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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여울 Apr 03. 2023

한국에 오니 너무 좋다!

한국어, 한글, 한국 음식, 가족

  

비행기가 인천공항에 착륙했다. 비행기의 출입문이 열린 후 탑승교를 통해 공항으로 걸어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공항에 들어서는 순간 내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것은 바로 안내 표지판이었다. 세관, 수화물 찾는 곳, 탑승구, 출입국 심사, 화장실 등과 같이 한글로 쓰인 안내 표지판을 보니 비로소 고국에 온 것이 실감 났다. 자동출입국심사대를 통과하고 수하물을 찾은 후 공항 밖으로 나왔다. 싱가포르에서 느낄 수 없는 시원한 공기가 온몸을 스쳤다. 반팔에 얇은 카디건을 걸치고 있어서 조금 춥게 느껴졌지만 봄날의 저녁 바람이 좋았다. 공항버스를 탔다. 퇴근 시간이어서 교통체증이 심했다. 버스는 지체와 서행 운행을 반복하며 움직였지만 내 마음이 조급하지 않으니 버스가 가다 서다를 반복해도 짜증이 나지 않았다. 차창 밖으로 저 멀리 여의도 63 빌딩이 보였다. 결혼 전에 남편과 같이 벚꽃구경을 하러 갔던 여의도 윤중로가 생각났다. 노란 개나리도 분홍빛 진달래도 이미 내 마음속에 활짝 피었다. 버스는 한 시간쯤 지나 목적지에 도착했다.

     

호텔 프런트 데스크에서 체크인을 했다. 주민등록증을 보여주고 체크인 서류를 작성했다. 한국말로 소통하고 한글로 서류를 작성하는 것이 너무나도 편안하게 느껴졌다. 카드키를 받아서 객실로 올라갔다. 창밖으로 저 멀리 남산타워가 보였다. 아름다운 서울의 야경에 한참 동안 눈길이 머물렀다. 침대에 누워 텔레비전을 켰다. 스마트기기에 설치된 애플리케이션을 열지 않아도 한국 방송 프로그램을 볼 수 있어서 편리했다. 어느 채널에 맞춰도 귀에 쏙쏙 들어오는 한국어로 이야기를 하고 영화 채널에서는 한글 자막이 제공되었다. 말을 흘려들어도 자막을 대충 쓱 읽어도 내용이 술술 이해가 되었다.


어디를 가도 한글 간판이 보이고 누구와 이야기를 하든 한국어로 말하면 되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해외에 산 지 나는 이제 20년이 넘었고 일도 하고 있어서 영어로 소통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지만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기 때문에 상황에 맞는 적절한 표현을 사용하지 못하여 답답할 때가 종종 있다. 미묘한 어감 차이를 제대로 알고 쓰는 것이 쉽지 않다. 싱가포르에서는 상대방이 내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해서 내가 다시 반복해서 말해야 할 경우 나도 모르게 절로 위축이 될 때가 있지만 한국에서는 최소한 말 때문에 내가 작아지지는 않는다.   

     

호텔 근처 백화점 슈퍼마켓에 갔다. 싱가포르에서는 사기 어려운 식재료가 많아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냉장 삼겹살과 냉장 불고기가 신선해 보였다. 싱가포르에서 내가 늘 구매하는 호주산 냉동 불고기는 900g에 $52(약 5만 원)인데 한국에서는 호주산 냉장 불고기가 대략 2만 원 대여서 품질도 가격도 차이가 많이 났다. 갖가지 야채를 담은 모둠쌈, 싱싱한 오징어와 전복, 생굴, 간편하게 요리할 수 있는 밀키트 등 슈퍼마켓에는 온통 내 눈을 사로잡는 식재료로 가득했다. 슈퍼마켓 옆에는 주문한 음식을 즉석에서 요리하여 포장해 주는 델리가 있었다. 족발, 순대, 만두, 떡볶이, 피자, 돈가스, 김밥 등과 같은 음식들을 팔았다. 그중에서 가장 내 눈길을 끈 것은 김밥이었다. 멸치김밥, 진미채김밥, 땡초김밥과 같은 다양한 종류의 김밥이 있었고 한 줄에 대략 5,000원이었다. 동네 김밥가게와 비교하면 많이 비싸겠지만 싱가포르에서는 기본김밥 한 줄에 $8-$10(약 8천 원-만 원)이기 때문에 백화점 델리 김밥이 크게 비싸지 않게 껴졌다.


강남 교보문고에 갔다. 평일인데도 매장 안에 사람들이 많았다. 여기저기를 봐도 한글로 쓰인 책들이 가득했다. 서점에서 풍기는 책 냄새도 한글을 품고 있어서인지 더 향기로웠다. 우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수필 코너로 갔다. e-book으로 읽은 책들도 종이책으로 다시 읽으니 느낌이 또 달랐다. 베스트셀러 코너에 있는 책들도 보고 소설책과 시집도 보면서 서점에서 한나절을 보냈다. 서점 한 편에 있는 문구코너에서 한 줄 일기장을 샀다. 좋아하는 작가들의 책도 몇 권을 사서 서점 안 카페에 갔다. 마침 조용한 창가 자리가 비어 있었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을 읽었다. 아름다운 한글로 쓰인 보석 같은 문장들이 마음에 내려앉았다.   

   

내가 무엇을 하든 한국에 있으니 마음이 참 편안하다. 한국말, 한글, 한국 음식, 한국 풍경, 가족, 친구,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자연스럽고 편안하다. 남의 나라에서 뿌리를 내리고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온몸으로 부딪혀 배우고 익혀서 새로운 환경에 익숙해지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언어를 배우고 문화를 익히며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외국인이기 때문에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들이 있어도 그러려니 하고 생각해야 한다. 지난 20여 년 나는 그렇게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조금씩 그 나라에 정착했다. 늘 보이지 않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았다. 한국에 오면 무엇보다 내가 외국인 신분이 아니어서 좋다. 지갑 속 주민등록증이 빛을 발해서 좋다. 한국은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어서 좋다. 한국은 아름다운 사계절이 있어서 좋다. 한국은 맛있는 음식이 많아서 좋다. 한국에는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어서 좋다. 한국에 오니 정말 편안하고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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