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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여울 Feb 28. 2023

생일 아침, 엄마한테서 문자가 왔다

축하를 받을 사람은 내가 아니다


오늘은 내가 태어난 날이다. 마음은 아직 30대인데 내 나이는 어느새 쉰 살이 훌쩍 넘어버렸다. 아이들은 모두 대학생이 되었고 나는 이제 육아에서 벗어나 내 삶에 집중하며 살고 있다. ‘생일이 뭐 특별한 날인가. 어제와 같은 날이지.’ 생각하면서도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축하 인사를 받으면 기쁘다. 생일 아침에 제일 먼저 전화를 해 주는 사람은 한국에 있는 내 동생이다. 늘 언니처럼 챙겨 주는 동생은 내가 어느 나라에 있든 그 나라의 시간대에 맞춰 이른 아침 전화로 축하를 해 준다. 생일에 동생과 함께 밥 한 끼를 먹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나는 그토록 좋아하는 동생과 아직 단둘이 생일 밥을 먹어 본 적이 없어서 아쉽다.      


내 생일에 잊지 않고 축하 문자를 보내주시는 분은 시어머님이시다. 어머님은 내가 남편과 결혼한 이후 한 해도 빠지지 않고 내 생일에 전화를 해 주시거나 문자를 보내신다. 남편이 한국에 출장 가 있는 동안이면 남편 편에 내 생일 선물로 용돈을 조금 보내주시기도 하고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싸서 보내주시기도 하신다. 예전에 나는 내가 어머님 생신을 챙겨 드리듯이 어머님도 내 생일을 챙겨 주시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어머님께서 내 생일을 기억해 주시는 게 쉬운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늘 그러하셨듯 오늘 아침에도 어머님은 내게 생일 축하 문자를 보내셨다. 참 감사한 일이다.      


생일에 내가 가장 기다리는 전화는 바로 엄마에게서 올 전화이다. 대학생이 되면서부터 엄마와 떨어져 지내다 보니 생일에는 늘 엄마가 전화로 축하를 해 주셨다. 그런 엄마가 어느 해부터 내 생일을 잊어버리셨다.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오늘은 내 생일이고 엄마가 나를 낳느라고 애쓰신 날이니 미역국이라도 끓여 드시라고 했지만 마음 한 편으로는 엄마가 내 생일을 좀 기억해 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엄마는 매번 “아, 맞다. 오늘이 니 생일이제? 어제까지만 해도 생각했는데 오늘 아침에 까맣게 이자뿌따.” “요새는 와 이래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나노. 생일 축하한다.” 그러면 나는 엄마에게 “아니, 벌써 딸 생일을 이자뿌면 어떡하노. 아직 팔순도 안 됐는데. 엄마도 나 낳느라고 애쓰셨다."라고 말씀드렸다.


사실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나는 생일은 내가 축하받아야 하는 날이기보다는 엄마에게 감사해야 되는 날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출산의 고통을 이겨내고 나를 낳으신 날 축하 인사를 받아야 할 사람은 나보다도 엄마라는 걸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 생일을 잊어버린 엄마에게 투정을 하는 것은 그 고마움을 몰라서가 아니다. 왠지 생일에는 그날 하루만큼은 내가 엄마 품 안에 있는 어린아이가 되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이다.


생일을 맞은 오늘 아침일어나서 핸드폰을 열어 보고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메시지가 있어서 마음이 울컥했다. 바로 엄마에게서 온 생일 축하 메시지였다. 돋보기 없이 글자를 잘 못 읽는 나는 서둘러 안경을 끼고 메시지를 읽었다.      


ㅇㅇ야, 오늘 생일 축하해.

엄마가 또 잊을까 봐 신경을 좀 썼네.

부디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라.

그리고 엄마 딸로 태어나 줘서 고맙고 행복해.

오늘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라.


생일 아침에 눈물이 터진 건 아마도 오늘이 처음인 것 같다.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다. 눈물을 대충 닦고 샤워를 하러 화장실에 들어갔다. 머리를 감으면서도 눈물이 나고 얼굴을 씻으면서도 눈물이 났다. 팔순이 다 된 엄마가 올해 내 생일에는 잊지 않고 아침에 문자를 보내셨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는 올해 내 생일은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무단히 애쓰셨다고 했다. 아빠 수첩에도 메모해 놓고 핸드폰 캘린더 앱에도 알림을 설정해 놓으셨다고 했다.      


문득 내가 아기였을 때는 어땠는지 궁금했다. 엄마는 내가 예정일보다 20일 일찍 태어나서 몸무게가 2.5kg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하셨다. 한 달 후에도 몸무게가 겨우 3.2kg이어서 신생아 몸무게와 다를 바 없었다고 하셨다. 모유가 충분하지 않아 분유와 섞어 먹이려고 해도 모유가 아니면 먹지를 않아서 애를 먹었다고 하셨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이야기를 엄마를 통해 들으니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는 보이지 않는 끈이 느껴졌다.     


오늘 엄마는 내가 태어난 저녁 8시 즈음 미역국을 끓여서 아빠와 같이 드실 거라고 하셨다. 언젠가 나는 엄마에게 엄마가 끓여 준 생일 미역국을 언제 먹어 봤는지 기억이 안 난다고 한 적이 있었다. 엄마는 그 얘기를 듣고 마음이 먹먹했다고 하셨다. 아마도 나는 대학생이 된 이후부터 생일에 엄마가 끓여 준 미역국을 먹어 보지 못한 것 같다. 한국에 있었다면 오늘 내가 미역국을 끓여서 엄마와 같이 먹었을 텐데 아쉽기만 하다. 올해 내 생일에 받은 가장 큰 선물은 엄마의 문자였다. 마음속 표현을 잘하지 못하는 엄마가 보낸 따뜻한 문자는 내가 정말 사랑받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해 주었다. 엄마가 아직 내 곁에 있어줘서 참 감사하다. 내년에도 후년에도 앞으로도 아주 오랫동안 내 생일에 문자를 보내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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