때의 나는 이제 50대가 되어버렸다.     



웨스틴조선호텔 10층에 위치한 객실


호텔 라운지


동백공원


호텔에서 나와 동백공원으로 산책을 갔다. 조용한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누리마루 APEC 하우스에 들러서 구경을 하고 등대광장에 갔다. 광안대교도 오륙도도 조망할 수 있다고 했지만 그날은 미세먼지 탓인지 온통 뿌옇게만 보였다. 동백섬을 떠올릴 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청동 인어상도 보고 최치원 선생이 직접 새겼다는 해운대석각도 보았다. 아빠는 산책로에 핀 붉은 동백꽃이 방글방글 웃는다고 하시면서 연신 좋다고 하셨다. 나는 사진을 찍느라 부모님보다 한 걸음 뒤에서 걸었다. 두 분이 같이 걸어가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다정하게 걷는 두 분의 모습을 보다가 괜스레 마음이 울컥했다. ‘언젠가는... 한 분만 남겠지. 또 언젠가는... 한 분도 남지 않겠지. 그 언젠가가 아주아주 늦게 왔으면 좋겠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맺혔다. 부모님과 함께 바다를 배경으로 셀카를 찍었다. 나는 사진이 예쁘게 나오지 않았다는 핑계를 대며 자꾸자꾸 여러 각도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동백공원을 산책한 후 해운대 해안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아름다운 해안선을 따라 길게 펼쳐져 있는 백사장이 빛났다. 바닷바람이 불었지만 햇볕이 따갑도록 내리쬐어 춥게 느껴지지 않았다. 부모님과 나는 중간중간 설치되어 있는 의자에 앉아 일렁이는 바다를 바라보며 이야기도 하고 음료수도 마셨다. 바닷바람에 머리카락이 날리고 스카프가 날렸다. 은빛을 띈 윤슬에 눈이 부셨다. 이렇게 어렵게 여행을 왔는데 다음에 또 어디로든 여행을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싱가포르에 돌아와서 짐을 다 정리하고 책상에 앉아 있으니 부모님과 함께 했던 부산 여행이 생각났다.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지금 뭐 하고 계셨는지 물어보니 딸과 함께 했던 부산 여행을 생각하고 있었다고 하셨다. 호텔 라운지에서 창밖 풍경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눴던 시간도 좋았고 같이 기장에 가서 대게를 먹은 것도 좋았고 같이 걸었던 것도 좋았고 그 모든 시간들이 좋았다고 했다. 그렇게 엄마와 나는 같은 시각 이제 서로 다른 곳에 있으면서도 함께 한 곳을 추억하고 함께 한 시간을 추억하고 있었다. 추억이 많으면 먼 훗날 그리움이 더 깊어질까 봐 사실 나는 두렵다. 해운대에 가면 20년이 지나도 30년이 지나도 나는 엄마 아빠와 함께 했던 이번 여행을 잊을 수 없을 텐데 진한 그리움에 사무쳐 눈물이 날까 봐 벌써 두렵다.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 사진 몇 장만으로도 이미 나는 그리움 때문에 이렇게 눈물이 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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